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요한의 티키타카] (5) 유권자를 위한 정치컨설팅 : 공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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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요한 시사평론가]


 
필자는 오랜 시간을 ‘정치 컨설팅’을 업으로 삼았다. 그 덕에 지금은 ‘평론’을 하고 있지만, 늘 아쉬운 것은 후보자를 위한 컨설팅은 있었으나, 그 후보자를 선출하는 유권자를 위한 정치 컨설팅은 없었다는 것이다. 내란이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6.3 지방선거가 치러지게 되니 이제는 암울한 한국정치의 1막을 내리고 제대로 된 사람을 정치인으로 뽑아야 하지 않을까 해서 대한민국 최초로 ‘유권자를 위한 정치컨설팅’으로 글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5) 유권자를 위한 정치컨설팅 : 공천
 
정치인이 선출되어서 공직에 나가려면 필히 거쳐야 하는 과정이 바로 ‘공천(公薦)’입니다. 공천은 정당이 선거에 나설 예정인 예비 후보자에 대해 공식적으로 검증을 하고, 그 정당에 적합한 후보자라고 공식적으로 추천하는 과정입니다. 자기 당을 대표해서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도지사나 시장 등에 나갈 후보를 결정하는 매우, 아주, 너무나,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치인은 공천(公薦)을 받지 못하면 그 정당 후보로 출마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나는 여야 각 정당의 소속이 아닙니다! 저는 국민의 소속입니다!”라는 식으로 자신의 무소속 출마를 정당화 시키는 사람들이 가끔 있지만, 사실 정당의 공천을 받지 못하면 선거를 치르는데 되게 힘듭니다. 정당 후보에게 선거가 힘든 것이 100이라면 무소속 후보는 아마 1,000,000 정도는 될 겁니다. 그래서 그들은 정당 공천에 목을 맵니다.
 
공평할 공(公), 천거할 천(薦)
 
요즘 한국축구에 대해 말이 많던데, 그 근본 이유가 감독 선임에 대해서 공정하지 않다는 팬들의 인식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축구 경기(선거)에 나가기 전, 축구 협회(정당)에서 가장 좋은 실력을 가졌거나 승리 가능성이 높은 감독이나 선수(후보자)를 뽑는 단계, 이것이 정치로 치면 바로 공천입니다.
 
현재 한국 축구는 2002년 히딩크 시절의 기억에서조차 한참 후퇴했기 때문에 팬들이 화를 내는 겁니다. 당연한 것이죠. 정치가 이와 똑같은데요, DJ가 ‘젊은 피’라고 수혈을 했든, YS가 개혁 빨로 흡수를 했든, 이 살벌하고 비인간적인 정치권에서 공천을 받아 당선되어 정치생명을 이어간다는 것은 보통 내공이 아닙니다. 문제는 그들이 첫 발을 내딛는 공천이 정당한 것인지에 의문을 품는 많은 국민이 있다는 겁니다. 공천은 공평할 공(公), 천거할 천(薦)의 개념으로 공평하게 천거해야 합니다. 그저 유력 정치인의 개인적인 관계에 따라 권력을 나눠(?) 주는 식의 사천(私薦, Private Nomination)이라면 이는 민주주의적 원칙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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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유권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지가 모여 대한민국의 미래를 만듭니다. ⓒ 최요한>]

 
민주주의 시대 이전에 정치인이 되는 방법
 
이제 와서는 매우 생소하고, 또 매우 부끄러운 일이지만, 민주주의 이전에 정치인이 되는 방법은 유력 정치인에게 아부하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정치인에게 아부하는 길에는 ‘정치자금’을 대는 것까지 포함합니다.
 
한때 정치권에서는 ‘20낙 30당’이라는 말이 유행했습니다. 선거자금으로 20억 원을 쓰면 낙선되고, 30억 원을 쓰면 당선된다는 정치권의 은어입니다. 그 시절에 20억 원을 쓰고, 30억 원을 쓴 정치인은 당연히 자신의 임기동안 투입한 자금만큼 뽑아내기(?) 위해 부정과 부패를 벌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윗사람들에게 정치자금을 뿌리고, 유력 정치인에게 아부를 해서 갑자기 ‘공천’을 받거나, 비례 대표(당시에는 ‘전국구’라고 불렀습니다) 의원직을 얻는 방법 외에는 정치인이 될 수 있는 길이 아예 막혀 있었습니다. 이는 여야 모두 그랬습니다. 게다가 ‘3김’으로 불리던 그 시절에는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그들의 휘하에 들어가지 않으면 제대로 정치를 할 수 없었습니다. 설사 ‘개천에서 난 용’이라 하더라도 결국은 3김의 영향력 속에 들어가면 ‘원 오브 뎀’의 그저 그런 정치인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지금의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김대중과 김영삼의 커다란 역할이 있었지만, 궁극적으로는 독재자들의 탄압을 견디면서 끊임없이 민주주의 투쟁을 해 온 대한민국 국민들의 역할이 가장 큰 것입니다. 그렇기에 대한민국 국민들이 ‘노벨평화상’ 후보로 등극한 것도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술 잘 말아서 장관자리 얻은 정치인
 
이름만 대면 알만한 정치인이 있었습니다. 평소 그의 정무감각이라든지 성과라든지 정치력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던 정치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늘 좋은 자리와 무난한 정치적 승리를 해 왔다는 것이죠. 평소에 굉장히 의문이 들었는데, 그 의문이 풀렸습니다. 그것도 그의 솔직한 토로를 통해섭니다.
 
평론가들을 비롯한 지인들과의 술자리에 그가 나타났습니다. 사실 저는 그 자리에 그가 참석할지는 몰랐습니다. 그 자리에 나가서야 비로소 그 ‘정치인’이 참석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이미 모 장관직을 다 마치고 나서 다소 여유가 생긴 것 같았습니다. 술자리가 막 무르익을 무렵 그가 나섭니다. 자신이 소맥을 기가 막히게 잘 말 수 있다는 겁니다.
 
“제가 이거 때문에 장관직을 받았습니다.
어르신들께 ‘예쁨’을 받았거든요”
 
순간! 저는 할 말을 잊었습니다. 설사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 자신이 스스로 이렇게 이야기 하다니요?
 
하지만 그와 친분을 가진 몇몇 사람들도 맞다! 맞다! 라면서 호응을 해 주었습니다. 그 정치인이 승승장구할 수 있는 배경이 그의 ‘술 마는 실력’이라는 겁니다. 다들 웃고 떠들며 박장대소를 하는 중에 저는 도저히 맞장구치면서 웃을 수 없었습니다. 주위에서 제 표정을 읽었던 탓인지 이후에는 그런 자리에 초대받지는 못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그가 정치인으로서 승승장구하고 장관직을 수행하면서 이름을 날릴 수 있는 배경이 소위 당내 ‘어르신’들께 술도 잘 말고, 아부하면서 그저 좋게 관계를 맺었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고백을 한 것입니다. 창피함을 모르는 겁니다. 정치가 뭔지, 정치인이 뭘 하는 사람인지 인식하지 못하고 스스로 ‘무식함’과 ‘무능함’을 노출한 것입니다. 결국 그 정치인은 퇴출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지방선거의 역사
 
우리 대한민국의 지방선거의 역사는 사실 왜곡되어 시작되었습니다. 1948년 제헌헌법에 지방자치가 명문화 되었지만, 이승만 정권은 정치 불안정을 핑계로 지방의회 선거를 실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이승만 정권은 6.25 한반도 전쟁 중인 1952년 4월 25일, 돌연 지방의회 선거를 실시했습니다.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본래 의미가 아니라, 당시 이승만 재집권에 반대하는 국회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지방의회를 구성한 것입니다. 그렇게 이승만은 지방의원의 도움으로 재집권에 성공합니다. 우리의 지방자치는 그렇게 시작부터가 왜곡이었습니다.
 
결국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나고 쿠데타 세력은 지방의회를 모두 해산시킵니다. 그리고 자치단체장은 임명제로 바꿉니다. 1972년 유신헌법은 지방의회에 대해 ‘조국의 통일 때까지 유예한다.’고 규정했고, 전두환 정권 역시 지방자치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독재자들이 중앙에서 지방까지 철저하게 통제하기 위해 지방자치를 거부한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힘은 아래에서 위로 치받는 힘입니다. 그 힘을 독재자들은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거부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될 수 있으면 그 힘을 제어하기 위해 ‘간접선거’와 ‘체육관 선거’로 대통령을 뽑고, 국민의 여론과는 정반대의 길로만 가려고 했습니다.
 
이 왜곡을 바로 잡은 이가 바로 DJ입니다. 87년 6월 항쟁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는 쟁취했지만 실질적인 풀뿌리 민주주의인 지방자치 선거는 이런 저런 핑계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1990년 10월 8일, 218석의 거대 여당 민자당에 맞서 70석밖에 되지 않는 평민당의 김대중 총재는 ‘보안사 해체 및 군 정치적 중립’과 함께 ‘지방자치제 전면 실시 약속 이행’ 등 4가지 요구를 하며 단식투쟁에 돌입했습니다. 당시 9 땡! 하고 저녁 뉴스가 시작할 때 “단식투쟁 중인 평민당 김대중 총재는~” 하고 놀란 토끼 눈을 하고 멘트를 하던 앵커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생생합니다. 결국 김대중 총재의 단식투쟁은 멈춰 있던 지방자치제의 부활을 이끌어내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방자치와 대한민국의 운명, 공천으로부터
 
이재명 대통령은 국가발전 전략으로 ‘5극 3특’을 제시했습니다. 수도권 1극 집중 체제를 해소하고, 5개의 초광역 경제권과 3개의 특별자치도로 국가 전체의 경쟁력을 높이고자 하는 전략적 결정입니다. 단순히 행정구역을 나누는 것을 넘어, 수도권 1극 집중으로 인한 성장 잠재력 훼손을 해결하고, 지역별 맞춤형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데 사활을 건 국가전략입니다.
 
이 어마어마한 국가 전략을 뒷받침 하는 것은 당연히 ‘지방자치제 선거’입니다. 때로는 이 지방자치 선거가 지역토호의 신분세탁을 돕고 그들과의 전략적 동거를 이루는 축이기 때문에 아예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된 풀뿌리 민주주의의 성장과 정치개혁을 위해서는 더 많은 많은 민주주의, 더 깊은 민주주의가 필요합니다. 자신에게 마이크가 있는지도 모르는 우리 주위의 소외된 이들에게 제대로 된 민주주의의 효능감을 주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과정이 바로 지방자치제입니다.
 
그 시작은 각 정당의 공천입니다.
 
정치를 개인의 이익과 야욕을 실현하는 장으로 여기는, 거의 과거 봉건 시대를 사는 정치인들이 아직 많은 이 시대에, 자신의 존재 이유가 어디까지나 국민이고 국민에 대한 봉사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각 정당은 공천해야 합니다. 그것이 결국 대한민국 풀뿌리 민주주의의 발전이고 결국 대한민국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생각을 해야만 합니다. 또 우리 유권자는 날카로운 매의 눈으로 그들을 선별해야 합니다.
 
작가 한강은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지, 죽은 자가 산자를 구할 수 있는지 묵직한 질문으로 우리를 각성하게 했고, 그것이 지난 12.3 내란을 진압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선택에 대해 먼 우리 후손은 뭐라고 평가할까요?
 
 
필자 주요이력
- 前 정치컨설턴트
- 前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제 1회 선거아카데미 교수
  • 정치평론가
- 現 경제민주화 네트워크 자문위원
- 現 최요한콘텐츠제작소 소장
 
저서 : 유권자를 사로잡는 현장정치 오마이선거 오마이전략(매일컴 刊,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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