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명상] 다석 사상으로 다시 읽는 꾸란 해설 44화

다석 사상으로 다시 읽는 꾸란 해설 44회 썸네일제작이예린 그래픽 디자이너
다석 사상으로 다시 읽는 꾸란 해설 44회 썸네일[제작=이예린 그래픽 디자이너]
 
다석을 아십니까 44회 – 꾸란 31장 ‘루끄만’: 지혜는 중심에서 피어난다
이번 회차에서는 꾸란 31장 ‘루끄만’ 장을 통해 지혜와 중심의 신앙에 대해 성찰한다. 루끄만은 겨자씨만 한 일도 놓치지 않는 하나님의 시선을 통해, 삶의 사소한 말과 행동 하나에도 중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일깨운다. 예배, 선행, 악의 금지, 인내라는 네 가지 실천을 중심 축으로 삼으며, 겸손한 태도와 낮은 목소리를 지혜의 자세로 강조한다. 이는 진리의 소리는 외치는 것이 아니라 스며드는 것임을 드러낸다. 하나님의 창조를 깨닫지 못하고 지식 없이 논쟁하는 이들을 경계하며, 진리는 오직 하나님이시라는 꾸란의 선언으로 장은 마무리된다. 다석 류영모 선생은 “죽음을 되새기면 삶의 중심이 보인다”고 말하며, 신앙이란 결국 참 생명을 묻는 중심의 길임을 되새긴다.
겨자씨보다 작은 것까지 아시는 하나님의 시선
16절은 “겨자씨만큼 작은 것이라도 하나님은 그것을 드러내신다”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주 어디에 있든, 얼마나 작든, 모든 존재와 행위를 아시는 분임을 선포한다. 이 겨자씨 비유는 아무리 사소해 보이는 말과 생각조차 하나님의 시선 안에 있다는 깨달음을 준다. 진정한 신앙은 겉이 아닌 내면의 중심을 지키는 데서 시작되며, 삶의 작은 결정 하나에도 중심을 잃지 않는 태도가 필요함을 일깨운다.
예배와 선행, 악의 금지, 그리고 인내—신앙의 네 기둥
17절은 예배, 선행, 악의 금지, 인내라는 네 가지 실천을 명확하게 제시한다. 이는 단순한 도덕적 권고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중심을 지탱하는 삶의 기둥으로서 주어진 말씀이다. 그중에서도 인내는 현대 사회에서 점점 잊혀가는 덕목이지만, 믿음이란 바로 그 인내에서 피어나는 조용한 결단이라는 통찰을 준다. 기도하고, 착하게 살고, 악을 피하며 고난을 견디는 일은 말은 쉬워도 행동은 어렵기에, 이 네 가지를 지키는 삶은 무엇보다도 용기를 필요로 한다.
걷는 걸음, 말투, 시선까지 중심으로 사는 지혜
18절은 사람을 경멸하지 말고, 거만한 태도로 걷지 말라는 말씀을 통해 겸손의 태도를 강조한다. 이는 단지 외적인 예절이 아니라, 신앙의 중심에서 비롯된 내면의 표현이다.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도 교만하다면 그것은 중심 없는 신앙이며, 참된 신앙은 걷는 자세, 말투, 시선 하나까지 중심으로부터 나오는 단정함과 조화를 드러낸다. 다석 선생은 이를 두고 “겸손은 신 앞에서의 바른 자세”라고 말하며, 겉으로 드러나는 태도야말로 믿음의 깊이를 보여주는 거울임을 일깨운다.
겸손한 태도와 낮은 목소리 속에 깃드는 진리
19절은 걸음을 겸손히 하고 목소리를 낮추라는 권고를 통해, 신앙의 자세는 소란스러움이 아닌 내면의 깊이에서 비롯된 조용한 품위임을 강조한다. 특히 “당나귀 같은 소리”라는 강한 표현은 겉으로 드러내기 바쁜 허세와 교만이 얼마나 중심 없는 행위인지를 드러낸다. 진리의 소리는 크고 거친 외침이 아니라, 마음에 스며드는 조용한 울림이라는 점에서, 지혜 있는 자는 소리를 낮추고 태도를 낮추며 중심을 드러낸다.
하나님의 은혜를 인식하지 못하는 인간의 무지에 대한 경고
​​​​​​​20절은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인간을 위해 유용하게 하셨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은혜를 완성하셨음을 강조하며, 그 은혜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인간의 무지를 지적한다. 이어지는 말씀은 인도받지 못하고 성서도 없이 하나님에 대해 논쟁하는 이들을 경고하는데, 이는 중심 없는 말과 지식 없는 종교적 오만이 결국 신앙을 혼란케 한다는 가르침이다. 신앙이란 은혜를 인식하고 감사하는 마음에서 비롯되며, 교만한 논쟁이 아닌 중심 있는 깨달음에서 출발해야 함을 일러준다.
하나님이 곧 진리이며, 그 외의 숭배는 허위라는 선언
​​​​​​​30절은 “하나님께서 진리이시기 때문”이라는 선언을 통해, 루끄만 장 전체의 핵심을 요약한다.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숭배하는 모든 행위는 허위이며, 참된 신앙은 오직 그분을 향한 절대적 중심 위에 세워져야 함을 밝힌다. 진리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대해, 꾸란은 단호하게 “하나님이 진리시라”고 답한다. 이는 신앙의 방향, 삶의 기준, 존재의 의미 모두가 하나님이라는 진리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믿음의 본질을 드러낸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