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부터 디스토피아까지…AI 타고 확장되는 K-숏드라마 제작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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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비글루]
숏드라마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제작 현장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짧은 러닝타임과 빠른 제작 사이클이라는 포맷 특성 위에 인공지능(AI)이 결합되며, 제작비·시간 절감은 물론 장르와 연출의 확장을 동시에 꾀하는 실험이 본격화되고 있다. 세로형 K-드라마 문법에 AI를 접목하려는 시도가 플랫폼과 제작사 전반으로 확산되는 흐름이다.

플랫폼 비글루(Vigloo)는 AI 기반 숏드라마 제작을 가장 공격적으로 밀어붙이는 사례로 꼽힌다. 비글루를 운영하는 스푼랩스는 2025년 7월 AI 전담 태스크포스(TF)를 신설한 뒤 파일럿 성격의 AI 숏드라마를 선보였고 10월에는 ‘지옥에서 찾아온 나의 구원자’와 ‘서울: 2053’ 두 편을 기획 단계부터 후반 작업까지 AI를 전면 도입한 작품으로 공개했다.

‘지옥에서 찾아온 나의 구원자’는 재벌 2세와의 계약 연애를 그린 로맨스로 인하우스 제작팀이 트리트먼트(시나리오 축약본)를 바탕으로 캐릭터 이미지와 배경을 생성하고 세로형(9:16) 화면 포맷에 맞춰 영상화했다. 이 과정에서 이미지-투-비디오(Image-to-Video) 방식이 활용됐고 시각효과(VFX)와 로케이션 촬영 비용은 이전 대비 90% 이상 줄었다. 전체 제작 기간 역시 절반 수준으로 단축된 것으로 전해진다.

‘서울: 2053’은 국내 제작사 쟈니브로스와 협업한 디스토피아 SF물이다. 폐허가 된 미래 도시, 모래폭풍, 휴머노이드 등 현실 촬영이 어려운 요소를 AI 합성으로 구현해 숏드라마 포맷의 장르적 한계를 시험했다. 이를 계기로 비글루는 드론샷, 대규모 전투 장면, 고급 승용차 시퀀스 등 고비용·고난도 장면에 AI 후반 작업을 적용하는 ‘제작 지원 모델’을 정교화하고 있다.

비글루는 제작 공정 외곽도 AI로 메우고 있다. 다국어 서비스를 위한 번역·더빙, 시청 데이터 기반 마케팅 영상, 개인화 추천 시스템에 AI를 적용해 여러 언어권에서 동시에 콘텐츠를 선보이는 구조다. 숏드라마 제작·유통·마케팅 전 과정이 하나의 전체 제작 프로세스(워크플)로 묶이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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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오콘텐츠]

제작사 영역에서도 ‘AI 숏드라마’를 둘러싼 실험이 이어진다. 

드라마 ‘나의 완벽한 비서’ ‘밤이 되었습니다’ 등으로 알려진 이오콘텐츠그룹은 5분짜리 에피소드 10편으로 구성된 시즌제 AI 드라마 ‘곧, 밤이 됩니다’와 ‘곧, 출근합니다’를 제작 중이다. 교도소를 배경으로 한 서스펜스 스릴러 ‘곧, 밤이 됩니다’는 기획 단계부터 실제 배우의 얼굴 근육과 표정을 학습한 AI 휴먼을 도입해 감정 연기의 자연스러움을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설계됐다. 두 작품 이후에는 총 127편 규모의 ‘곧,’ 시리즈를 순차적으로 내놓겠다는 계획도 제시했다.

프리미엄 제작사 웨스트월드스토리는 한국콘텐츠진흥원 사업을 통해 ‘모쏠지옥’ ‘뽀삐가 재벌남으로 돌아왔다’ ‘내 결혼식의 불청객’ 등 숏폼 드라마 3편을 제작했다. 이 가운데 ‘뽀삐가 재벌남으로 돌아왔다’에서는 무지개 다리를 건넌 반려견이 재벌 2세에 빙의하는 설정을 바탕으로, 생성형 AI를 활용한 반려견 감정 연기를 시도해 눈길을 끌었다. 연애 리얼리티 포맷을 차용한 ‘모쏠지옥’, 결혼식장에서 옛 연인이 등장하는 멜로 ‘내 결혼식의 불청객’ 등 로맨스·판타지·치정 장르를 숏폼 구조로 압축한 포트폴리오는 글로벌 플랫폼과의 공동 제작 논의로 이어지고 있다.

관건은 AI가 ‘비용 절감 도구’에 머무르지 않고 어떤 방식으로 K-드라마식 감정 서사와 결합할 수 있느냐다. 숏드라마는 2분 내외의 짧은 러닝타임에 회차를 빠르게 소비하는 구조인 만큼 시청자가 캐릭터와 세계관에 몰입할 수 있는 내러티브 설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시즌제 AI 드라마로 세계관을 확장하려는 시도, 작가 양성 프로그램과 AI 제작 시스템을 연동해 스토리 개발과 제작 효율화를 동시에 노리는 시도는 모두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AI와 숏드라마를 둘러싼 한국 콘텐츠 업계의 실험은 이제 막 1막을 연 단계다. 로맨스에 머물던 세로형 드라마를 SF·디스토피아·액션까지 넓히려는 시도, 동물과 AI 휴먼의 감정 연기를 구현하려는 시도들이 동시에 진행 중이다. 기술이 서사를 어떻게 확장시킬지 그리고 이 과정에서 K-콘텐츠 특유의 감정선은 어떻게 유지·변주될지 향후 몇 년간의 결과가 ‘AI 숏드라마’의 방향을 가늠하게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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