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산업의 판이 바뀌고 있다. 예전의 방산은 탱크와 전투기, 함정과 포를 얼마나 잘 만드느냐의 경쟁이었다. 이제는 그보다 훨씬 넓은 차원의 경쟁으로 옮겨가고 있다. 누가 더 안정적인 공급망을 갖췄는지, 누가 더 오래 전장을 버틸 수 있는 체계를 만들 수 있는지, 누가 무기뿐 아니라 탄약·정비·훈련·우주자산까지 묶어 하나의 패키지로 제시할 수 있는지가 승부를 가르고 있다. 방산이 더는 공장 안의 제조업이 아니라 외교와 기술, 공급망과 국가전략이 교차하는 종합산업이 되고 있다는 뜻이다.
이 흐름 속에서 눈에 띄는 장면이 나왔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풍산의 탄약사업부 매각을 위한 비공개 입찰에 참여해 최종입찰제안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인수 완료’가 아니라 ‘인수 추진’ 단계다. 풍산 역시 4월 3일 공시를 통해 기업가치와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사업구조 개편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지만, 현재까지 구체적으로 확정된 바는 없다고 밝혔다.
풍산은 소구경탄부터 대구경탄에 이르는 각종 군용 탄약과 스포츠용 탄약을 생산해 온 기업이다. 만약 한화의 인수 추진이 현실화한다면, 한화는 탄약 생산에서부터 무기 플랫폼 제작과 수출에 이르는 구조를 한층 더 촘촘하게 묶을 수 있게 된다. 시장이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주포와 장갑차, 유도무기 같은 플랫폼 역량에 탄약 공급능력까지 더해지면, 단순히 제품 라인업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방산 밸류체인 전체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방산에서 탄약은 부품이 아니다. 무기체계를 실제 전투력으로 바꾸는 마지막 고리다. 아무리 성능이 뛰어난 자주포를 수출해도, 정작 그 포가 안정적으로 쏠 포탄이 없다면 상품 경쟁력은 반쪽에 그친다. 최근의 국제 분쟁은 이 점을 더욱 또렷하게 보여줬다. 현대전은 첨단 플랫폼의 전시장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대량 소모전의 성격을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중요해지는 것은 ‘무엇을 갖고 있느냐’보다 ‘얼마나 오래 공급할 수 있느냐’다. 결국 탄약은 무기의 부속품이 아니라 전쟁 지속 능력 그 자체다.
여기에 또 하나의 축이 더해졌다. 같은 날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서울 용산 국방부에서 프랑스 측과 국방장관 회담을 갖고 안보 정세와 국방·방산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국방부와 주요 보도에 따르면 양측은 중동 지역 긴장 고조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등으로 국제 안보 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고, 한반도와 인도·태평양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전략적 소통과 공조를 강화하기로 했다. 이 회담은 단순한 의전성 만남이 아니었다. 한국과 프랑스가 서로를 기술력과 경쟁력을 갖춘 방산 협력 파트너로 확인하고, 상호보완적 협력을 확대하기로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눈여겨볼 부분은 협력의 범위다. 양국은 공군 간 PEGASE 훈련, 해군 함정 상호 기항, 국제우주연습인 SparteX 참가 등 군사훈련과 우주 분야 협력이 확대되고 있음을 평가하고, 미래 안보 영역에서도 협력을 심화하기로 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방산이 더는 지상무기와 해상무기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전장은 이미 우주와 데이터의 영역으로 넓어졌다. 위성과 감시정찰, 통신과 네트워크가 무기체계의 눈과 귀가 된 시대다. 총알과 포탄이 전쟁의 몸이라면, 우주와 정보는 전쟁의 신경망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총알에서 우주까지’라는 말은 과장이 아니라 현실 인식이 된다. 안으로는 탄약과 플랫폼을 묶는 수직적 통합이 진행되고, 밖으로는 프랑스 같은 기술 강국과의 협력을 통해 훈련·해양·우주 분야까지 외연을 넓히는 수평적 확장이 동시에 이뤄지고 있다. 한국 방산이 지금 겪는 변화는 단순한 기업 뉴스의 축적이 아니다. 산업의 경계가 다시 그어지고, 수출의 개념이 다시 정의되는 과정이다.
물론 들뜰 일만은 아니다. 방산은 민감한 산업이다. 인수와 합병은 공정경쟁과 독과점, 가격과 공급 안정성 문제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 해외 협력도 협력인 동시에 경쟁이다. 프랑스는 우방이지만 동시에 세계 방산시장에서 강력한 경쟁 상대이기도 하다. 더구나 풍산 관련 사안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기대감만 부풀리는 장밋빛 전망이 아니라, 산업 재편이 가져올 실질적 효과와 부작용을 함께 따져보는 일이다. 수직 계열화가 효율을 높일 수는 있어도, 특정 기업으로 역량이 과도하게 집중될 경우 시장의 역동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점도 냉정히 봐야 한다.
그럼에도 흐름 자체는 분명하다. 세계 안보 환경이 흔들릴수록 각국은 믿을 수 있는 공급망과 신속한 생산 능력을 가진 파트너를 찾게 된다. 그동안 한국은 빠른 생산, 높은 품질, 비교적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존재감을 키워왔다. 이제 한 단계 더 나아가려면 플랫폼만이 아니라 탄약과 정비, 훈련과 우주 협력까지 포괄하는 종합 역량을 보여줘야 한다. 한화의 움직임과 한·프랑스 국방 협력은 바로 그 방향을 가리킨다.
결국 K-방산의 다음 경쟁력은 ‘잘 만드는 능력’만이 아니다. 끊기지 않게 공급하는 능력, 동맹과 함께 확장하는 능력, 전통적 무기에서 미래 안보영역까지 연결하는 능력이다. 총알에서 시작된 산업의 논리가 우주까지 이어지는 시대다. 한국 방산은 지금 새로운 문턱 앞에 서 있다. 그 문턱을 넘는 순간, K-방산은 더 이상 빠른 추격자가 아니라 세계 방산 지형을 다시 그리는 주체로 올라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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