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JP 데스크 칼럼] 호르무즈 전쟁이 쏘아 올린 금융시장 '융단폭격'

  • 군사전이 아닌 경제전으로 번지는 전쟁

전쟁이 셋째 주로 접어들면서 전 세계 안보와 에너지, 금융시장을 동시에 뒤흔들고 있다. 전통적인 동맹 질서와 국제 규범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에너지 위기에 대응해 미국은 러시아 원유 제재 완화를 발표하고,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중동 에너지에 의존하는 국가들에 군함 파견까지 요구하고 있다.

전쟁의 명분과 원칙이 흔들리는 사이 중동의 전장이 아닌 또 다른 곳, 바로 신흥국 금융시장에서는 사실상 ‘융단폭격’에 가까운 충격이 이어지고 있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사실상 인질로 삼아 원유 수송을 차단하자 금융시장으로 불길이 옮았다. 환율과 채권금리, CDS 프리미엄이 동시에 상승하며 글로벌 금융시장의 위험 프리미엄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개방형 소규모 경제인 한국이 대표적이다. 3월 들어 원화 가치는 달러 대비 3.84% 하락하며 주요 통화 가운데 가장 큰 낙폭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달러 인덱스 상승폭이 2.92%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단순한 달러 강세라기보다 원화 자체의 취약성이 동시에 반영된 결과다. 원·달러 환율은 이달 평균 1,476.9원을 기록하며 월평균 기준으로 1998년 외환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에 올라섰고, 지난주 평균 환율은 1,480.7원까지 치솟았다. 야간 거래에서는 장중 한때 1,500원을 터치하기도 했다. 

환율 변동성 역시 급격히 확대됐다. 하루 평균 변동폭은 14.24원으로 2010년 유럽 재정위기 이후 최대 수준이며 장중 변동폭은 24.82원으로 야간거래 도입 이후 가장 큰 폭이다. 외환시장이 단순한 환율 상승 국면을 넘어 불안정한 변동성 장세로 진입하고 있다는 신호다. 

환율 충격의 근원에는 에너지 구조가 있다. 한국은 원유 수입의 약 80%를 중동에 의존한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해상 원유 물동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전략적 요충지다. 이란이 드론과 기뢰, 소형 공격정을 동원해 상선을 공격하면서 해협 통행이 사실상 제한되자 국제 유가는 단숨에 배럴당 100달러 선을 넘어섰다. 브렌트유는 100달러를 돌파하며 거의 4년 만의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전쟁 이후 국제 유가는 이미 70% 이상 상승했다. 이란의 해협 봉쇄로 원유 공급에 대한 불안이 급격히 확대됐기 때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평소 하루 약 2천만 배럴의 원유가 이 해협을 통과한다. 세계 해상 원유 교역량의 약 5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다.  현재 약 1억2천500만 배럴의 원유가 탱커에 실린 채 바다 위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에너지 가격 충격은 곧바로 금융시장 리스크 프리미엄으로 전이된다. 이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지표가 국가 CDS 프리미엄이다. 한국의 5년물 CDS는 2월 말 24.6bp에서 3월 13일 28.0bp로 올라 불과 2주 만에 3.44bp 상승했다. 일본이 같은 기간 1.47bp 상승하는 데 그친 것과 비교하면 상승 속도가 더 가파르다. CDS 프리미엄 상승은 투자자들이 한국 경제에 대해 더 높은 위험 보험료를 요구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한국 국채 금리는 연초 이후 가파르게 상승했다. 3년물 국채 금리는 1월 초 2.935%에서 3월 초 3.420%까지 올라 약 48.5bp 상승했고 10년물 금리는 3.386%에서 3.739%로 35.3bp 상승했다. 두 달 남짓한 기간에 30~50bp 상승은 상당히 빠른 속도다. 특히 3월 9일 하루 상승폭은 3년물 19.3bp, 10년물 12.3bp로 2022년 영국 ‘미니예산 사태’ 이후 가장 컸다. 

외국인 자금 흐름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3월 들어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13조원 이상을 순매도하며 환율 상승 압력을 키웠다. 글로벌 증시 역시 동반 흔들리고 있다. 코스피는 5,583포인트에서 5,487포인트로 하락했고 MSCI 신흥국 지수 역시 하락세를 보이며 위험자산 회피 흐름이 확산되고 있다. 

이번 전쟁은 국제 에너지 질서까지 뒤흔들고 있다. 미국은 러시아 원유 제재를 한시적으로 완화하며 해상에 실린 원유 거래를 허용했고 인도의 러시아 원유 구매도 일시적으로 허용했다. 호르무즈 봉쇄로 인한 공급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였지만 유럽의 강한 반발을 불러왔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지돼 온 대러 제재 체제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에너지 안보와 지정학적 원칙 사이에서 국제 질서가 균열을 보이고 있다.

이란 역시 해협 봉쇄를 전략적 지렛대로 활용하며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최고지도자 모즈타바 하메네이는 “미국과 동맹국에는 단 한 리터의 원유도 보내지 않을 것”이라며 봉쇄 지속을 선언했다. 이란 해군은 이미 해협을 사실상 통제하며 상선 공격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은 해군 호위 작전을 통해 해협을 다시 열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미 에너지부 장관조차 미군이 즉각적인 호위 작전에 나설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인정했다. 전문가들 역시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대규모 해군 호위 작전은 매우 복잡하고 위험한 군사 작전이 될 것이라고 평가한다. 그럼에도 미국은 이 해협에 에너지를 의존하는 한국 등 주요 수입국들에 군함 파견을 요구하고 나섰다. 전쟁의 책임과 부담을 동맹과 파트너들에게 분산시키는 모습이다. 전쟁의 원칙이 또 한 번 흔들리는 대목이다.

각국은 사실상 독자 생존에 나섰다. 한국은 30년 만에 유류 가격 상한제를 재도입했고, 태국은 공무원 재택근무와 에너지 절약 조치를 시행했다. 파키스탄은 주 4일 근무제를 도입했고, 방글라데시는 대학을 폐쇄하며 전력 사용을 줄이고 있다. 베트남 역시 전국적으로 연료 절약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에너지 가격 급등이 더 이상 단순한 시장 변수에 머물지 않고 국가 경제 운영 방식 자체를 바꾸는 수준의 충격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신흥국들이 감당해야 할 충격은 클 수밖에 없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고 금융시장이 외국 자본에 크게 의존하는 경제 구조 때문이다. 한국 금융시장에 나타난 움직임 역시 이런 구조적 취약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 외국인 자본 의존 금융시장, 그리고 원자재를 수입해 가공해 수출하는 산업 구조가 동시에 작동하면서 충격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수준에서 장기화될 경우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에 고착되고 물가 상승과 금리 인상 압력이 동시에 커질 가능성이 높다. 물론 현재 상황을 1997년 외환위기와 같은 수준의 금융 위기로 보는 것은 과장이다. 당시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200억 달러 수준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4,000억 달러를 넘는다. 금융 시스템의 기초 체력은 과거보다 훨씬 강해졌다. 

그러나 이번 전쟁의 본질은 분명하다. 이는 단순한 군사 충돌이 아니라 에너지 공급망을 겨냥한 경제전이다. 이란은 재래식 군사력에서는 미국과 상대가 되지 않지만 세계 경제의 핵심 동맥인 에너지 공급망을 정확히 겨냥하고 있다. 

걸프전은 아직 군사적으로는 초기 단계지만 금융시장에서는 이미 전면전이 시작됐다. 미사일은 중동에서 날아가고 있지만 그 충격파는 이미 서울 금융시장에 도달하고 있다. 

더 이상 가만히 손 놓고 남의 나라 일처럼 바라볼 수만은 없다. 에너지 안보와 해상 교통로의 안전은 특정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 경제 질서 전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세계 경제의 동맥인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된 상황에서 국제 사회의 공동 대응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고 있다. 전쟁의 최전선은 더 이상 전장이 아니라 금융시장과 에너지 공급망으로 옮겨가고 있다.

태국 해군이 2026년 3월 11일 공개한 사진으로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서 공격을 받은 태국 벌크선 ‘마유리 나리Mayuree Naree’에서 연기가 치솟고 있다 태국 해군에 따르면 이 선박은 3월 11일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던 중 공격을 받았으며 승무원 20명이 구조됐다 사진Royal Thai NavyAFP 연합
태국 해군이 2026년 3월 11일 공개한 사진으로,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서 공격을 받은 태국 벌크선 ‘마유리 나리(Mayuree Naree)’에서 연기가 치솟고 있다. 태국 해군에 따르면 이 선박은 3월 11일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던 중 공격을 받았으며 승무원 20명이 구조됐다. (사진=Royal Thai Navy/AFP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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