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료품 물가 비상] 전문가 "유통 구조 합리화 필요…기업만 옥죄는 대책은 곤란"

  • "유통 단계 축소보다 산지 조직화·물류 혁신이 해법"

  • 농산물 유통비용 10% 절감 목표, 실현 가능성엔 '신중론'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 채소판매대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 채소판매대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농산물 가격 급등과 함께 정부가 유통 구조 개편에 나선 가운데 전문가들은 "비효율적인 유통 단계를 줄이려는 방향성에는 공감하지만 기업에 일방적으로 부담을 지우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권승구 동국대 식품산업관리학과 교수는 16일 아주경제와 통화에서 유통 비용 절감을 위해서는 단계 축소보다는 물류 개선과 기술 도입이 중요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유통비용 절감은 필요하지만 상류 단계는 이미 줄일 만큼 줄여 더 축소하긴 어렵다"며 "앞으로는 물류 효율화와 첨단 기술 도입이 핵심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정책 효과를 위해 산지의 자발적인 변화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며 산지 조직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산지 조직화란 농민이 개별적으로 출하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단위 생산자들이 협동조합이나 연합체 형태로 물량을 모아 품질을 표준화하고 공급을 안정시켜 유통 협상력을 높이는 구조를 말한다.

권 교수는 "일본과 유럽은 산지 조직화가 잘 이뤄져 있어 농산물 유통 체계가 효율적으로 운영되는 것으로 본다"며 국내 역시 이 같은 구조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행 유통 구조 개편 논의가 단계 축소에 치우쳐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권 교수는 "도매시장이나 농협 등 정부가 관리하는 공식 유통망은 어느 정도 안정돼 있고, 물류 개선 여지가 있는 건 오히려 비공식적 경로나 산지 단계"라며 "단계를 단순히 줄이기보다는 각 단계의 물류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유통 구조의 복잡성과 개편의 현실적 어려움을 짚었다. 그는 "농산물이 소비자에게 도달하기까지 많게는 9단계를 거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4단계 정도로 본다"며 "단계를 줄이는 것이 말처럼 간단하지 않고, 각 단계별 마진 구조가 얽혀 있어 실제 조정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또 정부의 유통 구조 개편 시도가 반복적으로 무산된 배경에는 단계별 종사자들의 생계 문제와 저항이 자리 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정부가 직접 구조를 축소하기보다는 온라인 유통 채널 확대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기존 구조를 약화시키는 방식이 더 현실적"이라고 덧붙였다.

물가 안정을 빌미로 유통 및 식품 기업 등에 대한 과도한 가격 인하 압박 가능성에 대해서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 교수는 "대형마트들이 산지와 직거래 계약을 하더라도 실제 가격 책정은 도매시장 시세를 참고하게 된다"며 "신선식품은 대형마트의 핵심 경쟁력이라 일정 수준 이상 마진을 붙일 수밖에 없고 무리하게 가격을 낮추라고 하면 기업 경영에 부담이 되고 소비자에게 불편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2030년까지 농산물 유통 비용을 10% 낮추겠다는 목표를 제시했지만 전문가들은 달성 가능성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권 교수는 "미래 일이기에 단정하긴 어렵다"면서도 "목표 달성 여부는 산지와 유통 현장의 수용 여건에 달려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도 "핵심은 이해관계자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소비자 부담을 줄일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을 찾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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