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월드컵, 한국 축구에 다가온 증명의 시간

사진강상헌 문화부 기자
[사진=강상헌 문화부 기자]
 
태극마크의 무게는 무겁다. 전 세계 축구 팬들의 시선이 쏠리는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이라는 무대라면 그 중압감은 배가된다. 이제 그 막중한 무게를 견뎌내야 할 2026 북중미 월드컵이 12일(한국시간) 막을 올린다. 흔히 월드컵을 두고 '경험을 쌓는 자리가 아니라,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는 자리'라고 말한다. 한국 축구대표팀에 이번 대회는 그 어느 때보다 이 '증명'이라는 단어가 절실하게 다가온다.

최근까지도 한국 축구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특히 대한축구협회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홍명보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을 둘러싼 공정성 논란, 문화체육관광부의 특정감사 결과 발표와 조치 요구 그리고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의 리더십을 향한 짙은 불신까지 굵직한 악재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행정 난맥상이 연일 도마에 오르며 축구계 안팎의 뼈아픈 지적이 쏟아졌고, 한국 축구를 지탱하는 팬들의 피로감과 실망감은 극에 달했다.

여기에 대표팀 사령탑인 홍 감독의 리더십과 전술적 역량에 대한 의구심마저 겹쳤다. 부임 이후 홍 감독은 뚜렷한 전술적 색채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비판에 시달려 왔다. 세밀한 부분 전술이나 체계적인 빌드업보다는 유럽파 주축 선수들의 개인 기량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는 지적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세계 무대에서는 벤치의 정교한 수싸움과 위기 대처 능력이 승패를 가르는 결정적 요인이 된다. 사령탑의 전술적 한계는 단기전인 월드컵에서 대표팀의 치명적인 불안 요소로 꼽힌다. 급기야 일부 팬들은 이번 월드컵에 나서는 대표팀을 두고 '가장 기대가 안 되는 팀'이라는 뼈아픈 평가까지 내놓을 정도다.

아이러니하게도 주장 손흥민(LAFC)을 필두로 한 현 대표팀에는 좋은 기량을 갖춘 선수들이 많다. 이강인(파리 생제르맹),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이재성(마인츠), 옌스 카스트로프(묀헨글라트바흐) 등 선수 개개인의 기량만 놓고 보면 과거 어느 월드컵 대표팀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다. 그렇기에 지금의 어수선한 상황이 더욱 뼈아프다. 유럽 빅리그를 누비는 주축 선수들의 전성기가 윗선의 행정 무능과 벤치의 전술 부재로 인해 허무하게 낭비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팬들의 분노와 실망을 키우고 있다.

어수선한 행정 난맥상에 사령탑을 향한 불안감 그리고 팬들의 싸늘한 시선까지 겹쳤지만, 월드컵이라는 무대는 이러한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핑계나 변명도 통하지 않는 공정한 평가의 장이다. 축구계 관계자들 역시 외부의 혼란을 뒤로하고 오롯이 실력으로 가치를 입증해야 할 시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 축구계 관계자는 "그간 홍명보호를 둘러싼 많은 논란이 있었고, 현재도 전술적으로 물음표가 붙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월드컵 막이 오르는 만큼 그간의 여러 논란을 잠재울 방법은 오직 결과로 증명하는 길뿐이다. 그래야만 떠난 축구 팬들의 마음을 다시 돌릴 수 있다"고 짚었다.

장외에서 잃어버린 신뢰를 그라운드에서 단숨에 회복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당장의 승패나 32강을 넘어 16강 진출이라는 가시적인 성과주의에만 매몰되자는 의미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결과만큼이나 납득할 수 있는 '과정'과 '경기 내용'이다. 홍 감독은 뚜렷한 전술적 색채와 위기관리 능력으로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역량 부족'이라는 평가를 스스로 불식시켜야 한다. 선수들은 수많은 논란과 행정적 위기 속에서도 한국 축구의 근간이 무너지지 않았다는 것과 오랜 기간 쏟아부은 땀방울의 가치가 여전히 굳건하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줘야 한다.

이제 북중미 월드컵 무대의 막이 오른다. 그라운드 위에서 증명해야 할 때다. 태극전사들이 모든 논란과 짐을 뒤로하고 흔들림 없는 경기력과 하나 된 투혼으로 자신들의 가치를 증명해 내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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