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상 컬럼 ] BTS와 광화문 한글 현판

21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릴 BTS의 컴백 공연을 앞두고 뜻밖의 논쟁이 다시 불붙었다. 한글 시민단체들이 “공연 하루만이라도 광화문에 훈민정음체 한글 현판을 걸어 달라”고 정부에 요청하면서다. 그들의 주장은 단순하다. 전 세계 수억 명이 지켜볼 공연이 열리는 장소가 대한민국의 상징 공간인 광화문이라면, 그 문 위에 걸린 글자 역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1일 광화문 앞에서 광화문 훈민정음체 한글현판 국민모임이 예시현판 모형을 공개했다 사진연합뉴스
1일 광화문 앞에서 광화문 훈민정음체 한글현판 국민모임이 예시현판 모형을 공개했다. [사진=연합뉴스]


 

이 요구는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광화문 현판을 둘러싼 논쟁은 이미 오래된 문제다. 지금의 광화문 현판은 한자로 쓰인 ‘光化門’이다. 조선 왕조 궁궐의 정문 이름이 원래 한자로 기록되어 있었던 만큼 이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한글을 창제한 나라의 상징 공간에 한글 현판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 논쟁에는 역사적 배경도 있다. 일제강점기 훼손된 광화문은 1968년 콘크리트 구조로 복원되면서 한글 현판이 달린 적이 있었다. 그러나 2010년 경복궁 복원 사업 과정에서 문화재 당국은 역사적 원형 복원 원칙에 따라 한자 현판을 다시 설치했다. 그 이후로도 한글 현판을 병행해야 한다는 논의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번 논쟁이 다시 커진 이유는 무대가 특별하기 때문이다. BTS 공연은 단순한 대중음악 이벤트가 아니다. 전 세계 수많은 팬들이 동시에 지켜보는 문화적 장면이다. 공연 장소 역시 단순한 광장이 아니라 광화문과 경복궁 앞이다. 한국의 역사와 현대 문화가 만나는 상징적 공간이다.



그 장면을 떠올려 보자. 세계 각국의 팬들이 화면을 통해 광화문을 바라보고 있다. 그들이 보는 것은 단지 공연 무대가 아니라 한국이라는 나라의 얼굴이다. 그 순간 광화문 현판에 어떤 글자가 걸려 있는지는 단순한 디자인 문제가 아니라 문화적 메시지가 된다.



한글 시민단체들이 강조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그들은 “세계인이 지켜볼 광화문에 한자 현판만 걸려 있다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한글은 단순한 문자 체계를 넘어 한국 문화의 핵심 상징이라는 주장이다.



이 주장에는 분명 설득력이 있다. 한글은 세계적으로도 독특한 문자다. 창제 원리와 철학이 기록으로 남아 있는 문자이며, 그 과학성과 체계성 때문에 세계 언어학계에서도 높이 평가된다. 특히 훈민정음 해례본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그러나 이 문제를 단순히 ‘한글 대 한자’의 대립으로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광화문은 조선 왕조 궁궐의 정문이며 역사적으로 그 이름은 한자로 기록됐다. 문화재 복원에서 역사적 원형을 존중해야 한다는 원칙 역시 가볍게 무시할 수 없는 가치다.



결국 이 논쟁의 본질은 문자 자체가 아니라 문화의 표현 방식이다. 우리는 전통을 보존하면서도 동시에 오늘의 문화적 메시지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 서 있다.



주목할 점은 이 논쟁이 한국 문화의 위상을 보여주는 장면이라는 사실이다. 과거 같으면 광화문 현판 문제는 국내 역사 논쟁에 머물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BTS 공연 하나만으로도 세계의 시선이 서울 광화문으로 모인다.

그래픽노트북LM
[그래픽=노트북LM]



BTS는 이미 한국 문화의 상징적 존재가 됐다. 음악을 넘어 패션과 언어, 문화까지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실제로 세계 각국에서 한국어 가사를 따라 부르고 한글을 배우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시민단체들이 제안한 방식도 주목할 만하다. 기존 현판을 바꾸자는 것이 아니라 하루 동안 임시로 훈민정음체 한글 현판을 설치하거나 영상으로라도 시연하자는 것이다. 문화재 원형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한글의 상징성을 보여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 제안이 실제로 실행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제안이 던지는 질문이다. 우리는 지금 어떤 방식으로 우리의 문화를 보여주고 있는가.



문화는 박물관 속 유물이 아니다.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지점에서 살아 움직인다. 광화문이라는 전통의 상징과 BTS라는 현대 문화가 만나는 순간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상징적인 장면이 될 수 있다.



광화문 현판 논쟁은 결국 한글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의 문제다. 그리고 문화는 언제나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지키려는 것은 단순한 글자가 아니라 그 글자가 담고 있는 역사와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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