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상병 시사평론가]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백인 우월주의’는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물론 그 이면에는 유색 인종에 대한 혐오, 가난한 나라에 대한 차별이 짙게 배어있다.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이는 ‘마가(MAGA)’의 속살이다. 오죽했으면 미국 언론도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행태에 대해 미국을 다시 백인화 하겠다는 일종의 ‘십자군 운동’이라고 질타했겠는가. 유럽에서는 이민자들에 대한 혐오가 정치지형까지 바꾸고 있다. 주요 국가들마다 극우 세력이 급부상하고 있는 핵심 배경이다. 이탈리아 극우 정당인 ‘이탈리아형제들(Fdl)’의 멜로니 대표는 벌써부터 총리 직을 맡고 있다. 이전부터 노골적인 인종차별주의자로 유명하다. 일본도 예외가 아니다. ‘일본인 퍼스트’를 외치며 ‘혐한론’을 퍼뜨리는 극우 ‘참정당’이 지난 7월 참의원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한술 더 떠서 극우 다카이치(高市早苗) 중의원 의원이 이달 초 집권 자민당 총재에 당선됐다. 우리나라를 향해 막말도 퍼붓는 등 혐한론자에 가깝다. 자칫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되는 건 아닌지 마음이 영 불편하다.
나라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인종 또는 외국인 혐오는 이미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트럼프의 재등장과 무관하지 않겠지만, 먹고살기 힘든 경제적 어려움이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일자리가 줄어들고 복지비용은 늘고 범죄마저 증가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는 다분히 감정적이다. 극우의 절망과 분노를 쏟아낼 대상으로 한국을 지목한 것이다. 물론 혐중론도 포함된다. 이는 과거 제국주의 추억에 젖은 일부 극우 세력의 시대착오적인 망동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이들이 점점 정치권으로 세를 넓혀가고 있다는 점이 걱정이다. 우리는 중국보다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 정치권 지형이 더 취약하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우리 정치권 안팎에서도 외국인 혐오 분위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뜬금없는 ‘중국인 때리기’가 도를 넘고 있다는 얘기다. 정치권이 분위기를 띄우면 극우 세력이 행동에 나서는 형국이다. 물론 이유나 명분도 약하다. 국익이나 국가의 명예, 상대방 인권에 대한 배려나 존중은 눈을 씻고 봐도 찾기 어렵다. 대신 입에 담기도 힘든 거짓과 왜곡, 혐오, 욕설이 길거리에서 난무하고 있다. 일본 극우 세력의 혐한론과 혐중론이 이제는 우리나라에서 혐중론으로 다시 이어질 줄은 정말 몰랐다. 일본 극우의 망동에는 침묵하면서 오히려 그들과 한 목소리로 혐중론에 가세하다니, 참으로 고약하고도 부끄러운 일이다. 이를 지켜보는 일본 극우 세력이 웃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참담한 심경을 감출 수 없다.
입법은커녕 논의조차 어렵다고 보는 것은 우선 팩트가 틀렸기 때문이다. 무임승차라는 ‘의료쇼핑’은 무임이 아니라 건강보험료를 더 내고 있다. ‘선거쇼핑’주장은 악의적이다. 국내에 거주하지 않으면 투표권 자체가 없다. ‘부동산 쇼핑’만 놓고 보더라도 서울 지역 아파트는 미국인 소유가 더 많다. 각 종 규제와 세금도 동등하다. 규제하려면 외국인 전체를 검토해야 한다. 콕 찍어 중국인만 가려낸다는 것은 상식 밖이다. 물론 국민의힘은 팩트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다. 혐중론에 다시 불을 지피고 괴담과 혐오로 여론을 선동하고 그 연장에서 지지층을 결속시킬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중국인 3대 쇼핑 방지법’ 당론은 역사에 남을 것이다. 우리 정치사에서 외국인 특히 중국인 혐오와 ‘인종차별주의 정치’의 한 획을 긋는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 내란 사태 이후 ‘중국인 때리기’는 일부 극우 세력의 준동으로 그치지 않고 있다. 야권을 대표하는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점차 확산되고 있을뿐더러 ‘3대 쇼핑’ 운운하는 어처구니없는 얘기가 당론으로 추진되는 시점까지 도래한 것이다. 이대로 가면 정말 위험하다. 극우 세력의 준동이 무서워서가 아니다. 중국의 반발 때문도 아니다. 국민의 분열로 인해 우리 국익에 결정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세계는 ‘관세 전쟁’의 한복판에 있다. 미국의 무도한 압박에 우리 경제가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고 있다. 대외 경제환경이 매우 나쁘다는 뜻이다. 이런 판국에 우리 옆의 거대 시장인 중국에 등을 돌리고 혐중론까지 확산시켜서 무엇을 얻겠다는 것인가. 세계경제의 현실을 조금이라도 고민한다면, 우리의 국익을 조금이라도 고민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혐오는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일종의 폭력이다. 일본 극우 세력의 혐한론 그 자체가 폭력이라는 우리의 지적과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서울 명동 등의 길거리에서 ‘중국인 때리기’에 나서는 일부 극우 세력의 준동을 철저하게 차단해야 한다. 유럽에서는 혐오 시위를 ‘민주 사회의 적’으로 규정하고 강력한 법집행으로 맞서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불량배들이나 하는 짓을 거리낌 없이 해도 정부는 수수방관이다. 인터넷에서는 말 그대로 난장판이다. 이재명 정부마저 이렇게 무기력하면 정말 곤란하다. 정치인들도 예외가 아니다. 관련 법을 개정해서라도 민주 사회를 좀먹는 이런 암덩어리를 제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내부로부터 붕괴할 것이다. 이미 우리 사회에도 극우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다. 혐오는 극우의 친구다. 지금 끊어내지 못하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이다.
필자 주요 이력
△시사평론가(현) △인하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 △인하대 정책대학원 초빙교수(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선거방송심의위원(전) △혁신과미래연구원 원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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