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붉은 공급망'에 묶인 애플, 세계 질서의 향방을 묻다

  • 중국 현지 생산 활동 집중한 애플

  • 기술이전에 화웨이 등 경쟁사 성장

  • 실패한 서방의 '시장 개방 낙관론'

  • 경제성장으로 中지도부 권력 강화

  • 관세전쟁 영향 공급망 변수 많아




애플 인 차이나
애플 인 차이나=패트릭 맥기 지음, 이준걸 옮김, 인플루엔셜.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1984년 5월 중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해 “우리가 목격한 몇 가지 변화가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자유시장 정신의 첫 주입은 이미 중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며 "이것이 중국의 행복 증진에 기여하고, 더 정의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길을 열었다고 믿는다”고 내다봤다. 당시 미국은 자유무역이 중국을 바꿀 것으로 기대했다. 시장 개방이란 씨앗이 자연스레 민주주의의 꽃을 피울 것으로 낙관했다. 
 
그로부터 40여 년이 흐른 현재, 책 <애플 인 차이나>는 서방의 낙관론이 틀렸다고 짚는다. 공급망 전문가들은 "그 누구도 중국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고 입을 모은다. 중국의 경제성장이 민주화는커녕 오히려 중국 지도부의 권력을 공고히 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평가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공급망 전문가는 이렇게 말한다. “그(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가 상대해야 할 대상이 누구였는지 몰랐던 겁니다. 아무도 몰랐어요.”(558쪽)


저자는 애플이 중국에 구축한 ‘붉은 공급망’ 형성 과정을 따라가며 자유무역이 중국의 민주화가 아닌 애플의 ‘중국화(Chinafication)’로 이어졌다고 꼬집는다. 애플이 효율성을 좇다가 중국이란 단 하나의 나라에만 생산 활동을 집중하는 초보적인 실수를 저질렀고, 이는 애플이 중국에 묶여 옴짝달싹 못하는 족쇄가 됐다고 분석한다. 

다만 책을 읽다 보면 애플이 붉은 공급망을 택한 이유는 일견 타당하다. 애플이 추구하는 제약 없는 디자인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값싼 임금 아래 노동자 수천만 명이 일일이 손으로 부품을 조립하는 중국만큼 이상적인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나라에서는 12주 걸릴 일을 25일 만에 끝내는 '차이나 스피드'를 비롯해 저임금, 중국 당국의 환율 통제, 느슨한 노동법,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그리고 급여를 모두 쏟아부어서라도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사려는 거대한 소비 시장까지 애플에 중국은 한입 베어 물지 않을 수 없는 새빨간 사과였다.  

그러나 책은 애플이 결정적으로 두 가지를 간과했다고 지적한다. 하나는 애플이 엔지니어, 디자이너 등을 중국 내 수백 개 공장으로 파견하면서 주요 제조기술이 애플의 핵심 협력업체로 이전됐고, 결과적으로 샤오미, 화웨이 등 중국 스마트폰 회사를 키우는 결과를 낳았다. 애플이 훈련한 중국 노동자만 최소 300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며, 애플의 제조기술을 습득한 인재들은 중국 스마트폰 회사들로 떼지어 이직했다. 저자는 “아이폰이 노키아를 무너뜨린 것이 아니라 아이폰을 모방한 중국 업체들이 노키아를 무너뜨렸다"고 지적한다. 

애플이 예상하지 못한 또 다른 변수는 시진핑 주석의 등장이다. 느슨한 리더십을 추구했던 후진타오, 원자바오와 달리 시 주석의 강력한 리더십 아래에서 중국은 발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2013년 3월 시 주석 취임 바로 다음 날부터 중국 관영 언론들은 애플을 연일 때리며 중국 소비자들의 반미정서를 자극해 애플 불매운동을 촉발했다. 이를 기점으로 애플과 중국의 힘의 관계는 반전된다. 이후 중국 정부는 아이폰용 앱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사용자 데이터의 중국 내 보관을 강제하는 등 애플을 길들이기 시작한다.  

이 책의 한계는 붉은 공급망의 형성 과정을 장황하게 써내려가면서도 애플이 앞으로 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는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기업의 이익과 국가의 이익을 거론하며 지적학적 긴장이 비켜간 지역에 공급망을 분산하라는 뉘앙스다. 하지만 책이 차선책으로 언급한 인도를 보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미국과 인도의 사이는 벌어졌다. 이른바 '차이나 플러스 원' 전략은 바이든 행정부 시절에는 통했을지 모르지만 전 세계를 상대로 관세 전쟁을 벌이는 트럼프식 통상 기조 아래에서는 유효한 공급망 해법이라고 할 수 없다. 더구나 수년간 미·중 무역전쟁의 파고 속에서 중국의 첨단 기술굴기는 자국 내에서 정치적 정당성을 획득했다. 탈중국만을 외치는 것은 문제의 복합성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이다.  

어쨌든 붉은 공급망의 키를 쥔 이는 팀 쿡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미국 경제의 향방, 중국의 과잉생산, 무역전쟁 재점화, 지정학적 긴장 요인들은 앞으로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올해 말 중국에서 열리는 APEC, 그리고 5일 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한·중 정상회담에서 중국의 메시지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중국은 국제사회가 신뢰할 수 있는 경제 협력 파트너가 될 수 있을까. 붉은 공급망을 둘러싼 이 질문은 애플을 넘어 세계 질서의 향방을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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