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 한 해 법원에 접수된 압수수색영장이 사상 처음으로 50만건을 넘겼다. 2018년 25만건에 불과했지만 불과 6년 사이 두 배가 됐다. 심지어 발부율도 87%에서 90%로 높아졌다. 그렇게 매일 '수사기관이 어디를 압수수색했다'는 뉴스가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그야말로 ‘압색 공화국’이다.
압수수색은 원래 최후의 수단이다. 그러나 한국의 수사 현실은 정반대다. '모든 수사는 일단 압색부터'라는 잘못된 습관이 자리 잡았다. 수사기관은 수사 시작과 동시에 영장을 들이밀고, 법원은 사실상 그대로 도장을 찍을 뿐이다. 통제는 사라지고 절차는 형식으로 전락했다.
압수수색은 근본적으로 기본권을 침해하는 행위다. 피의자뿐 아니라 가족, 동료, 심지어 전혀 무관한 제3자 정보까지 수사기관에 넘어간다. 노트북 하나, 휴대전화 한 대를 통째로 복제해 수사기관이 장기간 보관한다. 이렇게 확보한 자료는 원래 사건이 아니라 다른 혐의를 캐는 ‘별건수사’의 도구로 전락하기도 한다.
압수수색 중독의 배경에는 법원의 물증 집착이 있다. 피의자 진술조서의 증거능력이 제한되자 수사기관은 압색으로 확보한 물증 없이는 공소 유지가 어렵다고 믿는다. 법원 역시 간접증거보다 압색 물증에 더 큰 무게를 둔다. 물론 정황증거와 증언만으로도 유죄를 인정할 수 있지만 실무는 여전히 '압색 없이는 승소 없다'는 인식이 지배한다.
압수수색의 절대성은 역설적 결과를 낳는다. 영장을 발부하는 사이 피의자가 휴대전화를 교체하거나 데이터를 삭제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는다. PC는 물리적으로 파괴하거나 메인보드를 바꾸기도 한다. 수사기관이 압수수색에만 매달릴수록 증거인멸 유인은 더 커진다. 통신기록 조회, 금융추적, 임의제출 요청 같은 대체 수단을 활용했다면 굳이 피의자를 겁박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미국은 위법 수집 증거 배제 원칙이 철저하다. '노크 앤드 어나운스' 원칙을 무시한 수색은 위법이고, 증거는 법정에서 배제된다. 독일은 비례원칙에 따라 무관한 전자정보는 즉시 폐기하고, 영장 사후통제를 보장한다. 영국은 압수물 목록 교부와 사후 검증 절차가 엄격하다.
우리도 사전심문제를 도입해 영장 남발을 차단하고, 영장항고제를 활성화해 피압수자가 불복할 길을 열어야 한다. 디지털 압수 선별 규정으로 관련 없는 데이터의 오남용을 막고, 임의제출을 우선해 압수수색을 최후의 수단으로 돌려야 한다. 별건수사 금지를 명문화해 압수물은 영장 사건 외 활용을 원칙적으로 금지해야 한다.
핵심은 재판 문화다. ‘압색 물증’ 중심에서 벗어나 공판 중심주의로 나아가야 한다. 직간접 증거와 교차신문, 정황증거의 유기적 결합만으로도 충분히 범죄사실을 입증할 수 있다는 판례의 정신을 실무에 심어야 한다. 그러면 수사기관은 압수수색에 맹목적으로 의지하지 않아도 재판 과정을 통해 증거를 선별하고 공방을 거쳐 진실에 다가갈 수 있다.
검찰개혁이 한창이다. 압수수색의 오남용은 검찰개혁이 이뤄지는 주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검찰이 사라지고 다른 수사기관이 그 자리를 메운다 해도 지금의 관행과 재판문화가 그대로라면 ‘압색 공화국’은 사라지지 않는다. 조직 개편만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압수수색 중독을 걷어내고, 사건 공방의 중심추를 법정으로 옮길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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