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한국의 망 이용료 정책을 공개 비판하며 디지털 통상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에 해당 논쟁이 단순 통신 정책을 넘어 인공지능(AI) 시대 핵심 자원인 데이터 개방 문제로 확장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27일(현지시간) USTR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X·구 트위터)에 "세계 어느 나라도 자국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ISP)의 트래픽 전송에 네트워크 사용료를 부과하지 않는다. 한국만 예외"라고 밝혔다. 그간 보고서 수준에서 지적해 온 한국의 망 이용료 정책을 대표 비관세 무역장벽으로 공개 압박한 것이다.
이 같은 논쟁은 2023년 NTE 보고서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2024년에는 디지털 규제 전반으로 확대되며 통상 이슈로 부상했고, 2025년에는 핵심 비관세 장벽으로 지목됐다. 2026년에는 AI 인프라 사업에서 미국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업체(CSP)가 배제됐다는 점까지 문제로 제기되며 압박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미국은 해당 정책이 해외 사업자에 대한 차별적 비용 부과이자 시장 접근 제한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국내 통신업계는 대규모 트래픽을 유발하는 글로벌 플랫폼이 망 투자 비용을 분담하지 않는 구조 자체가 불공정하다는 입장이다.
안정상 중앙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겸임교수는 "망 이용료는 데이터 사용량 증가에 따른 망 과부하를 고려한 기본적인 비용 부담 원칙"이라며 "빅테크가 사실상 무료로 망을 이용하며 확보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AI 기술 지배력을 확대하는 구조는 국내 AI 산업 성장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통상 압박이 데이터 개방 요구로 이어질 가능성도 경계한다. 데이터는 AI 모델 학습과 산업 경쟁력의 핵심 자원인 만큼, 개방이 확대될 경우 국내 기업의 경쟁 우위가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다.
봉강호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연구원은 "분명 빅테크와 데이터 공유는 글로벌 서비스와 연계성을 높이는 장점이 있다"며 "다만 데이터 개방 시 국내 AI 기업들의 고유 데이터 기반 경쟁 우위가 약화할 가능성, 국내 AI 산업의 차별화 요소가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짚었다.
유럽연합(EU)의 경우 과거 망 사용료 도입을 검토했으나 실행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해 사실상 철회한 바 있다. 다만 이후에도 통신사와 빅테크 간 비용 분담 갈등이 이어지면서 지난 1월에는 '디지털 네트워크법(DNA)'으로 규제 기관이 중재에 나서는 방식의 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단순 정책을 넘어 제도적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비판한다. 김용희 선문대 경영학과 교수는 "글로벌 서비스 시대를 대비한 준비가 부족했던 만큼 USTR의 압박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며 "국회 차원에서 사업자 의견을 청취하고 실질적인 개선 방안을 아젠다로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안 교수는 "무조건적인 강제보다는 기업 간 자율 협상을 기본으로 하되, 일정 기간 내 합의가 이뤄지지 않거나 일방적 거부가 있을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규제하는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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