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윤칼럼)"승자 독식의 제왕적 대통령제 고쳐야"

  • 극한 대립의 정치 협치의 길을 묻다

김영윤
김영윤
김영윤  (사)남북물류포럼 대표
 
작금 한국 국회는 토론의 장이 아니다. 극한 대립의 전쟁터다. 막말과 폭언, 퇴장과 고성이 전혀 낯설지 않다. “정치가 원래 그런 것”이라고 치부한다면 국민은 언제까지 이런 꼴불견을 지켜봐야만 하는가? 정치인의 언행은 그 사회의 거울이다. 막말이 일상화한 정치는 국민의 피로만 가중할 뿐이다. 여야 모두는 자신을 ‘정의로운 집단’으로, 상대를 ‘악한 집단’으로 여기는 ‘진영 정체성’에 매몰되어 있다. “상대가 더 나쁘다”는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가 그들의 행동을 합리화하고 있다. 정치 행위는 문제 해결의 과정이 아닌 오로지 정체성의 경쟁일 뿐, 설득과 타협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승패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곳에 권위주의적 관행이 난무하고, 상대에 대한 공격은 “정의의 실현”으로 치부된다. 정치의 언어는 실종되고, 분노의 언어만 남았다. 국민은 ‘기 싸움’의 무대만 쳐다볼 뿐이다. 어디 그뿐인가? 정치인의 언행은 감정 전염(emotional contagion)을 일으켜 “정치는 어차피 변하지 않는다”는 체념을 내면화하고 있다. ‘정치권은 싸움터’라는 학습화된 무기력이 만연한데, 언론과 SNS는 한술 더 떠 분열을 부채질하고 있다.
 
한국 정치권의 과잉 대립은 권력 상실에 대한 불안과 정체성 위협에서 비롯된다. 정치인의 비도덕적 언행, 소속 집단의 이익 우선, 폭언은 모두 이와 결부되어 있다. 그들에겐 모든 것이 ‘정치적 수단’이다. 이는 한국 정치가 오랜 기간 승자독식의 구도 속에서 발전해왔기 때문이다. 선거에서 승리한 세력이 모든 권한을 독점하는 구조가 정치적 대화와 타협 기능을 마비시킨 것이다. 타협은 ‘무능’으로, 강경함은 ‘리더십’으로 평가되는 왜곡된 정치 문화를 낳았다. 충성과 진영논리만 자리 잡은 곳에는 상호 존중보다는 감정 대결이, 토론보다는 언어적 충돌만이 존재할 뿐이다. 승자독식제는 대통령제에서 절정을 이룬다. 제왕적 대통령제 아래에서는 정권이 바뀌면 국가 비전은 5년마다 초기화한다. 국가 운영 방향이 뿌리째 흔들린다. 대통령 1인의 성향·철학·정치적 이해관계가 국가 시스템을 압도하는 사회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국가 운영의 연속성은 사라지며, 정책의 안정성은 극도로 약해진다. 국민은 정책보다 인물 중심으로 판단하고, “내 편, 네 편”의 정치에 과몰입하게 된다. 모두 승자독식이 낳은 폐단이다. 대안은 없는 것일까?
 
세금으로 정치적 대립을 구경거리로 만드는 행태를 즉시 멈추어야 한다. 정쟁이 사회 전체의 신뢰 기반을 무너뜨리고 있음을 정치인은 깨달아야 한다. 정치혐오가 민주주의에 대한 피로로 이어지고 있음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정치혐오가 깊어질수록, 극단적 세력의 목소리만 높아지는 악순환만 반복되지 않는가? 이제부터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하나?
먼저 정치 제도적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선거제의 개편이 필수적이다. 승자독식 선거제를 바꾸어야 한다. 비례대표 강화와 연합정치 구조를 제도화해야 협치와 타협의 정치 문화가 정착할 수 있다. 공천권을 분산하는 정당 민주화와 함께, 정책에 기반한 후보 선출 구조를 마련, 연합정치를 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 책임총리제로 실질화하거나, 대통령의 인사권을 제한하고 독립기관의 인사 절차를 강화하는 방안을 통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막아야 한다. 분권형 이원집정부제나 의원내각제를 가능한 하나의 대안으로 고려해보아야 할 것이다.
 
둘째, 정치인의 윤리 강화를 제도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막말과 폭언을 한 정치인에게는 강력한 징계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비윤리적 행위에 대한 심사 기준을 강화하고 징계 수위를 높여야 한다. 정치인이 권력 중심이 아닌, 공공 책임 중심의 리더십을 강화할 수 있게 정치 리더십 교육을 제도화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누가 더 책임 있게 일하는가로 평가받을 수 있는 정치적 역량을 함양할 수 있다.
 
셋째, 언론이 정치적 갈등을 자극적으로 소비하는 일을 중단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클릭 수 경쟁을 넘어 정책 중심의 보도 방향으로, 문제 해결의 방향을 제시하는 건설적 저널리즘으로 돌아갈 수 있는 일대 개혁이 필요하다.
 
넷째, 일반 대중은 단순한 관중이 아닌 정치적 계약자이자 감시자가 되어야 한다. 한국 정치의 극한 대립은 단순한 정치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 심리적 구조와 문화적 관성의 결합으로 나타난 결과다. 따라서 일반 시민의 성숙한 감시와 건전한 참여가 필수적이다. 감정적 진영논리를 넘어 사실 검증과 비판적 사고를 바탕으로, “누가 내 편인가”가 아닌 “누가 더 책임 있게 일하는가”를 기준으로 정치인을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시민의 인식 수준이 높아질 때 정치인의 품격은 자란다. 시민의식의 함양을 위한 사회적 운동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위에 제시한 방향으로 우리 사회가 나아가기 위해서는 지금 시급히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가 하나 있다. 다름 아닌 현재 비상계엄과 관련된 재판을 조속히 마무리하는 것이다. 내란 재판이 장기화하면서 사회적 피로감과 불안 심리는 누적되고, 좌우 진영의 갈등은 극단화하고 있다. “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불신과 “사회정의가 실현되지 않는다”는 불안감이 그 정점을 향하고 있다. 내란 재판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 속에서 법치와 민주주의 원칙보다는 개인의 정치 이익을 우선하는 모습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 이를 방치하면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신뢰는 영원히 사라지고 만다. 사회 전반에는 냉소와 분노가 가득해지고, 해결해야 할 경제·사회적 과제들은 모두 뒷전으로 밀려날 것이다. 내란 사건을 둘러싸고 여야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공론장이 파편화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가? 재판 지연을 없애고, 판결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라. “법치가 살아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하라. 민주주의는 제도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정치 지도자의 책임, 시민의 참여, 언론의 감시가 함께 작동하는 시스템이 되어야 한다. 하루라도 더 빨리 “싸움의 정치”를 끝내고, “대화의 정치”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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