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사설 | 기본 원칙 상식]보유세 개편, 공론화와 원칙 위에서 추진해야 한다

최근 시장에서는 이른바 ‘보유세 개편안’이라는 형태의 여러 시나리오가 거론되고 있다. 고가 주택에 대한 세율을 높이고 과세표준을 현실화하며, 1주택 비거주자에 대한 혜택을 축소하는 방안 등이 그 골자다. 아직 정부의 공식 정책으로 발표된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논의가 확산되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가 직면한 부동산 구조 문제를 보여주는 징표라 할 수 있다.

 

수도권 과밀과 주택 가격 불안, 그리고 지방의 공동화 현상이 동시에 심화되는 상황에서 보유세 제도의 방향을 다시 점검하는 일은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됐다. 다만 조세는 국가가 사용하는 가장 강력한 정책 수단 가운데 하나인 만큼, 제도 변화는 충분한 공론과 원칙 위에서 추진되어야 한다.

서울 한강변 아파트 모습 사진연합뉴스
서울 한강변 아파트 모습 [사진=연합뉴스]



우리 사회가 직면한 근본 문제는 분명하다. 수도권에는 인구와 자본, 교육과 산업이 집중돼 있고 그 중심에는 주택 시장이 있다. 서울 강남권을 비롯한 핵심 지역의 부동산 가격은 장기간 상승하며 자산 격차를 확대해 왔다. 그 결과 청년층과 무주택자가 체감하는 주거 사다리는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반면 지방은 인구 감소와 대학 위기, 산업 기반 약화라는 삼중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보유세 논의가 등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부동산 보유에 대한 합리적 과세를 통해 자산 불균형을 완화하고 주택 시장의 과열을 억제하려는 정책적 고민이 반영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세 정책은 단순한 처방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특히 보유세는 국민의 생활과 자산 구조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세금이기 때문에 더욱 신중해야 한다. 현재 시장에서 거론되는 안을 보면 일정 금액 이하 구간은 기존 세율을 유지하되 고가 주택 구간의 세율을 높이고, 공정시장가액비율을 단계적으로 상향하며, 비거주 1주택자에 대한 공제를 축소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요약하면 과세 기준을 현실화하고 고가 자산 보유에 더 큰 부담을 지우겠다는 방향이다.



이러한 접근에는 일정한 경제학적 근거가 있다. 부동산은 이동이 어려운 자산이기 때문에 노동이나 기업 활동에 대한 세금보다 경제 왜곡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이 많은 경제학자들의 공통된 판단이다. 미국과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도 재산세나 부동산 보유세는 지방 재정의 핵심 세원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일본 역시 고정자산세 중심의 보유 과세 체계를 오랫동안 유지해 왔다. 다시 말해 보유세 자체는 국제적
으로 낯선 제도가 아니다.



문제는 방식이다. 세율을 급격히 높이거나 과세 기준을 단기간에 크게 조정하면 시장 충격이 커질 수 있다. 조세 정책에서 예측 가능성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민이 장기적인 자산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안정적인 틀을 유지하는 것이 정책의 기본이다. 만약 세제가 정권이나 경기 상황에 따라 반복적으로 흔들린다면 정책 신뢰는 무너지고 시장의 불안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형평성 문제도 함께 살펴야 한다. 고가 자산 보유자에게 더 많은 세 부담을 요구하는 것은 조세 정의의 측면에서 일정한 설득력을 갖는다. 그러나 실거주 장기 보유자, 특히 고령층까지 동일한 방식으로 부담을 지우는 것은 또 다른 문제를 낳을 수 있다. 집값이 상승했다고 해서 현금 소득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 부담이 급격히 늘어나는 경우 납부 유예나 분할 납부와 같은 완충 장치가 필요하다.



보유세 정책을 논할 때 또 하나 놓쳐서는 안 될 것이 있다. 바로 세수의 사용 방향이다. 단순히 세금을 더 걷는 것만으로는 정책의 정당성이 확보되기 어렵다. 그 재원이 어디에 쓰이는지, 어떤 공공 목적을 위해 활용되는지가 분명해야 한다. 예컨대 수도권 고가 주택에서 거둔 세금이 지방 교육과 의료, 교통 인프라 등 균형발전 정책에 사용된다면 국민적 공감대는 훨씬 커질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를 걷느냐’보다 ‘어떤 원칙으로 걷느냐’이다.
첫째, 조세 정책은 충분한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국민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전문가와 사회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둘째, 제도는 장기적이고 예측 가능해야 한다. 단기간의 시장 상황에 따라 급격히 바뀌는 세제는 신뢰를 잃는다.
셋째, 조세 형평성과 사회적 수용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고가 자산 보유에 대한 부담은 강화하되 실거주 장기 보유자에 대한 보호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부동산 문제는 단순히 세금 하나로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수도권 집중 구조, 교육과 일자리의 편중, 주택 공급과 금융 정책 등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보유세는 그중 하나의 정책 수단일 뿐이다. 그러나 제대로 설계된다면 시장 안정과 자산 불균형 완화에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조세는 국가와 국민 사이의 가장 기본적인 사회 계약이다. 따라서 보유세 개편 논의 역시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원칙과 상식 위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충분한 공론화와 사회적 합의를 통해 예측 가능하고 공정한 제도를 마련하는 것, 그것이 부동산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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