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일 대전 유성구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현장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계자가 소화수조에 담긴 배터리를 살피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가정보자원관리원 대전본원 전산실(데이터센터) 화재 원인으로 지목된 무정전 전원 장치(UPS)용 리튬이온 배터리를 놓고 책임 공방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정부가 보증 기간(사용 연한)이 1년 넘게 지난 배터리를 계속 사용하고 있었던 만큼 배터리 제조사와 시공 업체보다 정부에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예측된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이번에 발화사고를 일으킨 배터리는 11년 넘게 사용 중인 제품으로 확인됐다. 리튬이온 배터리 보증 기간이 10년인 점을 고려하면 사용 연한을 1년 이상 넘긴 것이다.
제품 보증 기간이 끝났다고 해서 당장 배터리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배터리 업계에선 안전을 위해 신제품으로 조속히 교체하는 것을 추천하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보증 기간을 넘긴 배터리를 계속 사용한 이유에 대해 아직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번에 화재가 일어난 리튬이온 배터리는 2012~2013년경 LG에너지솔루션이 제작·공급한 제품이다. LG CNS가 LG에너지솔루션에서 공급받은 배터리로 배터리 시스템을 만든 후 이를 공급받은 UPS 업체가 UPS 시스템을 최종적으로 완성해 2014년 8월 국정자원에 납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UPS 배터리 이중화 공사는 제품 보증 기간이 끝난 만큼 UPS 업체 대신 정부가 별도의 공공 입찰을 통해 전기 공사를 발주해 진행한 것으로 파악된다.
행안부·국정자원 측은 전원이 차단된 배터리에서 화재가 발생했다고 밝혔지만 일각에선 정부 설명과 달리 배터리 이전 과정에서 작업 실수가 있었던 아니냐고 주장을 하고 있다. UPS용 배터리를 이전하려면 먼저 강한 스파크가 발생할 우려가 있는 직류 전원을 차단해야 하는데 차단하지 않은 상황에서 전선을 빼다가 전기 단락(쇼트) 사고로 배터리에 불이 붙었다는 주장이다.
경찰도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화재 진상 규명에 나설 전망이다. 대전경찰청은 이날 소방당국,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합동 감식에 착수했다.
화재 진상 규명과 별개로 배터리 업계에선 이번 화재로 친환경 전력과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확대로 급성장이 기대되는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이 위축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친환경 재생 에너지 확대에 심혈을 기울이는 상황에서 리튬이온 배터리가 대량으로 투입되는 ESS는 친환경 에너지의 단점인 기저부하 전력망으로 활용하기 어렵다는 문제를 해결할 솔루션으로 주목받고 있다. 특정 시간에 생산한 전기를 ESS에 보관했다가 발전량이 떨어지면 ESS를 통해 부족한 전기를 공급하는 형태다.
실제로 정부는 지난 7월 540㎿ 규모 제1차 ESS 중앙계약시장 사업자를 선정한 데 이어 조만간 같은 규모로 제2차 ESS 중앙계약시장 사업자를 선정하며 국가 주도로 ESS를 확충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국내 배터리 업체들이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와 함께 화재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함께 생산하며 ESS 시장 수요에 대처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본다. 보증 기간이 지난 리튬이온 배터리를 LFP로 교체하는 모습도 일상화할 전망이다.
일례로 국정자원의 민관협력형 클라우드 운영모델(PPP) 참여 기업인 KT클라우드는 2020년 선릉 데이터센터 배터리 화재 사고 이후 데이터센터 내 리튬이온 배터리를 전량 LFP로 교체하는 강수를 두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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