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글로벌비지니스연구센터 원장]
애국이란 자신이 속한 국가를 사랑하는 것이고, 이러한 마음을 애국심이라고 한다. 태어난 나라를 사랑하는 것만이 아니라 나중에 취득한 국적의 나라를 사랑하는 것도 애국의 본질적 측면에서는 차이가 없다. 다만 태생적으로 모국이나 조국을 가진 이들과 달리 본의든 아니든 간에 새롭게 선택한 국가에서 사는 이들에겐 일정 수준 이상 삶의 질이 만족하면 전자보다 훨씬 더 큰 국가 기여도를 보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삐뚤어진 애국과 건전한 애국에 대한 경계선이 만들어져 나오고 있기도 하다. 군주주의 시대나 강력한 독재, 즉 파시즘에 따라 강요된 1인 혹은 소수 통치자에 대한 국가주의 혹은 국수주의(민족주의) 경우가 전자에 속한다. 반면 이에 대한 반발로 생겨난 ‘시민적 미덕’과 ‘헌법 준수’가 바람직한 애국의 형태로 자라를 잡아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애국에 대한 근본적 개념에 다소 혼선이 생기면서 일부에서는 과거로의 회귀가 목격된다. 1970년대부터 신(新)자유주의 여파로 시작된 자본의 세계화가 빚어낸 글로벌 경제의 심화와 이에 따른 부정적 결과인 경제적 격차 확대로 애국에 대한 정의가 다시 흔들린다. 대표적으로 서유럽이나 중남미 국가들에서 나타나고 있는 극우 내셔널리즘(국수주의)의 부활이다. 정치는 이를 교묘하게 역이용하면서 부추긴다. 미국의 트럼피즘도 이와 유사한 현상으로 보인다. 한편으로 미·중 간의 충돌 격화와 보호무역주의의 확산으로 안보나 경제적 이익을 두고 국가이기주의가 빠르게 부상 중이다.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면서 협력이나 공동의 목표보다 자국 중심으로 이익을 저울질하는 경향이 농후해지고 있다.
한국은 어떤가. 이러한 세계적 흐름을 따르고 있는가 하는 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다소 다르다. 총론에서는 비슷해 보이지만 각론은 다른 면이 많다. 특히 국가·기업·개인 등 경제주체들의 이해관계가 상충하면서 따로 노는 분위기다. 정치권은 끊임없는 당파 싸움과 선심성 포퓰리즘으로 국가를 계속 분열시킨다. 경제적 성취의 일등 공신인 기업은 양극화 확대로 찬밥 신세가 되어 국내에서는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하고 해외로만 떠돈다. 타락한 일부 개인은 천민자본주의에 탐닉하여 더는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 비인간적이고 폐쇄적인 사회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는 애국이라는 말이 오히려 낯설고 생소하다. 심지어 애국이 밥 먹여주냐는 비아냥이 시중에 난무한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가 자국 상품 괄시, 지방 제조업·상권 붕괴와 무관치 않아
이웃 중국과 일본을 보면서 상대적으로 우리와 다른 점을 발견하게 된다. 중국의 젊은 세대들은 윗세대보다 훨씬 더 애국적 성향을 보인다. 경제적 관점에서 소비 주력인 2030들의 애국 소비 열풍은 지난 2018년 무렵부터 시작되었다. 중국에서는 이를 ‘궈차오(国潮)’라고 지칭한다. 현지 브랜드를 중심으로 하는 자국 문화와 제품 소비를 중시하는 성향이 강하게 나타났다. 미국과의 무역 분쟁과 코로나로 인한 봉쇄로 중국 정부의 로컬 제품 소비 강화 정책이 이를 키웠다.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중국이 시행한 애국주의 교육을 받은 세대들에게 생겨난 두드러진 변화다. 이로 인해 중국 내수시장에서 가장 피해를 많이 본 제품이 한국 소비재다. 설 자리를 잃고 중국 비중을 줄이거나 보따리를 싸는 기업이 늘어났다.
소비재나 문화적 영역에서 불기 시작한 자국산 열풍은 중간재 혹은 자본재 부문으로도 빠르게 옮겨갔다. 이른바 중국 정부가 추진한 ‘중국제조 2025’의 핵심인 ‘홍색공급망(Red Supply Chain)’ 완성으로 수입 중간재 대신 자국 부품 혹은 소재로 완제품을 생산한다는 야심에 찬 전략이다. 중국의 이러한 계획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절반 이상의 성공을 거두고 있다. 중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이 속속 떠나고, 그 빈자리를 중국 토종 기업들이 그 간격을 속속 메웠다. 결과적으로 중국 기업이 만든 가성비를 장착한 상품이 세계 시장을 호령하는 단계에 다다르고 있다. 한국 시장은 중국 상품의 테스트 시장이자 좋은 먹잇감으로 전세 역전이 생겨났다. 중국산 화장품에다 가전제품이 한국 소비자의 지갑을 열어젖힌다. 전기차 강자인 BYD 수입차 매장 수 ‘빅4’로 올해 들어 수입차 신규등록 4위로 치고 올라왔다.
중국산 없이 하루도 버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다. 얄팍한 상술로 무장한 유통업자들의 계략과 저가 상품의 유혹에 빠진 소비자들의 무분별한 소비가 춤을 춘다. 한편 일본 소비자들은 중국인의 애국 구매와는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자국 상품에 대한 자만심이 아직 대단하다. 세계 시장에서 주목을 받는 한국 가전이나 스마트폰, 자동차 등이 유독 고전하고 있는 시장이 일본이고 근년에는 중국까지 합세했다. 한국 자동차가 1년에 천 대도 팔지 못하는 시장이 일본으로 말 그대로 철옹성이다.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천신만고 끝에 겨우 3위로 올라섰고, TV 시장에서는 이름도 올리지 못하고 있다. TV의 경우 일본 브랜드가 중국에서 만들어 들어오는 제품이 주류다. 일본 소비자의 자존심이 한국 상품에 특이하게 냉정하다.
중국과 일본과 비교하면서 우리의 상황을 구태여 나쁘다고 하기는 그렇지만 문제는 분명하게 있어 보인다. 긴요하지 않은 상품의 수입까지 내수시장에 물밀듯이 들어오면서 교란이 발생하고 국산 브랜드의 퇴출이 급격하게 증가한다. 또한 지방 제조업이 붕괴하고 상권마저 무너지는 비명이 크게 들린다. 일자리가 없어지면서 소득의 불균형이 심화하고 사회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받는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가 수입에 대해 칼을 댈 수 있는 그러한 시대도 아니고, 소비 풍조를 나무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만 이웃 중국인들과 일본인들이 지갑을 열 때 자국 상품을 우선 구매하여 애국을 표현하는 방식은 새겨보고 들을 필요가 있다. 중국인의 애국 소비로 중국 시장에서 한국 상품은 맥을 추지 못하는데 한국 시장에서는 중국 상품이 날개 돋친 듯이 팔리고 있다면 뭔가 이상하지 않나.
김상철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경제대학원 국제경제학 석사 △Business School Netherlands 경영학 박사 △KOTRA(1983~2014년) 베이징·도쿄·LA 무역관장 △동서울대 중국비즈니스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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