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재 칼럼] 6.3 대선, 불확실성의 그림자 걷어낼까

··박원재 논설고문
[박원재 논설고문]


정치에 관심 없는 사람들이 6월 3일을 손꼽아 기다린다. 21대 대통령이 누가 되는지 궁금해서가 아니다. 1년 넘게 민생의 숨통을 죄고 있는 불확실성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기 때문이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불확실성이 사라질까. 확신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지금보다는 나을 거라고 막연하게나마 기대를 거는 것이다.
계엄과 연쇄 탄핵, 진영간 사생결단식 대결을 거치면서 불확실성은 한국의 혼란상을 함축하는 단어가 됐다. 외신은 불확실성이 깊어지는(higher uncertainty) 정치적 격변이 ‘아시아 4위 경제대국’의 장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한다.
미국발(發) 관세 폭탄은 장기침체로 기력을 잃은 한국 경제가 맞닥뜨린 또 하나의 불확실성이다. 내수 부진에도 근근이 수출로 버텨왔는데 주요 20개국(G20) 중 유일하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변변한 정상간 소통조차 하지 못한 처지다.
불확실성은 돈과 돈이 오가는 경제에 치명적이다. 도박꾼이나 투기세력을 빼고 돈을 다루면서 불확실성을 반길 사람은 없다. 언제 어디서 어떤 변수가 튀어나올지 모르는데 몇 년 앞을 내다보고 공장을 짓는 데 큰돈을 쓸 용감한 기업인은 없다.
생존과 직결되는 식재료 구매와 외식비 지출이 동시에 줄어드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소비 절벽으로 내수 기반이 붕괴 직전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이달 초 “정치 불확실성이 우리한테 좋을 리가 없다”며 “국내 소비와 투자가 엄청나게 영향받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꼴찌인 올 1분기(1∼3월) 경제성장률 -0.25%는 불확실성의 결과물이다. 올해 연간 성장률이 0%대에 머물 것이라는 암울한 예측도 실은 대선이 끝나도 불확실성의 안개가 쉽사리 걷히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과 무관하지 않다.
성장률은 작년 2분기부터 네 분기 연속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하거나 0.1%에 그쳤다. 입법권력과 행정권력이 법안 강행통과와 거부권 행사, 줄탄핵과 버티기로 충돌하면서 정치적 불확실성이 최고조에 달한 시기와 정확하게 겹친다. 잠재성장률은 이미 1%대로 떨어졌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정치세력의 극한 대립으로 골병이 드는 건 민생이다. 역성장 또는 저성장의 고착화는 기업 투자 보류→일자리 감소→소비 위축→내수 침체로 이어지는 장기불황이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왔음을 경고하고 있다.
6·3 대통령 선거는 반(反)헌법적 계엄과 대통령 파면으로 치러진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정치 선거다. 그러나 유권자들의 관심은 먹고사는 문제의 해결, 민생 회복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통령이 해결해야 할 최대 과제로 절반가량의 응답자들이 경제활성화를 꼽고 있다.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12일 민주당 이재명 후보,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경제공약을 앞세운 10대 정책공약을 발표했다. 이 후보는 경제성장을 최우선으로 꼽으며 인공지능(AI) 등 신산업 집중육성을 내걸었고 김 후보는 1∼7호 공약을 경제 관련 항목으로 채웠다.
경제 분야가 공약집의 앞줄을 차지했지만 민생의 숨통을 틔워줄 처방은 보이지 않는다. 선거캠프의 화력은 공약의 실행계획 대신 상대후보 공격에 집중되고 총론과 각론은 엇박자를 낸다. 대결 무대가 선거전으로 바뀌었지만 탄핵 국면의 정치공방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후보가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으려면 본인이 자초한 신뢰의 위기부터 해결해야 한다. 공약만 보면 역대 민주당 계열 후보 중 가장 친기업 성격이지만 유권자들은 정책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혼란스러워한다. 성장의 주체는 기업이라면서도 노조 편향 지적을 받는 ‘노란봉투법’ 강행 의지를 굽히지 않고, 반도체산업 육성을 강조하면서도 주 52시간 근로 예외조항엔 반대한다.
많은 유권자들이 이 후보에게 선뜻 마음을 주지 않는 것은 지금 한 약속이 선거가 끝난 뒤에도 지켜질지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민이 유력 후보 공약의 진실성을 의심하고 집권 후 어떤 일이 생길지 불안해하는 상황에서 불확실성 문제가 해결되길 기대하는 건 무리다.
김 후보의 공약은 전임 윤석열 정부의 경제실책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통렬한 반성이 빠져있어 공허하다. 민간과 기업의 자율성을 보장한다는 ‘자유주도 성장’은 개념 자체가 모호할 뿐 아니라 과거 정부 정책과 어떤 차별점이 있는지도 알기 어렵다. 보수정당의 단골 레퍼토리인 감세와 규제완화가 이중삼중의 복합위기를 겪는 한국 경제에 해법이 될 수 있을까.
‘광장 세력’과 손잡아야 한다는 주장은 어떤 의미인지, 선거 후에도 유효한 것인지 솔직하게 답해야 한다. 이념 공세가 아니라 정치적 불확실성의 불씨를 없애기 위해 확인해야 하는 질문이다.
다음 정부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바로 임기를 시작한다. 집권 준비과정을 건너뛰는 만큼 선거기간이라도 공약에 대한 논의와 검증이 필요하지만 선거 열기에 휩쓸려 실종되는 분위기다. 정책의 완결성을 따지고 국민적 동의를 구하는 작업을 생략하면 선거가 끝난 뒤 정책을 둘러싼 소모적인 논쟁과 격렬한 대립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크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몇 차례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우리는 최고의 위기극복 대책은 시장이 자체 메커니즘으로 작동하게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줄어들고 예측 가능한 비즈니스 환경이 조성되면 기업은 투자계획을 다시 세우고 가계는 일상의 소비로 복귀할 것이다.
미래 비전은 AI 디지털 등 첨단산업 육성 구호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비전은 거창한 마스터플랜이 아니라 시야를 가로막는 불확실성의 그림자를 걷어내는 데서 시작한다. 두 후보가 립 서비스라도 좋으니 선거 결과에 승복하고 협치하겠다는 선언만 해도 불확실성은 확연히 줄어든다.
일본 경제의 ‘잃어버린 20년’이 남긴 교훈은 늪에 발을 담근 초기에 빠져나오는 골든타임을 놓치면 아무리 애를 써도 더 깊은 수렁에 빠진다는 것이다. 한국 경제의 잃어버린 시간이 1년을 지나 어느덧 2년째에 접어들고 있다. 21대 대통령 선거는 민생을 망가뜨리는 안팎의 불확실성을 해소할 실마리를 찾는 선거여야 한다.


박원재 필자 주요 이력
△핀란드 알토대 경영학석사 △동아일보 도쿄특파원, 논설위원, 경제부장 △동아닷컴 대표 △한국온라인신문협회 회장 △경성대 교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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