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제2 노무현·박용진'?…막장 국감만 없었으면

이도윤 증권부장
이도윤 증권부장

한때 TV를 점령했던 오디션 프로그램의 흥행 비결은 '스타 탄생'에 있다.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들이 경연에 나서 끼와 재능을 겨루는 모습은 흥미롭다. 수많은 원석 중에서 보석이 발굴되는 과정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매년 가을 서울 여의도에도 ‘스타 탄생’의 장(場)이 열린다. 정치 유튜브와 같은 사설 경연장이 아닌 헌법과 법률에 따라 마련되는 공식 경연장, 국정감사다. TV로 생중계된다는 점에서 오디션 프로그램과 같다. 금배지를 달았지만 대중적 인지도가 낮은 초선들, 더 큰 꿈을 꾸는 재선 이상 의원들이 경연대에 선다. 공식적으로 깔린 이 ‘판’에서 한 건만 터뜨리면 곧바로 대중적 인지도를 갖춘 ‘스타’로 등극할 수 있기에 경쟁도 치열하다.

이 방식이 통한다는 걸 보여준 선례도 있다. 국감은 아니었지만 30여 년 전 5공(共) 청문회에서 청년 정치인 노무현은 서슬퍼런 질타로 일약 전국구 정치인으로 떴다. 2019년 전국 학부모들을 분노케 했던 사립유치원 비리를 폭로한 박용진 의원(더불어민주당)도 국감이 낳은 스타다. 그래서 금배지 300명은 매년 가을 국감에서 제2의 노무현, 제2의 박용진을 꿈꾼다.

그런데 지난 수십 년간 제2 노무현, 제2 박용진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과문(寡聞)한 탓인지 몰라도 박용진을 제외하고 근 10년간 국감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줬던 이가 있었는지 기억에 없다. 국정감사NGO모니터단이 평가한 2020~2023년 국감 평점이 'C' 'D' 'F' 학점에 그친 게 그 방증이다. 지난해 국감도 그랬다. 작년 국감 최대 이슈는 걸그룹 뉴진스의 멤버 하니가 참고인으로 출석한 것이었다고 기억할 이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노무현과 박용진이 스타가 된 건 철저한 자료조사와 시의적절한 문제 제기에 있었다. 대중의 분노와 공감을 이끌어내는 포인트가 무엇인지도 정확히 알았다. 여기에 국민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언변이 곁들여지면서 '스타 탄생'의 스토리를 썼다. 그런데 근래 국감에선 비아냥과 꾸중, 고성만이 존재한다. 자료조사의 철저함도, 대중의 공감을 이끌어낼 이슈 선점도 없이 무조건 소리치고 윽박지르는 풍경이 어느덧 우리가 접하는 국감의 일상이 됐다.

자극은 더 큰 자극을 부른다. 고성과 윽박지르기에 익숙한 시청자(국민)들에게 어필하기 위해선 더 큰 자극이 필요하다. 기업인들의 증인·참고인 출석 요구가 해마다 급증하는 것도 이와 연관 지어볼 수 있다. 2020년 60명 남짓이던 국감의 기업인 증인 숫자는 작년 130명을 넘어섰다. 올해는 200명에 육박할 정도로 늘어날 기세다. 최태원, 정의선, 정용진 등 재벌 총수들을 비롯해 수많은 산업·금융업계 CEO와 고위 임원들이 증인 출석요구서를 받아든 상황이다. 그렇게 출석한 기업인들에게 삿대질을 하며 죄인 취급하는 관행은 어쩌면 더욱 심해질 것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국감 시즌이 시작됐다. 13일 2025년 첫 국감이 열렸다. 많은 의원들은 SNS를 통해 정책 국감, 생산적 국감을 만들겠다고 전의(戰意)를 다짐한다. 그 다짐의 반의 반만 지켰으면 한다. 자료 준비도 없이 '스타'가 되겠다는 욕망만 앞세워 호통과 삿대질을 한다고 해서 국민적 인지도가 높아지는 건 아니다. 기업인을 증인석에 세워 혼쭐을 낸다 해서 정치인으로서 선명성이 부각되는 것도 아니다. 그건 '스타 탄생'이 아닌 '막장 드라마'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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