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자의 아시아의 영성(Spiritual Asia) ③] 힌두교 베다와 한민족 천부경, 두 문명의 오래된 대화
에이브 곽 입력 2026-05-25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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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인류는 다시 인간 존재의 근원을 묻기 시작했다
인공지능(AI)은 인간의 언어를 학습하고, 로봇은 노동을 대신하며, 알고리즘은 인간의 소비와 감정, 판단까지 예측하기 시작했다. 인간은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대를 살고 있지만 동시에 가장 깊은 정신적 불안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기술은 폭발적으로 발전했지만 인간 존재의 의미에 대한 질문은 오히려 더 거대해지고 있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 정신은 어디에서 오는가. 인간은 단순한 계산의 존재인가, 아니면 우주와 연결된 영적 존재인가. 바로 이 질문 앞에서 인류는 다시 오래된 경전들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힌두교의 베다(Veda)와 한민족의 천부경(天符經) 같은 인류 초기 문명의 정신 유산이 놓여 있다.
베다는 인류 문명사에서 가장 오래된 성전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대체로 기원전 1500년 전후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경전은 단순한 종교 문헌이 아니다. 거기에는 인간과 자연, 우주와 신성(神性), 생명과 존재의 근원에 대한 인류 최초 수준의 철학적 질문들이 담겨 있다.
‘베다(Veda)’라는 말 자체가 산스크리트어로 ‘지혜’ 또는 ‘앎’을 뜻한다. 인간은 단순히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니라 우주의 질서와 연결된 존재라는 인식이 그 안에 흐르고 있다. 리그베다(Rig Veda)의 찬가들 속에는 태양과 불, 바람과 하늘, 생명의 순환에 대한 경외심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인간은 자연을 지배하는 존재가 아니라 우주의 거대한 질서 속 일부라는 감각이 강하다.
특히 리그베다의 유명한 구절 가운데 하나인 “진리는 하나이나, 현자들은 그것을 여러 이름으로 부른다(Ekam sat vipra bahudha vadanti)”는 오늘날에도 깊은 울림을 준다. 이 짧은 문장 안에는 힌두 문명의 포용성과 우주관, 그리고 진리에 대한 겸허함이 동시에 담겨 있다. 인류가 서로 다른 종교와 문명으로 갈라지기 이전, 인간은 이미 하나의 우주적 진리를 다양한 언어와 상징으로 이해하려 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시선이 한민족의 천부경과도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는 점이다. 천부경은 모두 81자의 짧은 글이지만, 동아시아 정신사의 압축된 우주론으로 읽힌다. 특히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이라는 첫 구절은 인간 정신을 단숨에 우주의 근원으로 이끈다. 하나는 시작이지만 동시에 시작이 없는 하나이며, 모든 존재는 하나에서 나와 다시 하나로 돌아간다는 사유가 담겨 있다. 이는 단순한 종교 문구가 아니다. 존재와 우주, 시간과 순환, 인간과 자연을 하나의 흐름으로 이해하려는 거대한 철학적 선언에 가깝다.
베다가 우주 질서 속 인간 존재를 탐구했다면, 천부경 역시 하늘과 땅과 인간의 조화를 통해 우주의 근원을 설명하려 했다. 두 경전 모두 인간을 우주의 중심에 세우기보다 우주 질서 속 일부로 바라본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바로 이 지점에서 베다와 천부경은 AI 시대에 다시 놀라운 의미를 갖기 시작한다.
오늘날 현대 문명은 인간을 생산성과 효율, 데이터와 알고리즘 중심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하다. 인간의 감정과 사고조차 데이터화되고, 인간의 가치 역시 숫자와 성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베다와 천부경은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진다. 인간은 단순한 계산 가능한 존재인가.
힌두 철학은 인간 내면에 우주의 본질과 연결된 참된 자아, 즉 아트만(Atman)이 존재한다고 본다. 그리고 그 아트만은 우주의 절대 원리인 브라만(Brahman)과 본질적으로 하나라고 설명한다. 인간 정신은 우주의 일부이며, 인간은 단순한 육체나 노동력이 아니라 우주적 존재라는 것이다.
천부경 역시 인간을 하늘과 땅 사이의 조화로운 존재로 본다. 인간은 자연과 분리된 객체가 아니라 천지와 함께 움직이는 존재다. 인간과 자연, 우주와 생명은 하나의 흐름 속에서 연결되어 있다는 시선이다. 결국 두 경전 모두 “분리보다 연결”을 말하고 있다.
현대 문명은 끊임없이 인간을 경쟁시키고 분리시킨다. 국가와 인종, 이념과 종교, 계급과 시장은 인간을 서로 대립하게 만든다. 그러나 베다와 천부경은 오래전부터 인간이 본질적으로 연결된 존재라고 말해 왔다. 이는 단지 종교적 위로가 아니다. 문명의 지속 가능성과도 연결되는 문제다.
오늘날 기후 위기와 전쟁, 기술 독점과 AI 윤리 문제 역시 결국 인간이 자연과 우주, 그리고 서로 간의 연결성을 잃어버린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이 자연을 지배 대상으로만 보고, 기술을 욕망 확대의 수단으로만 사용할 때 문명은 스스로 균형을 잃기 시작한다. 바로 그래서 오래된 경전들이 다시 미래의 문명 담론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
[이미지=챗GPT]
미국 실리콘밸리와 유럽의 IT 기업들이 명상과 요가, 마음 챙김을 조직문화 속에 도입하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기술 혁명의 중심에 선 사람들조차 인간 정신의 안정과 내면의 균형 없이는 미래 문명이 지속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베다 철학은 인간 정신의 훈련과 자기 성찰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인간은 외부 세계를 정복하기 전에 먼저 자기 내면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본다. 탐욕과 분노, 집착과 무지를 넘어설 때 비로소 참된 자유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천부경 역시 우주의 질서를 인간 내면 속에서 발견하려 했다. 거대한 우주는 인간 밖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정신 속에도 존재한다는 시선이다.
이러한 사상은 앞으로의 AI 시대에 더욱 중요해질 가능성이 크다. AI는 인간의 지식을 학습할 수 있다. 인간의 언어도 모방할 수 있다. 인간의 판단과 행동 패턴도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 영혼의 깊이와 존재의 의미, 우주와 연결된 정신성까지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지는 아직 아무도 알지 못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SAI(Soul-Centered AI)’라는 문제의식이 등장한다.
기술 중심 문명이 아니라 인간 정신 중심 문명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AI가 인간을 지배하는 시대가 아니라 인간 정신과 윤리가 기술을 이끄는 문명이 되어야 한다는 질문이다. 그리고 이 문제의식은 결국 아시아의 오래된 영성 전통과 다시 연결된다.
베다와 천부경은 서로 다른 문명권에서 태어났지만 놀라운 공통점을 가진다. 둘 다 인간을 우주의 일부로 바라보며, 인간 정신의 깊이를 강조하고, 자연과 생명의 연결성을 이야기한다. 둘 다 물질보다 존재를, 소유보다 조화를, 경쟁보다 균형을 중시한다.
여기에 한국의 대표적 사상가인 다석 유영모의 철학 역시 깊게 연결된다. 다석은 동서양의 여러 종교와 경전을 연구하면서 “진리는 하나이지만, 그것을 전하는 성인과 선지자들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는 사유를 강조했다. 이는 베다의 “진리는 하나이나 현자들은 여러 이름으로 부른다”는 정신과도 통하는 부분이다.
다석은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한 분이지만, 인간은 각 시대와 문화, 언어와 역사적 환경 속에서 그 진리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표현해 왔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기독교와 불교, 유교와 노장사상, 그리고 동양의 천부경적 우주관까지 하나의 거대한 진리 탐구 과정으로 회통시키고, 이해하려 했다. 이는 인간과 우주, 생명과 정신의 근원을 하나로 바라보려 했던 힌두교와 천부경의 오래된 시선과도 맞닿아 있다. 결국 인간 문명의 깊은 곳에는 서로를 분리하기보다 하나의 근원으로 연결하려는 정신이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인류는 지금 가장 오래된 아시아의 경전들 속에서 가장 미래적인 질문을 다시 만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술은 인간을 어디까지 데려갈 수 있는가.그리고 인간은 기술 이후에도 인간으로 남을 수 있는가. 수천 년 전 인도의 성자들과 한민족의 정신문화는 서로 다른 언어로 비슷한 이야기를 남겼다. 인간은 단지 계산하는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우주를 품은 영혼이다. 천부경은 이를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