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환의 베트남 ZOOM IN] (51) 베트남 국민 작가 도빅투이의 작품세계

안경환 응우옌짜이대학교 총장
[안경환 응우옌짜이대학교 총장]

여류소설가 도빅투이는 베트남의 53개 소수민족 가운데 하나인 몽족 출신으로 산악지방인 하장성에서 출생하였다. 하장성은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최북단으로 지난 7월 1일 뚜옌꽝성과 병합되어 행정단위로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도빅투이는 소수민족의 어려운 생활환경을 잘 이해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면서 사회적 약자로서 여자들이 겪는 차별에 반대하는 페미니스트다. 그녀는 자신의 대표 장편소설 <영주>를 통해 성별로 인해 발생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차별에 항거하는 목소리를 높이고자 했다. 작품을 통해 포악한 우두머리 숭쭈어다의 사악함을 고발하고, 그 말로가 어떻게 되는지를 폭로한다. 그녀는 소수민족 출신의 여성주의자로, 남성 중심적인 사회구조에 저항하여 성평등을 이루고자 하는 페미니즘을 <영주>를 통해 밝힌다. 저자는 지금까지 24권의 장‧단편 소설과 산문집을 출간하였다. 그녀의 글은 잔잔한 음악을 듣는 것처럼 부드럽게 써 내려가는 문체가 돋보이고, 토속 사회의 질박한 언어가 맛깔나게 해 준다.

 
하장성 계단식 논
하장성 계단식 논

소설 <영주>의 배경이 된 베트남 최북단 하장성은 세계 배낭족이 가보고 싶어 하는 세계 20대 여행지 가운데 4위에 올라 있다. 중국의 장족 자치주인 윈난(雲南)성, 광시(廣西)성과 274km 국경을 접하고 있어, 교통 접근성이 좋지 않아 경제가 낙후되었다. 2025년 7월 1일 행정구역이 개편되기 전 63개 지방 행정단위 가운데 인구 면에서 48위, 소득이 가장 낮은 여섯 개 성에 속한다. 성도(省都)였던 하장시는 하노이와 320km 떨어져 있고, 겨울철에는 영하 5도까지 기온이 내려가고 눈도 내린다. 동양의 알프스산맥이라 할 정도로 산악지방의 위용과 상고대로 인한 설경을 자랑하기도 한다. 산세가 험해 끝없이 굽이도는 도로를 여행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하장성에는 베트남 동북부의 최고봉인 서곤령(2419m)이 있고, 희귀한 동식물이 많이 서식하고 있어 생태 자원의 보고다. 특히 하장성은 1000여 종류의 약초 생산지로 유명하다. 20여 종족이 거주
하고 있는 하장성은 인구가 약 93만 명으로 몽족(32.9퍼센트), 타이족(23.2%), 자오족(14.9%), 비엣족(12.8%), 눙족(9.7%) 순으로 분포되어 있다.

 
몽족 출신의 여류 소설가 도빅투이
몽족 출신의 여류 소설가 도빅투이
하장성 박물관에 보관 중인 돌기둥
하장성 박물관에 보관 중인 돌기둥

<영주>는 작가가 태어나고 성장한 하장성의 한 전설에서 감흥을 받아 쓴 소설이다. 하장성 옌민현 드엉트엉 지역에 약 200년 전에 살았던 포악한 우두머리 숭쭈어다에 대한 이야기로, 숭쭈어다는 사람들을 처형하기 위해 돌기둥을 세웠다. 숭쭈어다에게 예쁜 첩이 있었는 데, 의처증이 심해서 외출을 철저히 금했다. 어떤 남자든 자기 부인에게 치근덕거리면 구멍이 좌우로 뚫려있는 높이 약 1.9m 돌기둥에 매달아 죽였다. 돌기둥은 현재 하장성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드엉트엉은 양쪽에 우뚝 솟은 높은 산과 길게 뻗어 있는 북부 고원 지대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곡이다. 계곡의 토질은 비옥하고 물기를 머금고 있고 기후도 사납지 않다. 햇볕이 충분히 들어 어떤 작물도 잘 자란다. 드엉트엉은 양귀비 재배로 수년 동안 말이 많았던 지역으로, 지리적으로 외졌지만, 암석투성이의 고원 지대와 비교하면 그나마 살만한 지역이다.
 
아편 중독, 의처증, 성도착증(性倒錯症), 여성편집증자, 성격장애자 영주는 얼굴이 반반하거나, 노래를 잘하거나 뭔가 구미가 당기는 여성은 관아로 데려와 자신의 노리개로 삼았다. 그래서 여성들은 외출할 때 숯 검댕을 얼굴에 바르고 다녀야 했다. 밉게 보여야 잡혀가지 않기 때문이다. 사건은 결혼을 약속한 타오짜방과 숭빠신 아가씨가 밭에 옥수수 파종을 하고 해거름에 밭두렁에 앉아서 부른 사랑의 노래가 화근이었다. 영주가 말 타고 지나가다가 노래를 듣고 숭빠신을 첩으로 삼기로 한 것이다. 영주의 첫째 부인은 결혼 예물을 가져가서 자신의 처지와 같은 불행한 여인이 또 생기는 것이 안타까워 숭빠신에게 물에 빠져 죽은 체하고 멀리 도망가서 살라고 귀띔한다. 그러나 도망가면 부모의 안위가 걱정된 숭빠신은 내키지 않지만, 영주의 첩이 되기로 한다. 영주는 후환을 없애려 타오짜방을 돌기둥에 매달아 처형한다. 그러나 죽은 것은 타오짜방이 아니라 타오짜방과 쌍둥이인 동생 타오짜뽀였다. 부모를 더 잘 모시는 형이 살아남아야 한다며 동생 타오짜뽀가 형 대신 죽음을 자청한 것이었다.

영주는 타오짜방에게 쌍둥이 동생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동생 타오짜뽀를 타오짜방으로 알고 처형했다. 사랑하는 동생이 자기 대신 처형당한 것을 알게 된 타오짜방은 복수를 다짐한다. 숭빠신과 영주의 결혼식 날을 거사 일로 잡아 요리사를 가장한 무리를 이끌고 하객, 친지, 경호원들이 술에 취하자 관아에 불을 지르고, 저항하는 경호원들은 총과 칼로 죽인다. 영주는 이미 처형당한 타오짜방의 되살아 나온 줄 알고 도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를 묻는다.
 
“네놈은 이 타오짜방을 절대로 죽일수 없다, 돌기둥이 하나가 아니라 열 개라도 나를 절대로 돌기둥에 매달 수 없느니라. 알 겠느냐?” 하면서 칼을 번개처럼 영주에게 내리 꽂았다.
 
포악하고 탐욕스러운 영주는 처절한 복수를 당했다.
 
“오빠는 계속 발톱의 피를 받아요.
저는 손톱의 피를 받을래요.
밤에 한 병에 섞어서
사람의 맹세로 마셔요.
정말로 아름다운 사랑의 징표로…”
 
사랑의 맹세를 노래한 것이 사단이 되어 이야기가 긴박하게 전개된다. 큰 마님은 숭빠신에게 도망가라고 귀띔했다는 죄로 처형의 위기를 맞는다. 그러나 30년간 집안의 대소사를 챙긴 첫째 부인을 돌기둥에 달에 처형하지 않고, 친정으로 쫓아 보낸 것은 영주의 큰 은전이었다. 첫째 부인은 시집온 후 처음 나가는 바깥나들이였고, 시집오던 길을 되돌아가는 길에 연못에 스스로 빠져 죽었다. 영문을 모르는 누렁이는 큰 마님이 벗어놓은 신발 냄새를 맡으며 울부짖고 있을 뿐이었다.
 
삶이란 무엇인가? 즐거울 필요는 있는 것일까? 당연히 있다. 사랑받을 필요는 있을까? 당연히 있다. 증오할 필요가 있다면 증오해야 하나? 당연히 해야 한다. 생각이 있다면 그것을 말로 표현하고, 하고 싶은 일은 실천해야 하나? 그렇다. 첫째 부인은 죽기 전에 넷째부인 방쩌를 부러워했다. 마부와 정을 통하다가 들통이 나서 돌기둥에 처형된 방쩌는 비록 짧은 생을 살았을지라도 자기가 원하는 방법대로 즐겼고, 자신의 방식을 따르는 즐거운 삶에 만족했으며 죽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점을 부러워하였다.

결론적으로 영주 숭쭈어다는 불행한 남자였다. 흉악하고 황음무도함이 영주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했다는 점과 여성은 남성이 함부로 다루는 노리갯감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고, 여성 역시 행복을 꿈꿀 권리가 있다. 그리고 비록 순간을 살지언정 소위 행복이라고 하는 것과 삶을 바꾸기 위해 죽을 준비가 되어 있는 존재라는 것을 작가는 이야기하고자 했다.

 


필자 주요 이력
▷응우옌짜이대학교 총장 ▷전 조선대 교수 ▷전 베트남학회 회장 ▷전 KGS국제학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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