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수의 중동워치] 중동은 다시 화약고가 되는가?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입력 2024-04-26 06:00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이 7개월째로 들어선 가운데 이번에는 중동의 두 앙숙 이란과 이스라엘이 본토를 서로 직접 공격하는 확전 위기로 지구촌은 다시 한번 가슴을 졸였다. 4월 13일 이란이 330기의 드론과 미사일로 이스라엘 본토를 공격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갖추고 심지어 수백 기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스라엘을 상대로 한 직접 공격이라 세상의 우려는 극에 달했다. 재보복을 천명한 이스라엘도 4월 19일 새벽 이란 핵 시설이 있는 중부 도시 이스파한 일대에 미사일 공격을 감행했다.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이 고조되면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장기화에 더해 유가는 급등하고 우리나라에서도 원·달러 환율이 IMF 이후 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세계경제가 출렁거렸다.
 
왜 이란은 ‘이스라엘 직접 공격’이라는 초강수를 두었을까. 지금까지는 이스라엘에 대한 이란의 공격과 압박은 주로 주변 국가의 친이란 무장세력을 통한 대리 전쟁(proxy war) 형태를 취해왔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하마스, 레바논의 시아파 정파 헤즈볼라, 시리아의 시아파 민병대, 이라크의 친이란 무장세력들인 카타이브 헤즈볼라와 하라카트 알누자바, 예멘의 후티 반군 등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스라엘도 시도 때도 없이 시리아, 이라크, 레바논 등지에 있는 이란 관련 군사시설과 군 지휘관에 대한 폭격을 일삼아 왔다. 이스라엘은 자국 안보에 위협을 가하거나 공격 가능성이 있는 인물이나 시설을 선제 공격하는 특유의 안보관을 내세우면서 국제사회의 일관된 자제 요청을 거부해 왔다. 이번에는 도발의 강도를 높여 4월 1일 시리아 내 이란 영사관을 폭격하여 이란 혁명수비대 정예군인 쿠드스군의 해외 작전 사령관인 모하마드 레자 자헤디 장군을 포함한 13명의 영사관 관련 인사들이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했다. 1961년 빈 협약에 의하면 외국 공관은 치외법권 지역으로 해당 당사국의 주권 영역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보호받는 것이 국제관례였다. 그럼에도 외교공관 폭격에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이 일부 우려를 표명했지만 유엔 안보리 결의 등을 통한 비난이나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을 방기하면서 이란에 극도의 모멸감과 분노를 유발하게 되었다. 가뜩이나 미국의 40년 이상 경제 제재로 민생경제가 바닥을 치고, 히잡 문제로 여대생이 사망하는 사건으로 반정부 시위가 분출되고 있던 차에 이란 정부는 이스라엘의 공격 행위를 국민적 분노 결집의 기회로 삼았고, 시민 수백만 명이 연일 이스라엘 규탄과 보복의 목소리를 높였다.
 
보복의 정당성과 필요성에 직면한 이란은 이스라엘 주권지역에 대한 직접 공격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직접 공격은 중동 전역으로 확전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개입하고 터키와 주변 아랍국가들이 중재에 나서면서 숨 가쁜 물밑 접촉이 이어졌다. 다행히 이란이 이스라엘 본토에 대한 공격 정보를 사전에 미국에 통보하고 주변 아랍국가에도 이를 알려주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최악의 확전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그래서 이번 사태는 미국, 이란, 이스라엘 모두에 윈윈이라는 결과를 가져다 주었다.
 
우선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에게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었다. 7개월 가까운 가자지구 공격에서도 하마스 궤멸에 실패하고 3만5000명이 넘는 무고한 민간인 학살이 이어지고, 무엇보다 여성들과 어린이들이 70% 이상 죽어나가는 참극에서 그는 국내외적으로 사면초가의 정치적 위기에 처해 있었다. 애초 하마스의 테러행위를 비난하면서 이스라엘의 정당방위를 옹호하던 미국과 유럽조차도 이스라엘의 무차별 민간인 피해를 비난하고, 유엔 사무총장의 민간인 보호 촉구 성명,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의 민간인 보호와 휴전 권고 등이 잇따르는 고립무원의 상태가 조성된 것이었다. 여기다 네타냐후 총리에 대한 전례 없는 퇴진 시위와 국내 여론의 지지도 바닥을 치고 있었다. 그런데 이란이 이스라엘 본토를 공격하는 상황에서 국민들의 단합이 이루어지고, 미국과 유럽이 일방적으로 이스라엘 정권 보호자로 자처하면서 네타냐휴 정권이 위기를 벗어나는 큰 선물을 얻었다. 특히 이란의 공격에 대한 사전 정보를 미국 측에서 전달받고, 이란의 드론과 미사일 공격을 99% 요격함으로써(이스라엘 국방부 발표) 전 세계를 향해 이스라엘의 정보 방공 시스템의 우수성을 홍보하는 절호의 기회를 갖게 되었다. 나아가 이란에 대한 직접 보복 수위를 조절해서 확전을 피하고자 하는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간청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미국에서 기하급수적인 군사원조 패키지를 조기에 지원받는 성과도 얻었다. 가장 중요한 소득은 민간인 학살로 코너에 몰려 주춤하던 가자 남부 라파 지구에 대한 본격적인 군사작전을 본격화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예상대로 이스라엘은 이란에 대한 체면치레 공격을 함과 동시에 가자의 라파 지구 민간인 150만명 밀집 지역에 대한 대규모 군사공격을 감행하고 있다.
 
이란도 자국 영사관에 대한 미사일 공격의 진원지인 이스라엘 네바탐 공군기지를 원점 타격함으로써 명분을 쌓고 이스라엘 국민들에게 방공망을 뚫고 언제든지 본토를 공격할 수 있다는 극도의 공포감을 심어주는 데 성공했다. 동시에 패배감에 젖어 있던 이란 국민들의 자긍심을 세워주는 효과도 있었다. 그런데 이란 본토에 대한 이스라엘의 재보복 공격은 두 나라가 각기 다른 정보 제공를 통해 긴장을 완화하려는 전략을 구사했다. 이란은 자국의 핵심 핵 시설이 공격받을 수 있다는 심각한 안보 공백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공격은 형편없었다고 평가절하했다. 이스라엘은 고도의 군사기술을 선보이면서 이란 내 핵심 시설들을 가격할 수 있다는 강력한 신호를 보냈다. 이로써 양국은 서로에게 최소한의 명분과 체면을 세워줌으로써 위기를 벗어나는 묘수를 선택했다. 미국의 입장에서도 우크라이나 전쟁과 하마스 전쟁 장기화 등으로 대선 가도에 트럼프에게 밀리고 있는 싱황에서 이란-이스라엘 전면전까지 확산된다면 거의 필패의 길이었는네 이를 조정해 마무리하는 유연한 리더십을 선보였다.
 
우리나라가 문제다. 유가 변동성에 가장 민감할 수밖에 없고,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농산물 공급에 차질을 빚고 있는 터에 중동 전쟁 확산은 그 지역에 대한 우리 경제의 의존도로 볼 때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확전 위기에 세계 유가는 열흘 사이에 2배 가까이 폭등했고 세계 증시가 출렁거렸다. 절대적으로 중동 원유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에 대한 타격이 무엇보다 걱정이다. 확전 위기가 줄어들면서 유가와 원·달러 환율이 조금씩 안정을 찾기 시작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향후 팔레스타인 분쟁을 바라보는 독자적인 관점이나 이란이라는 새로운 시장에 주목해야 하는 특별한 배경을 강조하고 싶다. 우선 대한민국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수도 라말라에 대사관과 대사급 외교관을 상주시키고 있는 우방 국가다. 따라서 2006년 선거를 통해 집권한 가자지구 자치정부인 하마스를 테러조직으로 분류하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지난 18일 유엔 안보리에서 팔레스타인의 정회원국 가입 신청에 반대한 미국과 달리 찬성표를 던졌다. 적대적 궤멸 대상으로 간주하는 미국이나 이스라엘과는 달리 우리가 하마스나 팔레스타인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야 하는 배경이다. 한·미 동맹과 한·이스라엘 관계는 중요하지만 이스라엘은 한 나라이고 팔레스타인 문제를 공통의 아픔으로 인식하는 이슬람 국가는 57개국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분 아랍·이슬람 국가들이 우리의 긴요한 경제적 협력 파트너이기 때문이다.
 
이란만 해도 그렇다. 우선 규모의 경제다. 소위 GCC(걸프협력기구) 회원국인 산유국 6개 나라(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쿠웨이트, 카타르, 바레인, 오만) 자국 인구 모두를 다 합해도 이란 인구의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 이란은 세계 3위 규모의 원유 매장량에 세계 2위 규모의 천연가스 보유국이다. 중동 전체 원유의 24%, 세계 원유의 12%를 차지하는 자원 부국이다. 무엇보다 농산 자원이 자급자족될 뿐만 아니라 28세 미만 청년층 인구가 전체 인구의 60%를 넘는 가장 역동적인 생산성을 갖춘 나라이다. 1200년의 오래고 깊은 페르시아 문명을 일구었다는 역사적 배경도 당연히 고려해야 한다. 최근에는 7세기 말 사산조 페르시아 왕자의 신라 도래와 신라 공주와의 사랑을 다룬 '쿠쉬나메'라는 고대 페르시아 서사시가 발굴되어 고대 두 나라 간 교류가 다시 한번 재조망되고 있다. 이 책은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출판부에서 영문으로 출간되어 번역상을 받았고, 조만간 우리말로도 번역될 예정이다.
 
중동 평화는 갈 길이 멀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라는 두 국가 해법이 국제사회의 합의지만, 팔레스타인 영토에 잠식해 들어온 68만명의 유대인 정착 이주민 퇴거 문제, 예루살렘의 지위 문제, 팔레스타인 난민 귀환 문제 등 어느 것 하나 가시적인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이질적인 두 민족 사이에 갈등과 반목의 기억,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비극적 트라우마가 너무 강하게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선은 그 땅에서 2000년을 주인으로 살아온 가자지구 230만 주민들에게 물과 전기의 안정적 공급, 17년 동안 이스라엘의 허가증 없이는 이웃 서안지구의 부모나 연인들도 만날 수 없는 8m 고립장벽의 철거가 우선되어야 한다. 이것은 천부적 인권의 문제이고, 인류가 지켜야 하는 보편가치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에 마주 보고 미래를 설계하는 협상이란 단어가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지구촌 유일한 분단국가로 전쟁의 아픔을 누구보다 절절히 새기고 살아가는 대한민국이 글로벌 평화 담론에 가장 앞장서고, 팔레스타인 분쟁 해결에서도 보다 적극적인 중재 역할을 하는 날을 고대해 본다.




필자 주요 이력

▷한국외대 ▷터키 이스탄불대학 역사학 박사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한국튀르키예친선협회 사무총장 ▷중앙아시아연구원(UNESCO-IICAS) 학술위원(한국대표) ▷성공회대 석좌교수 ▷국내외 저서 90여 권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