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6 사건’으로 사형당한 고(故)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형사재판 재심이 45년 만에 시작됐다. 유족이 2020년 재심을 청구한 지 5년 만이기도 하다. 김 전 부장 측은 이날 재심 첫 공판에서 당시 군사재판은 절차적 정당성을 갖추지 못했으며, 내란 목적도 없었다는 점을 근거로 무죄를 주장했다.
서울고법 형사7부(재판장 이재권 부장판사)는 16일 오전 내란 목적 살인 등 혐의로 기소돼 1980년 5월 사형당한 김 전 부장의 재심 첫 공판기일을 열었다. 방청석에는 시민사회·종교계 원로를 포함한 일반 시민들도 참석해 재판을 지켜봤다.
청구인인 김 전 부장의 여동생 김정숙 씨는 공판에서 “오빠는 당시 유신체제를 종식시키기 위한 의도였다고 최후 진술에서 말했다”며 “당시의 사법 절차가 적법하게 이뤄졌는지 재검토해 달라”고 요청했다.
조영선 변호사는 “이 재판은 사법부의 치욕을 바로잡는 계기”라며 “사실상 6~7개월 만에 모든 형이 집행되는 유례없는 졸속 재판이었고 변호인의 접견권·조력권이 심각하게 침해됐다”고 주장했다.
김 전 부장 측 변호인단은 △1979년 10월 27일 선포된 비상계엄의 위헌·위법성 △김 전 부장이 민간인 신분이었음에도 군 수사기관이 수사한 점 △군법회의에 회부된 절차의 부당성 △내란 목적이 없었다는 점 △유죄를 입증할 직접적 증거가 존재하지 않는 점 등을 항소 이유로 제시했다.
변호인단은 먼저 1979년 10월 27일 선포된 비상계엄의 위헌·위법성을 항소 이유로 제시했다. 당시 계엄령은 박정희 대통령 피살 이후 설치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와 계엄사령부가 발령했으나, 헌법상 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정치적 목적에 따라 시행됐다고 주장했다.
또한 김 전 부장이 민간인 신분이었음에도 계엄사령부가 수사 및 기소 권한을 행사한 점, 그리고 군법회의에서 신속하게 이뤄진 재판이 피고인의 방어권을 실질적으로 침해한 점도 위법 사유로 들었다. 1심은 사건 발생 2개월 만인 1979년 12월 20일에 선고됐고, 사형 집행은 대법원 확정 판결 후 불과 3일 만에 이뤄졌다.
변호인단은 내란 목적이 존재했다는 검찰의 판단에도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당시 김 전 부장의 행위는 헌정질서 자체를 전복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유신독재 체제를 종식시키고 민주주의를 회복하려는 정치적 판단이었다는 주장이다. 변호인단은 “정권 교체 후 신군부가 정권 장악을 정당화하기 위해 김 전 부장에게 내란 혐의를 덧씌웠다”고 밝혔다.
증거능력에 대해서도 쟁점이 제기됐다. 김 전 부장 측은 원심에서 사용된 진술조서, 상피고인·참고인 신문조서, 공판조서 등 대부분의 자료가 위법하게 수집됐고, 자백 중심으로 조작된 구조를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향후 재심 과정에서 보안사령부가 비공식적으로 녹음한 당시 공판 테이프, 국선변호인이었던 안동일 변호사의 증언 등도 제출할 예정이다.
검찰은 “지금 단계에서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며 “재판이 더 진행된 뒤 사실관계와 증거가 정리되면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다음 공판기일을 9월 5일 오후로 정하고, 1979년 10·27 비상계엄 이후 12·12 군사반란까지 이어지는 당시 시국 자료와 북한과의 긴장 상황 등에 대한 자료 제출을 검찰과 변호인단 양측에 요청했다.
김 전 부장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과 차지철 경호실장을 살해한 혐의로 같은 해 11월 군법회의에 넘겨졌고, 이듬해 5월 24일 사형이 집행됐다. 1심은 불과 16일 만에 선고됐고, 대법원 확정 후 3일 만에 형이 집행됐다.
김 전 부장 유족은 고인의 행위가 독재 종식과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것이었으며, 졸속 재판으로 인한 인권 침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취지에서 2020년 5월 서울고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올해 2월 서울고법은 재심 개시를 결정했고, 검찰이 불복했으나 대법원은 지난 5월 이를 기각해 재심이 가능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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