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 수장들이 부동산 세제 개편을 사실상 기정사실화하면서 ‘보유세 인상론’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내년 6월 지방선거 이후 본격 개편될 가능성이 크지만, 시장의 시선은 이미 10·15 부동산 대책에서 보유세 인상 방향으로 쏠리고 있다. 집값 안정과 부의 불평등 완화의 ‘약’이 될지, 거래 위축과 시장 혼란을 부르는 ‘독’이 될지 의견이 엇갈린다.
21일 관가에 따르면 정부가 지난 15일 발표한 부동산 대책에 담긴 ‘부동산 세제 합리화 방안’은 보유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 인상을 축으로 추진될 가능성이 크다. 세제 당국은 1주택자에 대한 과도한 세제 혜택이 고가주택 보유·매매 부담을 낮춰 ‘똘똘한 한 채’ 현상을 부추겼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9일(현지시간) 워싱턴DC 기자간담회에서 “고가 주택 보유에 부담이 커지면 집을 팔게 되고, 그만큼 시장 유동성이 생긴다”며 “보유세 강화는 납세자의 부담 능력에 맞게 과세한다는 ‘응능부담’ 원칙에도 부합한다”고 강조했다. 전반적인 밑그림은 내년 6월 지방선거 이후 발표될 세제개편안에 담길 것으로 관측된다.

세제는 대출 규제, 공급 확대와 함께 부동산 대책의 3대 축 중 하나다. 연속적인 강력한 규제에도 서울 강남권은 신고가 행진을 이어가고 있어, 집값 안정화를 위한 마지막 카드가 ‘보유세 인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보유세 인상은 부동산 투자에 따른 기대수익률을 낮춰 집값 상승 기대감(기대 인플레이션)을 꺾는 효과가 있다.
유호림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공정시장가액비율을 윤석열 정부 이전 수준으로 환원해 종부세를 인상해야 한다”며 “단계적 인상보다 한 번에 대폭 올려 시장에 명확한 신호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주택자가 세 부담을 느껴 매물을 내놓게 해야 하며, 과거처럼 임대소득자에게 혜택을 주는 방식은 반복해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특히 보유세율을 높이면 고가 주택 매력도가 떨어지면서 고자산 가구들이 자산 포트폴리오를 주택에서 채권 등 금융자산으로 이전하도록 유도하는 효과가 나타났다. 또한 보유세 수입을 활용해 저소득층의 주택담보대출 이자를 0.55%포인트 낮춰줄 경우 자가보유율은 3.51% 증가하고, 불평등의 정도를 보여주는 주택자산 지니계수는 5.33% 하락했다. 연구진은 “보유세 강화가 불평등 심화를 완전히 되돌리지는 못하지만 부작용을 완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반면 조세 형평성을 내세운 개혁이 오히려 조세 저항을 촉발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보유세 인상이 오히려 거래를 위축시키고, 보유세 인상분이 집값에 전가돼 오히려 가격 상승을 부추기는 역효과를 낼 수 있어서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보유세 인상은 주택가격 상승을 유발할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고 주장한 이유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보유세를 강화하면 ‘정권이 바뀔 때까지 버티자’는 심리로 매물이 잠기고, 조세 저항만 심화될 수 있다”며 “결국 국민 삶의 질만 떨어뜨릴 수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보유세는 현 수준을 유지하고 공급 확대를 통해 시장 안정을 도모해야 한다”며 “섣부른 세제 개편은 역효과를 부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보유세 강화가 응능부담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 데다 집값을 잡는다 하더라도 주택가격 하락이 소비부진과 경기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고가 주택을 보유한 부유층의 소비 감소가 저소득층에 확산되고, 고령층의 노후 대비에도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주요 세목별 부의 재분배 효과 분석 및 개선방향’ 보고서에서 “일각에서는 비싼 부동산 자산을 보유했으므로 부담능력이 충분하기에 재산세를 많이 부담해도 된다고 주장하나 이는 자본이득세 또는 양도소득세처럼 이득이 실현됐을 때 적용할 수 있는 논리”라며 “재산세에 적용하기는 어렵다”라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재산세 누진세율 부과 사례는 세계적으로 드물다고 진단했다. 부동산 자산의 경우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재산세를 산정하는데, 자산 유형별로 가격 대비 공시지가 비율이 다르기 때문이다. 장·노년층의 경우 퇴직 이후 소득이 줄어 현금 유동성은 낮아지는데 재산세 실효세율은 계속 높아지면서 주거 생활의 안정성이 흔들릴 우려도 크다.
성명재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조세의 본질적 기능은 정부 재원 확보이며, 소득 재분배 효과는 부수적 기능일 뿐”이라며 “기능을 얻기 위해 세제를 사용한다면 역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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