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역: 황석희.’ 이 다섯 글자는 이제 자막을 넘어 하나의 신뢰가 되었다. 단지 언어를 옮기는 데 그치지 않고, 캐릭터의 숨결과 장면의 결을 고스란히 옮겨오는 그의 번역은 관객의 몰입을 완성시키는 마지막 퍼즐 조각이다.
하지만, 이 이름이 관객에게 익숙해지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는 늘 불안했고, 확신보다 질문이 많았다. 조용히 글을 옮기며 하루하루 주어진 작업을 해내다 보니, 경력이 한 줄, 두 줄 쌓였을 뿐이다. 지금은 업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번역가 중 한 명으로 꼽히지만, 그는 여전히 “어떻게 번역가가 되었냐”는 질문에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고 말한다.
번역보다 더 좋은 글쓰기는 없다
황석희 번역가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글쓰기보다 번역이 더 좋다”고 말한다. “글쓰기는 저를 통째로 환기할 수 있는 수단이지만, 번역은 더 익숙하고 편안하다. 두 작업 모두 흥미롭지만, 하나를 고르자면 번역을 더 좋아한다.” 번역은 그의 감각이 가장 잘 발휘되는 자리다.
대학교 3학년, 임용고시를 접고 그는 ‘옮김 황석희’라는 이름이 적힌 책 한 권을 갖고 싶어 번역을 시작했다. 처음 영화 자막에서 자신의 이름을 본 날, 그는 “비현실적이었다”고 회상한다. “내가 제대로 본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얼떨떨했다. 하루아침에 인생이 바뀌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날은 태어나서 가장 큰 성취감을 느낀 날이었다.”
“확신이 들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황석희는 그렇게 말했다. 그냥 하루하루 맡은 작업을 해냈고, 그 결과가 오늘이다. 번역가라는 직업은 다양한 장르와 주제를 다뤄야 하기에 역량 이상의 것을 요구받는 순간이 많다. 그는 때때로 감당할 수 없다고 느낀 작품 앞에서 “엉엉 울다시피 작업했다”고 솔직히 털어놓는다.
그런 그에게 가장 많이 들어오는 질문은 단연 “번역가가 어떻게 되었나요?”다. 그는 늘 같은 대답을 건넨다.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계획된 길은 아니었다. 단지 좋아서 시작했고, 계속하다 보니 일이 되었다.
일상에서, 문장 하나를 줍다
황석희 번역가는 말한다. “엘리베이터 공고문에서, 빵 봉투의 문구에서, 일상 속 작은 표현들이 번역에 큰 도움이 된다.” 일상의 언어를 예민하게 포착하는 그의 감각은 자막 한 줄 한 줄에 반영된다. 그가 생각하는 ‘완벽한 번역’이란, “귀로 한국어가 들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자막”이다. 외국어 자막을 읽으면서도, 장면과 캐릭터가 이질감 없이 와닿는 상태. 그것이 바로 그의 번역이 지향하는 지점이다.

“재능이 있는지는, 해보기 전엔 아무도 몰라요”
그는 자신이 왜 선택받는 번역가가 되었는지에 대해 “아마도 트렌디한 감각을 원하는 분들이 불러주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때로는 위트를, 때로는 절제를 요구하는 번역 현장 속에서 그는 균형을 지킨다. 체력적으로는 복싱을 통해 단련하고, 정신적으로는 ‘좋아하는 일’이라는 원동력으로 스스로를 지탱한다.
이야기를 끝맺으며 그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재능이 있는지 없어 고민하는 걸 보면 <캐롤>의 대사가 생각나요. ‘그건 남이 평가하는 거 아니에요?’ 사실, 내가 내 재능을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에요. 아무것도 시도해보지 않고서 ‘나는 안 돼’라고 말하는 건 너무 이르죠. 삶은 정해진 스킬트리를 따르는 게임이 아니에요. 확신이 없다고 해서 틀린 것도 아니고, 그게 오히려 일반적이에요.”
“다음 생에도 이 직업, 다시 고를 것 같아요”
‘직업 만족도는 몇 점인가’라는 질문에 그는 “점수를 매길 순 없지만, 다음 생에도 이 기억을 가진 채 직업을 다시 고른다면 번역가는 꼭 후보군에 넣을 것 같다”고 답했다.
번역은 그에게 단순한 일이 아니라, 자신이 가장 살아 있음을 느끼는 순간이다. 감정과 감정을 잇는 언어의 다리 위에서 그는 오늘도 균형을 잡는다. 그리고 여전히 묻는다. 이 감정을 어떻게 말로 옮길 수 있을까.
기록된 이름, 황석희. 그는 언어를 옮기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옮기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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