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의 본질은 '믿음'이다. 고객이나 시장의 신뢰를 잃은 금융사가 설 자리는 사실상 없다. 최근 여의도 금융가에서 이 '믿음'을 둘러싼 잡음이 크다. 경영권 매각 과정에서 시끄러운 소음이 끊이지 않는 이지스자산운용 얘기다.
고(故) 김대영 창업주가 일군 이지스자산운용은 한국 부동산 투자업계에 큰 획을 그은 회사다. 불모지나 다름없던 국내 부동산 간접투자 시장에 선진 금융기법을 도입했고 서울의 스카이라인을 바꿨다. 마곡의 원그로브 같은 랜드마크는 이지스가 쏘아 올린 혁신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창업주가 작고한 이후 지분 매각 작업이 시작되면서 이지스는 수년째 흔들려왔다.
이번 경영권 매각 과정은 혼돈의 정점과 같다. 이지스 최대주주 측과 주간사가 매각가를 높이기 위해 선진국형 거래 방식이라 포장된 '프로그레시브 딜(경매 호가식 입찰)'을 도입하면서 갈등이 표면화됐다. 특히 이 과정에서 흥국생명은 절차상 불공정성이 있었다고 강력히 주장하면서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절차적 논란 속에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것은 중국계 사모펀드(PEF)인 힐하우스 인베스트먼트다. 힐하우스는 막대한 자금력과 공격적인 베팅으로 최종 승기를 잡았지만 그 배경에는 국내 경쟁자들이 제시한 가격을 훌쩍 뛰어넘는 가격 조건이 있었다.
힐하우스의 등장은 두 가지 딜레마를 남겼다. 첫째, 국내 1위 부동산 자산운용사가 외국계 자본의 품으로 넘어가는 국부 유출 논란이다. 둘째, 가격만 높으면 절차적 불투명성이나 매수자 간 갈등을 감수하고서라도 회사를 넘기겠다는 최대주주와 주간사 측의 근시안적 태도다.
더구나 이지스는 매각 과정에서 국민연금의 투자 정보를 동의 없이 원매자들에게 넘겼다는 의혹도 사고 있다. 자산운용사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보안 윤리를 저버린 행태다. 결국 국민연금은 2조원에 달하는 자금 회수를 경고했다. 이는 단순한 투자 철회가 아니다. 자금 회수가 현실화된다면, 시장의 신뢰를 먹고 사는 운용사에 내려진 파문 선언이나 다름없다.
이지스는 실물 자산인 빌딩을 올리는 데는 탁월했을지 몰라도 무형 자산인 신뢰를 쌓는 데는 처참하게 실패했다. 중국계 자본인 힐하우스 인베스트먼트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지만 껍데기만 남은 이지스를 인수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돈은 좇을수록 도망간다는 얘기가 있다. 최대주주가 눈앞의 매각 차익이라는 황금 알을 꺼내려다 거위의 배를 가르는 우를 범하고 있는 건 아닌지 묻고 싶다. 신뢰가 깨진 운용사에 내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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