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반도체 기술 자립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중국 서버 제조업체 중커수광(中科曙光, 수곤)과 반도체 설계업체(팹리스) 중커하이광(中科海光, 하이곤)의 반도체 합병 빅딜이 무산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승인으로 엔비디아 고성능칩 H200이 중국에 풀리면 중국 반도체 기술 자립 속도가 늦춰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 목소리가 나오는 가운데서다.
중국증권보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두 회사는 지난 9일 저녁 공시를 통해 양사는 이같은 합병 철회 소식을 전하며 "합병 규모가 크고 관련 당사자가 많아 합병 계획 구체화 및 평가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다"며 "합병을 처음 계획했을 때와 비교해 시장 환경이 상당히 변화해 대규모 합병을 실행하기 위한 여건이 조성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최근 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합병은 하이곤이 수곤의 지분을 전량 매입하는 방식으로 이뤄질 계획이었는데, 최근 주가가 급등하면서 합병 비용이 예상보다 크게 증가한 것이다.
AI의 폭발적 수요에 힘입어 최근 중국 주식시장에서 반도체 기업 주가는 강세를 보였다. 합병 발표 후 약 6개월 사이 수곤과 하이곤 주가도 각각 45%, 60% 급등했다. 중국 반도체 전문가 장궈빈은 "주가 상승으로 양측의 기업 가치 평가 및 주식 교환 비율 등 핵심 거래 조건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졌고, 이로 인해 거래의 복잡성과 불확실성이 증가한 것"이 이번 합병 철회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양사는 각각 컴퓨팅 인프라 통합과 고성능 칩 설계라는 핵심 분야에 집중해 향후 반도체 공급망에서 협력해 시너지 효과를 창출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하이곤은 중앙처리장치(CPU)를 비롯한 다양한 다양한 반도체를 설계하는 중국 대표 팹리스 업체다. 하이곤의 최대 주주가 수곤이다. 수곤은 2006년 텐진에서 시작한 서버·메모리·클라우드컴퓨팅 등 방면의 IT 인프라 솔루션 업체로, 최대주주는 중국 정부 산하 과학 학술자문기관인 중국과학원 산하 국유자산업체다.
지난 5월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제재가 거세진 가운데 발표된 양사의 합병안은 총 액수만 약 1160억 위안(약 24조원)으로, 올해 중국 반도체 업계 사상 최대 합병으로 불렸다. 양사의 합병은 반도체 산업의 업스트림과 다운스트림까지 아우르는 중국 반도체 기술 자립 노력의 움직임으로 해석됐다. 특히 미국 '블랙리스트'에 오른 양사의 합병은 엔비디아·AMD·인텔 등 미국 반도체 기업이 장악한 반도체 시장에서 중국산 의존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감을 모았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엔비디아 H200 칩의 대중국 수출을 허용한 것이 중국 내 반도체 생태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합병 철회와 연관 짓기도 했다. 중국 반도체 전문가 장궈빈은 중국 매체 시대주보를 통해 "H200 판매가 풀리면 단기적으로 중국산 그래픽처리장치(GPU)와 중앙처리장치(CPU)가 외국산을 대체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 것”이라며 “중국산 컴퓨팅 자원 통합에 대한 시장 열기도 빠르게 식을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실제로 중국 기업들은 주요 AI 모델을 훈련하는 데 있어서 엔비디아 칩에 여전히 의존하고 있다. 11일 로이터는 트럼프 대통령의 승인 이후 중국 빅테크 기업인 바이트댄스·알리바바가 엔비디아로부터 H200 칩을 구매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보도했다. 또 중국의 명문대, 데이터센터 기업, 중국군 관련 기업들도 비공식적 경로를 통해 H200 칩을 조용히 조달하려 했다고 보도했다.
중국 기업들이 엔비디아 칩을 동남아시아 등을 경유해 밀반입하고 있다는 의혹도 꾸준히 제기된다. 최근엔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가 대중국 수출이 금지된 엔비디아의 최신 AI칩 '블랙웰'을 밀반입해 차세대 AI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고 IT전문매체 더인포메이션이 10일 보도하기도 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르포] 중력 6배에 짓눌려 기절 직전…전투기 조종사 비행환경 적응훈련(영상)](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4/02/29/20240229181518601151_258_16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