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A BIZ] "잘 나갈 때 바꿔야 산다" 토요타의 역설… 왜 후지산 기슭에 도시를 짓나?

  • 역대급 실적 뒤에 숨겨진 '생존 공포'

  • 자동차 제조사에서 '삶의 플랫폼'으로의 대전환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일본 토요타자동차가 지난달 29일 발표한 성적표는 화려했다. 지난해 세계 시장에서 전년 대비 4% 증가한 총 1053만 6807대의 차량을 판매하며 역대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6년 연속 글로벌 판매 1위 수성이다. 실적 또한 탄탄하다. 지난 2023회계연도(2023년 4월~2024년 3월)에 일본 기업 역사상 처음으로 영업이익 5조 엔(약 46조7500억원) 시대를 열었던 토요타는 이후 글로벌 경기 둔화 속에서도 이익 규모를 방어하며 흔들림 없는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는 평가다.

그런 토요타가 지금 그룹의 명운을 걸고 시즈오카현 스소노시에 스마트 시티 '우븐 시티(Woven City)'를 건설 중이다. 토요타 아키오 회장의 장남이 현지에 상주하며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할 정도로 그룹 차원의 집념이 서려 있다. 세계에서 차를 가장 많이 파는 기업이 본업과는 거리가 먼 '도시 조성'에 사활을 거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2018년, 토요타 아키오 당시 사장은 세계를 향해 의미심장한 선언을 던졌다. "토요타를 자동차 회사에서 모빌리티 컴퍼니로 바꾸겠다"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2년 뒤 아키오 사장은 우븐 시티 프로젝트를 공식화하며 도시 전체를 거대한 실험실로 삼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이 같은 파격 행보에는 'CASE'(커넥티드·자율주행·공유·전동화)로 요약되는 자동차 산업 패러다임 변화에 대한 토요타의 위기감이 배경으로 작용했다. 일본 유력 경제일간지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은 자동차 경쟁의 축이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와 데이터로 이동하면서, 전통 완성차 업체가 자칫 빅테크 기업의 '하드웨어 하청업체'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토요타가 실적 호조에도 불구하고 도시 설계와 운영에 직접 뛰어든 배경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약 70만㎡ 규모로 조성되는 우븐 시티는 보행자, 개인용 모빌리티, 자율주행 차량용 도로가 지상과 지하에 그물망처럼 엮인 구조다. 자동방직기 회사로 출발해 글로벌 완성차 강자로 올라선 토요타 그룹의 정체성, 즉 '엮임(Woven)'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닛케이는 우븐 시티를 단순한 스마트 시티가 아닌 '도시형 리빙 랩(Living Lab)'으로 정의한다. 이곳은 정체된 완성형 도시가 아니다. 주민들이 직접 거주하며 맞닥뜨리는 일상의 불편을 기술로 해결하는 '카이젠(개선)'의 과정을 무한 반복하는 공간이다. 개별 기술의 성능 테스트를 넘어, 기술들이 결합된 '사회 시스템' 그 자체를 검증하는 것이 목적이다. 자동차 한 대의 주행 성능을 시험하던 과거의 문법과는 차원이 다른 시도다.

이곳의 큰 특징 중 하나는 NTT(통신), 에네오스(수소), 파나소닉(가전), 닛신식품(물류) 등 업종을 망라한 파트너사들이 '인벤터(창조 기업)'로 참여해 머리를 맞대고 있다. 아키오 회장은 이를 "특정 기업의 이익을 위한 폐쇄적 공간이 아닌, 인류의 공통 과제를 해결하는 열린 플랫폼"이라고 강조한다.

토요타는 우븐 시티의 지향점으로 '사람 중심'을 꼽는다. 토요타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우븐 시티 프로젝트의 본질은 단순한 데이터 수집이나 수익 창출이 아니다. '모두를 위한 이동의 자유'를 통해 '타인의 행복을 위해 행동하는 행복'을 실현하는 데 있다.

기존 스마트 시티들이 기술적 효율성에 매몰됐다면, 우븐 시티는 인공지능(AI)과 로보틱스가 인간의 삶을 어떻게 더 따뜻하게 보듬을 수 있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자동차 제조사라는 좁은 틀을 깨고 인류의 삶 전반을 지원하는 '플랫폼 기업'으로 체질을 바꾸겠다는 선언이다.

아키오 회장은 우븐 시티를 "영원히 완성되지 않을 도시"라고 불렀다. 이는 멈추는 순간 도태된다는 생존 본능의 역설적 표현이 아닐까?

경쟁사인 테슬라와 현대차가 옵티머스와 아틀라스를 내세워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에 주력하고 있는 사이, 후지산 기슭에서 벌어지는 토요타의 실험을 두고 일각에선 '한가한 시도'라는 냉소도 나온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토요타가 물리적 상품인 자동차를 넘어, '이동'과 '삶'이 결합된 새로운 사회적 가치를 설계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가장 높은 곳에 있을 때 스스로를 부정하며 미래를 다시 쓰는 토요타의 실험은 이제 막 막을 올렸다. 이 스마트 시티가 이른바 '수익 구간'에 진입하기까지는 갈 길이 먼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진화의 끝에서 어떤 괴물 같은 성과가 튀어나올지는 아무도 단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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