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상컬럼] 트럼프의 호르무즈 압박, '생존형 동맹' 한국의 선택은

동맹은 오랫동안 하나의 전제로 작동해 왔다. 위기가 오면 함께 움직인다. 설명은 필요 없고, 선택도 단순했다. 그러나 지금 그 전제가 흔들리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호르무즈 해협 사태를 계기로 한국을 향해 군사적 참여를 요구한 장면은 단순한 외교적 압박이 아니다. 동맹의 방식이 바뀌고 있다는 구조적 신호다.


트럼프의 메시지는 직설적이다. “안보는 공짜가 아니다.” 이 한 문장에는 세 가지 계산이 들어 있다. 첫째, 비용 분담이다. 미국은 더 이상 모든 안보 부담을 혼자 짊어지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둘째, 국내 정치다. 미국 유권자에게 ‘우리는 손해 보는 동맹을 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셋째, 협상 전략이다. 요구를 최대치로 끌어올린 뒤 실제 협상에서 유리한 조건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이 세 가지가 결합되면서 동맹은 점점 ‘계약’에 가까운 형태로 변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에 닻을 내린 선박들 사진AP
호르무즈 해협에 닻을 내린 선박들 [사진=AP 연합뉴스]


문제는 이 변화가 모든 국가에 동일하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한국은 예외에 가깝다. 한국은 주한미군 주둔을 기반으로 안보를 유지하는 구조다. 북한이라는 실존적 군사 위협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동맹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 조건이다. 이 점에서 한국의 동맹은 유럽 국가들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예를 들어 프랑스와 영국은 자체 핵 억지력을 보유하고 있다. 독일 역시 직접적인 군사 위협에 노출된 상황은 아니다. 이들 국가는 동맹을 기반으로 움직이지만, 필요할 경우 전략적 자율성을 행사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반면 한국은 동맹이 흔들릴 경우 곧바로 안보 공백이 발생할 수 있는 구조다.


따라서 한국이 단순히 “다른 동맹국들처럼 계산적으로 행동하자”고 말하는 것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주장이다. 한국의 동맹은 ‘선택형 동맹’이 아니라 ‘생존형 동맹’이다. 이 전제가 빠지면 어떤 전략도 공허해진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계산 없이 움직일 수는 없다. 여기서 중요한 개념이 등장한다. 계산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계산의 방식이다. 과거의 동맹은 무조건적 참여를 전제로 했지만, 지금의 동맹은 예측 가능한 행동을 요구한다. 다시 말해 중요한 것은 ‘얼마나 참여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기준으로 참여하느냐’다.


트럼프식 압박이 만들어낸 변화는 바로 이 지점이다. 동맹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더 이상 자동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각국은 참여의 범위와 조건을 스스로 설정하고, 그 기준을 일관되게 유지해야 한다. 이것이 새로운 형태의 신뢰다. 감정적 결속이 아니라, 예측 가능한 행동에서 나오는 신뢰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 기준을 가져야 하는가. 첫째는 ‘직접적 국익’이다. 해상 교통로 보호와 같은 사안은 한국 경제와 직결된다. 원유와 원자재의 상당 부분이 중동을 통해 들어오는 구조에서 해상 안전은 단순한 외교 문제가 아니라 생존 문제다. 이 영역에서의 기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에 가깝다.


둘째는 ‘충돌의 수준 관리’다. 많은 논의에서 놓치는 부분이 있다. 군사 참여는 ‘참여냐 불참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느 수준까지 참여하느냐’의 문제다. 예를 들어 해상 호위 작전은 분명 군사적 긴장을 동반한다. 완전히 안전한 작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교전 규칙을 제한하고, 작전 범위를 설정하며, 공격적 작전에는 참여하지 않는 방식으로 충돌의 강도를 관리할 수 있다. 군사 행동은 이분법이 아니라 스펙트럼이다.


셋째는 ‘다자 틀의 활용’이다. 단독으로 움직이는 것과 다자 협력 틀 안에서 움직이는 것은 의미가 다르다. 다자 작전은 정치적 부담을 분산시키고, 특정 국가와의 직접 충돌 가능성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일본과 유럽 국가들이 선호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한국 역시 이 틀을 전략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넷째는 ‘시간의 분리’다. 외교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속도와 신중함의 균형이다. 군사적 위협은 빠르게 대응해야 하지만, 파병과 같은 결정은 국가 전략 차원의 판단이다. 이 둘을 하나로 묶으면 판단이 왜곡된다. 따라서 의사결정을 단계로 나눌 필요가 있다. 초기에는 제한적 참여로 대응하면서, 상황을 평가해 점진적으로 확대하거나 조정하는 방식이다. 이는 즉흥적 결정을 피하면서도 대응 속도를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다.


다른 동맹국들의 움직임도 이 구조를 잘 보여준다. 일본은 직접 전투 참여를 피하면서도 정보 지원과 후방 지원을 통해 기여한다. 독일은 군사 개입에 신중하지만, 경제적·외교적 지원을 병행한다. 프랑스는 필요할 경우 군사력을 사용하지만, 독자적 판단을 유지한다. 이들은 모두 참여의 방식과 수준을 조정하면서 동맹과 자율성을 동시에 관리하고 있다.


한국 역시 같은 질문을 받고 있다. 어디까지 참여할 것인가. 그리고 그 기준은 무엇인가. 중요한 것은 한 번의 결정이 아니라, 반복 가능한 기준이다. 그래야만 외부의 압박 속에서도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


트럼프의 압박은 일회성 사건이 아니다. 미국의 전략은 점점 명확해지고 있다. 동맹국에게 더 많은 역할을 요구하고, 그 대가를 협상 카드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이는 앞으로도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 이 변화에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결국 핵심은 하나다. 동맹은 유지하되, 방식은 바꿔야 한다. 자동 참여에서 조건부 참여로, 감정적 결속에서 구조적 판단으로 이동해야 한다. 그러나 이 변화는 한국의 현실을 전제로 해야 한다. 생존형 동맹이라는 구조를 무시한 채 다른 국가의 모델을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지금 세계는 ‘함께 가는 동맹’에서 ‘어디까지 함께 갈 것인가를 정하는 동맹’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 변화 속에서 한국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가 아니라 설계다.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 어떻게 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트럼프의 압박은 선택을 강요한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것은 그 선택을 가능하게 만드는 기준이다. 그 기준이 명확할 때, 압박은 위기가 아니라 전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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