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적 대통령제'...인사·예산·정책·감사권 독점 손봐야

  • 대통령 권한 분산 필요…개헌, 입법·사법부 권한 강화 관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사진연합뉴스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사진=연합뉴스]
이재명 정부 국정기획위원회(국정위)가 최우선 국정과제로 개헌을 꼽았다. 1987년 현행 헌법 체제 수립 이후 38년 만에 권력구조 개편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오른 것이다. 논의의 핵심은 대통령에게 과도하게 집중된 권한을 분산해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막는 데 있다.

현행 헌법 체제에서 대통령은 인사권·예산권·감사권·법률안 제출권까지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대통령에게 이런 권한이 집중됨으로써 삼권분립의 취지가 훼손된다는 비판이 주기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87년 개헌은 군부독재 종식과 직선제 도입에 방점이 찍혔다. 그러나 당시 논의가 ‘직선제 쟁취’에 집중되면서 대통령 권력구조 개편은 사실상 논의되지 못했다. 이후 역대 정권마다 ‘권력 분산형 개헌’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정치적 이해관계에 막혀 번번이 좌초됐다.

21대 대선 과정에서도 어김없이 87헌법 종식을 위한 논의가 이뤄졌다. ‘국민주권정부’를 표방한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뒤 국정 초기부터 개헌을 공론화한 이유도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우려와 개헌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이미 형성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헌 논의의 출발점은 대통령의 권한 축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인사권 분산이 거론된다. 현재 대통령은 장·차관을 비롯해 검찰총장, 국정원장, 헌법재판관, 대법원장 등 국가 핵심 권력기관의 수장을 임명한다. 

국회 인사청문회 제도가 있으나 대통령이 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을 강행할 수 있어 사실상 견제 장치로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권력기관의 정치적 중립성이 보장되지 못한다는 문제가 지적된다.

대통령이 가진 예산권도 개선점으로 꼽힌다. 헌법상 예산안 편성권은 정부에만 주어져 있다. 국회가 예산안을 심사·확정하지만 수정 범위가 좁고 증액 권한도 없어 실질적인 견제가 어렵다. 

감사원의 독립성 문제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감사원은 대통령 직속 헌법기관이지만 정권 교체 때마다 전임 정부를 겨냥한 ‘보복 감사’ 논란이 불거졌다. 대통령의 통제 아래 감사원이 위치하고 있는 한 이들이 본연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입법 과정에서의 대통령 영향력도 도마에 오른다. 원칙적으로 입법권은 국회에 속해있다. 그러나 대통령은 행정부 명의로 법률안을 제출할 수 있다. 더불어 대통령령(시행령)을 통해 입법을 우회할 수 있고, 재의요구권(거부권)으로 국회의 입법권을 무력화할 수도 있다. 지난 정부에서 ‘시행령 정치’와 ‘거부권 남발’ 논란이 불거진 것도 이런 구조적 문제 때문이다.

이 같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고 입법·사법부의 권한을 강화해 권력을 분산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대통령제를 유지하되 국무총리 또는 내각 권한을 강화하는 분권형 대통령제, 대통령과 총리가 권력을 나누는 이원집정부제, 국회가 내각을 구성하는 내각제 등이 대안으로 제시되기도 했다. 현행 5년 단임제 대신 4년 중임제를 도입해 정책의 연속성을 높이자는 주장도 있다. 이 대통령은 대선 후보 당시 대통령 4년 연임제와 결선투표제를 도입하자는 개헌 구상을 발표했다.

이에 국회의 권한 강화가 개헌의 주요 과제가 될 전망이다. 국회가 예산안 편성 단계부터 참여해 심사 권한을 실질화하고 감사원을 국회 소속 독립기관으로 전환하자는 제안이 개헌의 방향성으로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대통령의 법률안 제출권과 거부권을 제한하거나 폐지해 국회의 입법권을 온전히 보장하자는 주장도 있다.

관건은 정치권의 합의다. 권력구조 개편은 여야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충돌할 수밖에 없다. 실제 야당은 집권 전 권력분산형 개헌을 주장하지만 정권을 잡게 되면 대통령 권한 축소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주어진 권력을 내려놓는 것이 정권 운영에 부담이 된다는 이유다.

결국 87체제의 한계를 극복하고 민주주의를 심화할 새로운 헌정 체계를 마련할 수 있을지 여부는 이 대통령이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을 얼마나 내려놓느냐가 핵심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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