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순자산 1000억원과 현금성 자산 300억원을 보유한 한 건실한 기업이 외부감사인 측에서 ‘의견거절’을 통보받았다. 주가는 95% 폭락했고 결국 시장에서 퇴출당했다. 외부감사인이 밝힌 의견거절의 이유는 충분하고 적합한 감사증거를 수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실상은 임원들의 비위 행위가 드러날 것을 우려해 자료 제출을 거부한 결과였다. 억울한 소수주주들 사이에서 ‘고의 상장폐지’ 의혹이 터져 나온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2023년 다시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순자산 2000억원에 꾸준히 이익을 내던 우량회사가 ‘감사범위 제한으로 인한 한정의견’을 받았다. 회사는 이듬해에도 그다음 해에도 동일한 사유로 한정의견을 받아 결국 상장폐지되었다. 1년의 개선기간을 받았지만 2025년에도 다시 한정의견을 받은 결과였다. 회사 존속에 필수적이지 않은 소규모 자산의 손상 관련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회사가 관련 자료를 제출하거나 재무제표를 수정했더라면 한 번은 적정의견을 받을 수도 있었을 텐데 3년 연속 동일 사유로 한정의견이었다. 대주주 이익을 위한 기획 상장폐지를 소수주주들이 의심하는 이유다.
상장폐지가 ‘이익’이 되는 구조
감사의견 미달을 이용한 상장폐지 의혹이 계속 제기되는 이유는 그에 따른 손익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상장폐지되어도 회사는 시장을 통한 자금조달의 어려움 정도가 그 불이익이므로 자금조달의 필요성이 작은 회사는 굳이 상장을 유지할 실익이 없다. 오히려 대주주에게 상장폐지는 기회다. 정리매매 과정에서 소수주주 주식을 헐값에 매집할 수 있고 이후 주주들을 완전히 축출해 100% 지분을 확보하면 회사를 더 비싼 값에 팔거나 배당금을 독식할 수 있다. 반면 소수주주는 주가 폭락에다 매매의 어려움은 물론 세금 부담까지 늘어나는 지옥을 경험한다.본래 상장회사 대주주가 소수주주를 모두 축출하려면 시장가보다 높은 가격에 공개매수를 하는 것이 정공법이다. 그러나 이는 막대한 비용이 든다. 반면 상장폐지를 하면 그런 비용을 들이지 않고 쉽게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자본잠식이나 매출액 미달 등 상장폐지 사유는 사실상 회사가 망가져야 가능한 일이지만 감사자료 미제출은 그렇지 않다. 사업보고서 미제출은 즉각적인 형사처벌 대상이지만 ‘정당한 이유’라는 모호한 경계를 이용해 감사자료를 제출하지 않으면 감사인의 한정의견을 유도하면서 형사처벌은 면할 수 있다.
법원의 면죄부와 계속되는 약탈
소수주주들의 손해라도 제대로 배상을 받는 것이 필요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상장폐지가 되면 회사에 실제 경제적 손실이 발생하기 전에 주가는 폭락한다. 주식을 시장에서 처분할 수 없다는 것 그 자체가 이미 주가 하락의 원인이 된다. 2017년 사례에서 소수주주들은 상장폐지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주가 폭락에 따른 손해를 회사의 재산 감소로 인한 ‘간접손해’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상장폐지로 인한 회사 재산 감소의 효과가 발생하기 전에 주가 하락으로 손해가 발생했지만 법원은 상장폐지도 임원들의 경영 실패 결과라며 이를 간접손해로 보았다. 결국 회사와 임원들은 면죄부를 받았다. 게다가 소수주주들의 피해는 상장폐지에서 끝나지 않는다. 상장폐지만 하고 나머지 소수주주들을 그냥 내버려둔다면 굳이 상장폐지를 할 이유가 없다. 이제 대주주는 소수주주 지분을 헐값에 강제매수할 차례다. 이때 주식병합이나 현금 교부형 포괄적 주식교환 방법이 사용된다. 현행 상법과 대법원 판례에 의하면 1000대 1, 1만대 1의 주식병합도 가능하고, 그걸 되풀이할 수도 있다. 주식병합 비율에 단 1주라도 모자라면 소수주주는 헐값에 축출된다. 현금 교부형 포괄적 주식교환도 정리매매 가격으로 축출된다. 대주주 100% 지분인 회사가 되었으니 이제 마음껏 배당을 할 수 있다. 소수주주들도 기여하여 형성된 회사 재산이지만 청산이든 배당이든 모두 대주주가 갖는다.
자본시장 개혁, 상법 개정에서 멈추지 말아야
타인의 재산을 강탈하는 것이지만 우리 법과 법원이 이를 허용하고 있다. 자본시장 개혁이 상법 개정에서 멈추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4월 21일 국회에서는 상법 개정 이후 소수주주 보호 과제를 논의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헐값에 축출당하는 소수주주들을 보호할 실질적인 안전망 마련에 우리 사회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먼저 상장폐지 관련 손해배상책임 규정 마련을 생각할 수 있다. 주식병합이 소수주주 축출의 수단이 되지 않도록 그 비율과 횟수를 제한해야 한다. 현금 교부형 포괄적 주식교환의 사유를 제한해야 한다. 시가가 순자산가치에 이르지 못하면 순자산가치를 반영해서 주식가치를 산정하도록 해야 한다.©'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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