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상 컬럼- 병력에서 두뇌로] 1회 태릉을 군과학 산학협력 기지로 키워야 하는 이유

  • ― 군 과학화는 '공간의 선택'에서 시작된다

군 과학화는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인구절벽과 기술 패권 경쟁이 동시에 진행되는 시대에, 국방의 경쟁력은 병력의 규모가 아니라 시스템과 인재에서 갈린다. 이 전환은 선언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군 과학화는 언제나 어디에서 구현하느냐, 즉 공간의 선택에서 성패가 갈린다.


이재명 대통령이 “군대 자체를 대대적으로 바꿔볼 생각”이라고 밝힌 발언은 병역 제도 개선을 넘어선다. 병력과 숫자 중심의 군에서 장비·무기·기술 중심의 군으로 전환하겠다는 인식, 군 복무를 청춘의 공백이 아니라 첨단 기술을 익히는 기회로 만들겠다는 구상은 인구구조와 기술 환경의 변화를 정확히 짚는다. 드론 전문 부대와 연구 부대 구상 역시 군을 소모 조직이 아닌 지식·기술 조직으로 재정의하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사진연합뉴스
[태릉CC전경  사진=연합뉴스]


문제는 방향이 아니라 구현의 조건이다. 군 과학화는 법 몇 조를 고치거나 조직도를 손보는 것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과학은 인재가 모이고, 실패가 허용되며, 연구–실증–조달–산업화가 끊김 없이 이어지는 물리적 환경을 필요로 한다. 세계의 군사 강국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군 과학화는 언제나 공간과 구조의 문제다.


미국의 사례는 이 점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준다. 미 국방부 산하 고등연구계획국인 DARPA는 단순한 연구기관이 아니다. DARPA의 힘은 연구비 규모보다, 군이 필요한 기술 문제를 직접 정의하고 민간과 학계가 공동으로 개발하며, 군이 초기 수요자가 되어 실증까지 책임지는 구조에 있다. GPS, 인터넷, 스텔스 기술은 모두 이 구조에서 태어났다. 중요한 것은 이 시스템이 군–연구–산업이 물리적으로 밀착된 환경에서 작동해 왔다는 사실이다. 군 과학은 외곽으로 밀려난 적이 없다. 오히려 국가 의사결정과 가장 가까운 곳에 배치됐다.
 

이 교훈은 특정 국가의 성공담이 아니라, 군사과학이 작동하는 보편적 원리다. 기술은 책상 위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실제 작전 환경과 가까운 공간에서 반복적으로 시험될 때 진화한다. 교육, 연구, 실증, 산업화가 분리될수록 혁신의 속도는 느려진다.


이 관점에서 보면, 태릉CC를 둘러싼 논쟁은 단순한 개발 문제가 아니다. 태릉CC는 육군사관학교와 맞닿아 있고, 수도권 핵심부에 위치하며, 대규모 집적 개발이 가능한 드문 부지다. 교육(육사), 연구, 실증, 산학협력을 하나의 동선으로 묶을 수 있는 조건을 갖춘 공간이다. 이는 “유일한 선택지”라기보다, 지금의 정치·행정·시간 비용을 모두 고려할 때 현실적으로 가장 구현 가능성이 높은 최적 카드에 가깝다.


물론 질문은 제기될 수 있다. “왜 꼭 태릉이어야 하는가.” 다른 군 부지나 지방 거점은 불가능한가. 이 질문은 정당하다. 다만 군 과학화는 입지의 물리적 적합성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인재 접근성, 기존 교육기관과의 연계, 상징성,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당장 실행할 수 있는가라는 시간의 문제가 함께 고려돼야 한다. 태릉CC의 의미는 이 모든 조건이 동시에 충족되는 드문 사례라는 데 있다.

그래픽노트북LM
[그래픽=노트북LM]


그럼에도 현재 논의는 여전히 주택 공급과 지역 민원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있다. 갈매동에서는 집값과 생활 인프라를 기대하고, 공릉동에서는 교통난과 환경 훼손을 우려한다. 이 목소리들은 현실적이다. 그러나 이 논쟁이 ‘아파트냐 아니냐’의 제로섬으로 고정되는 순간, 태릉CC는 또 하나의 부동산 갈등 사례로 소진된다. 핵심은 주택의 필요성 여부가 아니라, 이 공간의 주도 논리가 무엇이어야 하는가다.


군과학 산학협력 기지는 주거 기능을 전면 배제해야만 가능한 개념은 아니다. 일부 주거·공공 인프라와의 혼합 설계도 논의할 수 있다. 다만 분명한 원칙은 있다. 이 부지의 중심 기능은 주거가 아니라, 군이 필요로 하는 기술을 정의하고 실증하는 국가 전략 플랫폼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주거 논리가 주도하는 순간, 군 과학화는 부차적 기능으로 밀려난다.


이 선택은 국방의 성격을 바꾼다. 지금까지 한국 군은 민간 기술을 뒤쫓아 구매하는 소비자에 가까웠다. 태릉CC가 군과학 산학협력 기지로 설계된다면, 군은 기술을 기획하고 검증하며 함께 개발하는 공동 생산자로 전환된다. 국방비는 소모 비용이 아니라, 국가 기술 경쟁력을 축적하는 투자로 재해석된다.


상징의 문제도 가볍지 않다. 육사 인접 부지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는 장면은, 육사를 국가 전략 기관이 아니라 개발지 인근 시설로 인식하게 만든다. 반대로 태릉CC가 군과학 산학협력 기지로 조성된다면, 육사는 장교 양성기관을 넘어 국가 안보와 기술 경쟁을 설계하는 두뇌 기관으로 재정의된다. 공간의 용도는 국가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가장 분명하게 드러낸다.


주택은 필요하다. 그러나 집은 다른 곳에도 지을 수 있다. 군 과학화를 실질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공간은 아무 데서나 만들 수 없다. 태릉CC를 둘러싼 선택은 개발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이 어떤 방식으로 안보와 기술 경쟁을 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군 과학화는 말로 완성되지 않는다.
공간이 선택될 때, 비로소 현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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