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아니스트 백혜선은 바쁘다. 한국이 배출한 1세대 월드 클래스 여성 피아니스트라는 수식어만으로는 그를 설명할 수 없다. 그는 연주자이자 두 아이의 엄마이고,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 피아노과 학과장이다. 또 2025 프랑스 롱티보 콩쿠르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우승한 김세현을 비롯해 차세대 피아니스트들을 키워낸 스승이기도 하다.
연주에만 온전히 몰두하기는 쉽지 않은 환경이다. 그럼에도 그에게 음악은 '숨을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상이자, 생을 이어가기 위해 놓을 수 없는 것이다.
백혜선은 18일 서울 종로아트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음악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말했다. "음악을 하면 성숙해지고 제 머리도 더 활발해지죠. 늘 음악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해요. 그래야 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어요."
바쁜 하루하루는 수많은 경험이 됐다. 구도자가 되는 대신, 세월 속에서 연륜을 길렀다. "저처럼 중구난방 돌아다니고 별의별 일을 한 사람은 구도자일 수는 없죠. 대신 많은 경험을 했기에 곡을 보는 생각이 분명히 다르다고 생각해요. 이를 어떻게 잘 전달할 것인가에 집중하고 있죠."
과거 불같던 성격은 세월과 경험 속에서 단단해졌다. 그는 인생이란 "기대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란 점을 배웠다. 항상 최선을 다하는 배경이다. “늘 서프라이즈는 존재하더군요. 기대한 대로 가지 않는 게 인생이죠. 늘 만반의 준비를 하고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어요. 그다음은 운명에 맡길 수밖에 없고요.”
백혜선은 오는 9월 최초로 내한하는 벨기에 국립 오케스트라와 34년 만에 협연한다. 그는 1991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결선 진출자 12인의 한 사람으로 로너드 졸만의 지휘로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과 파트리스 샬룰로 비탄의 도시로를 협연한 적이 있다. 이번 협연에서는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로 호흡을 맞춘다.

그는 '아는 곡이니까 괜찮겠지'라는 마음으로 무대에 오를 때는 연주가 잘 되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오히려 '괜찮을까, 못하면 어쩌지'란 걱정 속에서 최선을 다할 때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것. 수많은 일정 속에서 연주에 온전히 집중하면서 '나'를 찾는 이유다. “정말 너무 힘든 가운데서 벨기에 공연도 하고 미국에서 광복 80주년 음악회도 해야 해요. 이러한 일정 속에서도 연습할 때 ‘저 자신으로 돌아가는구나’란 걸 느끼죠.”
이러한 태도는 젊은시절부터 이어졌다. 그에게 연주란 극기훈련이기도 하다. 실제 백혜선은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당시 심사위원단이 자신이 예상치 못했던 곡을 솔로곡으로 선정하자, 꼬박 밤새워 연습한 후 무대에 올랐다. 당시 그가 세운 4위 입상 기록은 여전히 최고 한국 기록으로 남아 있다. “아파서 죽게 생겨도, 힘이 하나도 없어도 연주자는 무대에 오르면 무조건 연주해야 해요.”
다만, 이제는 가슴으로 느끼는 무대를 말한다. “클래식 음악은 아는 만큼 들린다고 하죠. 그런데 저는 '슈만이 당시에 하고 싶은 게 뭐였을까, 베토벤이 하고 싶은 말이 뭐였을까' 등에 대해서 생각해요. 아카데믹한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토대로 음악에 생명력을 불어넣어주는 것이 연주자의 사명이죠. 그렇기에 클래식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이 들어도 뭔가가 통한다고 생각해요. 청중과 호흡하며 제가 느낀 곡의 에너지, 희망, 위로가 가슴에 닿길 바라요."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