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동고분군, 세계유산 등재 후 첫 학술조사...'봉분 없다'는 통념 깨나

  • 일제강점기 유리건판 속 '수로왕릉 부근 봉토분' 실체 찾기 첫 삽

  • 과거 대형 목곽묘 중심 조사로 소외됐던 봉토분, 20여 년 만에 복토층 걷어낸다

  • "성공 시 가야고분군 연속유산으로서의 진정성 완벽 입증할 것"

1990년대 대성동고분군 전경사진김해시
1990년대 대성동고분군 전경[사진=김해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김해 대성동고분군에서 등재 이후 첫 학술발굴(시굴)조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번 조사는 그동안 학계와 대중 사이에서 ‘봉분이 없는 무덤군’으로 인식되던 대성동고분군의 통념을 깨고, 가야사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김해시 대성동고분박물관은 1일 오전 11시, 대성동고분군 발굴 현장에서 학술발굴조사의 시작을 알리는 개토제를 개최했다.

이번 조사는 일제강점기 당시 촬영된 유리건판 사진 속에 ‘수로왕릉 부근 고분’으로 소개된 봉토분(흙을 둥글게 쌓아 올려 만든 무덤)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기획됐다. 조사 대상지는 가야 전성기에 축조된 대성동 1~3호분과 인접한 남쪽 구릉 정상부다.


해당 봉토분의 흔적은 일제강점기 사진뿐만 아니라,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 복원·정비 공사가 이뤄지기 전 사진 속에서도 확연하게 드러난다.

현재 해당 지점은 지형에 따라 약 1m에서 1.5m 두께의 흙이 덮여(복토) 있는 상태지만, 자세히 보면 여전히 완만한 구릉의 형태를 띠고 있다. 현재의 위치에서 사진을 촬영해도 당시 유리건판과 거의 일치하는 구도가 나온다.

그동안 이 봉토분이 정식 조사를 받지 못했던 배경에는 과거 학계의 연구 경향이 있었다. 박물관 관계자는 “과거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조사 당시에는 대형 목곽묘(나무덧널무덤) 발굴에 집중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봉토분에 대한 중요도나 관심도가 낮아 조사가 이뤄지지 못하고 복토됐다”고 설명했다.

대성동고분군은 나무로 널방과 뚜껑을 덮는 구조적 특성상 시간이 흐르면 내부가 함몰돼 육안으로 봉분을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박물관 측은 이번 시굴 조사를 통해 허가 면적의 10% 수준인 약 30㎡ 면적에 총 2개의 트렌치(시굴 구덩이)를 설치하고 복토층을 걷어낼 예정이다.

이를 통해 사진 속 유구의 존재 여부를 명확히 가려낸다는 방침이다. 만약 이번 시굴에서 봉토분의 흔적이나 유물이 실제로 확인되면, 국가유산청의 허가를 받아 정밀 발굴 조사로 즉각 전환할 계획이다.

이번 조사는 대성동고분군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실시되는 '첫 학술조사'라는 점에서 학술 가치가 매우 높다.

한편, 박물관 측은 문화유산에 대한 시민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조사 기간 동안 발굴 현장을 상시 개방한다.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통제선 밖에서 관람해야 하지만, 현장을 방문한 시민들은 상주하는 조사원의 안내에 따라 발굴 과정을 생생하게 설명 들을 수 있다. 별도의 사전 예약이나 정해진 방문 시간은 없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