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지난 10년간 전혀 다른 길을 걸어왔다. ‘중국제조 2025’를 앞세워 첨단 부품과 중간재의 자급도를 끌어올렸고, 미·중 갈등 속에서 기술 자립을 국가 전략으로 밀어붙였다. 그 결과 한국이 중간재를 공급하고 중국이 완제품을 만드는 기존 분업 구조는 빠르게 흔들리고 있다. 상품 교역에 머문 FTA만으로는 이 변화를 감당하기 어렵다.
해외 사례는 분명한 교훈을 준다. 유럽연합(EU)은 단일 시장을 구축하며 상품보다 서비스·투자·규범의 통합을 앞세웠고, 싱가포르는 FTA를 단순한 관세 협정을 넘어 금융·콘텐츠·데이터가 함께 작동하는 ‘플랫폼’으로 발전시켰다. 자유무역의 경쟁력은 관세 인하가 아니라 제도와 신뢰, 예측 가능성에서 나온다는 점을 이들은 일찌감치 깨달았다.
고전에서도 답은 멀리 있지 않다. 『순자』에는 “물이 흐르는 길을 보면 그 땅의 형세를 안다”는 말이 있다. 교역의 물길이 상품에서 서비스와 투자로 이동하고 있는데, 전략만 과거에 머물러 있다면 결과는 자명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수출 구호가 아니라, 물길이 바뀌었음을 인정하는 판단이다.
이 지점에서 정부의 역할은 분명하다. 한중 FTA 2단계 협상은 더 이상 선언이나 외교 일정의 장식에 그쳐서는 안 된다. 서비스·투자 시장 개방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열되, 동시에 희토류 등 핵심 광물 공급망 안정, 지식재산권 보호, 제도적 투명성이라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분명히 해야 한다. 개방과 보호는 대립 개념이 아니라, 전략 안에서 함께 설계돼야 할 조건이다.
기업의 역할 역시 중요하다. FTA를 ‘정부가 만들어주는 시장’으로 인식하는 순간 경쟁력은 사라진다. 중국 시장은 더 이상 값싼 생산기지가 아니며, 기술과 브랜드, 서비스 역량이 없으면 진입 자체가 어려운 시장으로 바뀌었다. 기업은 상품 수출에 머물지 않고 콘텐츠·유통·금융·문화가 결합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FTA는 보호막이 아니라, 도전장을 활용할 줄 아는 기업만이 기회를 얻는 무대다.
한중 FTA 10주년은 축하의 시간이 아니라 점검의 시간이다. 지난 성과를 부정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전략을 바꾸지 않으면 성과는 기억으로만 남는다. 상품 중심 교역의 시대는 이미 지나가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더 많은 FTA가 아니라, FTA를 다룰 줄 아는 국가의 전략 능력이다. 정부와 기업이 각자의 역할을 분명히 하지 못한다면, 다음 10년은 성과가 아니라 비용으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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