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향해 "세계에 평화와 번영을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은 '도널드'뿐"이라며 친근하게 말을 건네자, 굳어있던 트럼프 대통령의 표정이 이내 누그러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카이치 총리는 존경받을 만한 훌륭한 리더"라고 화답하며 자민당의 중의원 선거 압승에 축하의 뜻을 전했다.
회담 전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 석상에서 무슨 돌발 발언을 할지 모른다"며 극도로 긴장했던 일본 정부의 우려가 안도감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이면에는 호르무즈 해협 함정 파견이라는 '무거운 숙제'와 이를 피하기 위한 일본의 치밀한 경제적·외교적 계산이 깔려 있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이번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 석상에서 돌발 요구를 할 가능성에 대비해 철저한 '선제 공격' 전략을 취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회담 서두에 트럼프 대통령을 극찬하는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이 꺼내기도 전에 먼저 이란의 핵 개발과 해협 봉쇄 시도를 비난하며 "에너지 시장 안정을 위한 제안을 가져왔다"고 선수를 쳤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무슨 말을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일본의 입장을 명확히 해 회담 주도권을 잡으려 한 것"이라고 의미를 전했다.
이러한 흐름을 바꾼 결정적 한 수는 회담 약 2시간 전에 발표된 일본과 영국, 프랑스 등 6개국 공동성명이었다. 일본이 주도한 이 성명에는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대한 강력한 비난과 항행 안전을 위한 '적절한 조치'에 공헌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에 대해 총리 방미에 동행한 정부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더 이상 고립되지 않도록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체적인 장비 파견을 확약하지 않으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체면을 세워주며 압박의 수위를 낮추려는 외교적 노력이었던 셈이다.
닛케이신문은 안보 분야의 '숙제'가 경제 분야로 전이되는 과정에 주목했다. 보도에 따르면, 다카이치 총리가 자위대 파견 등 민감한 안보 현안에 대해 즉답을 피하며 '모호한 답변'을 내놓은 것은 "지금 당장 자위대 함정을 파견할 수 없다"고 발언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미국과의 동맹 균열과 이로 인한 대중 억지력 약화를 막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이어 일본은 이러한 안보상의 압박을 상쇄하기 위해 미국 내 소형모듈원자로(SMR) 및 천연가스 발전 시설 건설 등 약 11조 엔(100조 원) 규모의 파격적인 대미 투자 카드를 꺼내 들었다. 닛케이는 이처럼 안보 분야에서 짊어진 숙제가 대규모 경제 협력이라는 카드로 이어졌다고 분석하며, 결과적으로 일본 정부 내부에서는 "위기를 잘 극복했다"는 안도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비공개로 전환된 후, 회담장 내부의 공기는 훨씬 무거웠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회담에 배석했던 오자키 마사나오 관방부장관은 비공개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호르무즈 해협의 항행 안전과 관련해 일본 등 각국에 '공헌'을 직접적으로 요청했다고 전했다. 이에 다카이치 총리는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 확보가 에너지의 안정적인 공급이라는 관점에서도 중요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법률의 범위 내에서 "앞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을 확실히 해 나가겠다"는 신중한 입장을 유지했다.
아사히는 이 '공헌'의 실체가 사실상 자위대 파견을 의미하며, 이는 다카이치 정권에 치명적인 법적 난제를 남겼다고 분석했다. 현재 전투 중인 지역에 자위대를 보내는 것은 법적으로 곤란할 뿐만 아니라, 만약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는 '존립위기사태'나 '중요영향사태'를 선포하려 해도 큰 걸림돌이 있다. 국제법 위반 소지가 있는 미국의 이란 선제공격을 일본 정부가 어떻게 정당화하고 법적으로 평가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여기에 자위대의 안전 확보 문제와 미국의 군사 행동에 비판적인 국내 여론까지 겹쳐 있어, 다카이치 총리는 향후 극도로 어려운 판단을 강요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 내부적으로는 일단 "성공적으로 정상회담을 넘겼다"는 안도의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요미우리에 따르면 다카이치 총리는 차세대 미사일 방위 구상인 '골든 돔' 협력 의사까지 전달하며 미일 동맹의 결속을 과시하는 데 주력했다. 그러나 중동 정세가 악화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가 한층 거세질 수 있다는 불안감도 상존한다. 아사히가 인용한 정부 관계자는 "당장은 구체적인 수치나 확답을 피하며 고비를 넘겼지만, 중동 상황에 따라 언제든 불만이 다시 터져 나올 수 있다"며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결국 이번 회담은 일본의 파격적인 경제 투자와 정교한 외교적 수사로 당장의 위기는 넘겼으나, 미국의 선제공격과 국제법적 정당성 사이의 딜레마라는 무거운 청구서를 미래로 유예한 것에 불과할 수 있다는 것이 일본 언론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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