대구는 한때 대한민국 산업화의 주역이었다. 섬유산업은 한국 수출의 상징이었고 기계·금속산업은 지역 경제를 떠받치는 버팀목이었다. 그러나 산업의 중심이 수도권으로 이동하고 제조업 구조가 바뀌면서 대구는 오랫동안 성장 정체와 청년 유출이라는 이중고를 겪어야 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추경호 시장은 이러한 현실을 정면으로 인정했다. 그는 대구 경제가 중소·중견기업 중심의 소재·부품·장비 산업에 머물러 있다며 이제는 산업구조 자체를 바꾸는 ‘대구경제 대개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 테슬라 아시아 제2공장, HD현대로보틱스 연구개발 캠퍼스 유치를 통해 대구를 AI·반도체·로봇 산업의 중심도시로 만들겠다는 것이 그의 구상이다.
질문은 하나다.
대한민국 산업화의 후발주자가 된 대구는 AI 시대에 다시 도약할 수 있을까.
섬유도시에서 AI 산업도시로, 대구의 마지막 승부수
대구는 오랫동안 변화의 필요성을 이야기해 왔다. 문제는 방향이었다. 섬유산업이 쇠퇴한 이후에도 새로운 성장동력이 뚜렷하게 자리 잡지 못했다. 첨단의료복합단지와 국가산업단지 조성, 로봇산업 육성 등 다양한 시도가 있었지만 수도권 집중 현상과 청년 유출이라는 거대한 흐름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공약을 두고 실현 가능성을 묻는다. 당연한 질문이다. 삼성과 SK하이닉스, 테슬라는 어느 지역이나 원하는 기업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방향성이다. 추 시장은 대구의 문제를 단순한 경기 침체가 아니라 산업구조 문제로 보고 있다. 지역 경제가 중소기업 중심 구조에 머무는 한 청년 인재는 떠나고 기업은 수도권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다.
AI 시대는 규모의 경제가 더욱 중요해진다.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AI 연구개발은 막대한 자본과 인재가 필요하다. 결국 대구가 살아남으려면 작은 개선이 아니라 산업구조 자체를 바꾸는 대전환이 필요하다. 추 당선인의 승부수는 바로 여기에 있다.
반도체와 테슬라, 대구가 꿈꾸는 새로운 성장 엔진
추 당선인 공약의 핵심은 반도체와 미래차다. 그는 대구를 소부장 도시에서 완성차와 반도체 생산도시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생산시설 유치를 통해 대구를 글로벌 반도체 거점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내놓았다.
반도체는 AI 시대의 쌀이다. 데이터센터도, 자율주행차도, 로봇도 모두 반도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세계 각국이 반도체를 국가전략산업으로 지정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추 시장은 대구가 풍부한 공업용수와 안정적인 전력, TK신공항과 연계된 물류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경북대와 DGIST를 통한 인재 공급 능력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테슬라 아시아 제2공장 유치 공약이다. 단순히 자동차 공장 하나를 유치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테슬라는 AI 자율주행 기술과 배터리, 로봇 기술을 동시에 보유한 기업이다. 테슬라가 들어오면 자동차 산업뿐 아니라 AI와 로봇, 배터리 산업 생태계가 함께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추 시장은 생산유발 효과 50조원, 직간접 고용효과 13만명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물론 현실은 녹록지 않다. 글로벌 기업 유치는 지방정부 의지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대구가 처음으로 AI 시대의 산업 지도를 중심에 놓고 도시의 미래를 설계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산업정책의 목표가 단순한 기업 유치가 아니라 AI 산업 생태계 조성으로 바뀌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로봇과 AX, 대구 제조업의 생존 전략
추 당선인 공약 가운데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았지만 가장 현실적인 전략은 AX(AI Transformation)다. 그는 대구의 전통산업인 섬유와 기계금속, 자동차 부품, 안경산업 등에 AI 전환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시장 직속 AX위원회 설치와 2조원 규모의 AX 촉진펀드 조성 계획도 제시했다.
사실 대구가 가진 가장 큰 자산은 기존 제조업이다. 수도권처럼 플랫폼 기업이 많은 것도 아니고 울산처럼 대형 제조기업이 밀집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수많은 중소·중견 제조기업이 지역 경제를 떠받치고 있다. 문제는 이 기업들이 AI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면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는 점이다.
AI는 이제 대기업만의 기술이 아니다. 생산라인 관리와 품질 검사, 물류 최적화와 설비 예측 정비까지 AI가 활용되지 않는 분야를 찾기 어렵다. 결국 대구 제조업의 미래는 새로운 산업을 만드는 것보다 기존 산업을 AI로 업그레이드하는 데 달려 있다.
HD현대로보틱스 연구개발 캠퍼스 유치 공약도 같은 맥락이다. 로봇은 AI를 현실 세계로 연결하는 핵심 수단이다. 반도체가 AI의 두뇌라면 로봇은 AI의 손과 발이다. 대구가 로봇산업을 키운다는 것은 단순한 기계산업 육성이 아니라 피지컬 AI 시대를 준비한다는 의미다.
AI 행정과 시민 참여, 도시 운영도 달라져야 한다
추 당선인은 산업뿐 아니라 행정에도 AI를 접목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그는 선거 과정에서 AI를 활용한 시민 의견 수렴 플랫폼을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시민들의 제안을 AI가 분석하고 정책 수립 과정에 반영하는 시스템이다.
이는 단순한 기술 도입을 넘어 행정 패러다임의 변화를 의미한다. AI 시대의 도시는 시민과 행정의 관계도 달라진다. 과거에는 공무원이 정책을 만들고 시민이 수용했다면 앞으로는 시민의 의견이 실시간으로 분석되고 정책에 반영되는 구조가 가능해진다.
또한 재난 대응과 의료 시스템에도 AI 활용을 확대하겠다는 구상을 제시했다. 재난 대응을 사후 수습이 아니라 사전 예측 중심으로 전환하고, 초광역 재난의료 허브 구축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AI는 산업 정책만의 문제가 아니다. 도시 운영의 방식 자체를 바꾸는 기술이다. 대구가 산업도시를 넘어 AI 도시로 발전하려면 행정 혁신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대구는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과거의 영광을 이야기하며 쇠퇴를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AI를 통해 새로운 성장의 길을 찾을 것인가.
추 당선인은 후자를 선택했다. 반도체와 테슬라, 로봇과 AX를 통해 대구 경제의 체질을 바꾸겠다는 승부수를 던졌다. 실현 가능성을 둘러싼 논란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대구가 더 이상 기존 산업만으로는 미래를 보장받을 수 없다는 점이다.
AI 시대의 경쟁은 도시 간 경쟁이 아니라 산업 생태계 간 경쟁이다. 대구가 AI·반도체·로봇 산업을 중심으로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면 대한민국 산업지도의 한 축으로 다시 떠오를 수 있다.
결국 추경호 당선인의 4년은 대구 경제를 관리하는 시간이 아니라 대구 경제를 다시 설계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추경호 대구시장 당선인:
경제관료 출신 정치인이다. 기획재정부 1차관과 국무조정실장,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냈으며 대구 달성군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경제정책 전문가로 평가받는 그는 이번 선거에서 ‘대구경제 대개조’를 대표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과 테슬라 아시아 제2공장 유치, HD현대로보틱스 연구개발 캠퍼스 유치를 핵심 공약으로 제시하며 산업구조 대전환을 약속했다. 또한 AI 기반 시민참여 플랫폼과 AX 촉진펀드 조성 등을 통해 산업과 행정 전반의 AI 전환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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