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수의 중동워치] 하마스-이스라엘 전쟁 한달 …인간 생명의 존엄성은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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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입력 2023-11-0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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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수 교수
[이희수 교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무장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전쟁이 한 달째로 접어들고 있다. 전쟁이라기보다는 일방적인 폭격이고, 저항 능력을 갖추지 못한 민간인들이 속수무책으로 죽어나가는 대재앙의 연속이다. 이미 양측 사망자만 1만명을 넘어섰고 무엇보다 한 달 새 어린 생명 3400여 명이 쓰러져 갔다. 지난 1년간 지구촌에서 발생한 전쟁과 분쟁으로 사망한 아이들 총량을 넘어섰다니 이 보다 더 참혹할 수는 없다. 유엔이나 국제사회의 호소는 힘을 잃었고, 살고 싶다는 절규 앞에 우리는 무력하기만 하다. 아직도 들끓는 분노와 증오는 더 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필요로 하는 듯하다.
 
원인 제공자는 하마스라고 서방 언론들은 입을 모은다. 그들이 10월 7일 아침 조용히 안식일을 즐기던 이스라엘 시민들을 향해 천인공노할 살상과 어린이까지 납치하는 짓을 벌였으니 그러한 공분의 중심에 서는 것은 당연하다. 그 결과 무슨 ‘비례대응 원칙’이니 ‘보복의 권리’라는 용납하기 어려운 해괴한 이론으로 7000여 회에 달하는 공습으로 집을 폭격당하면서 무고한 시민들만 죽어 나간다. 물과 전기를 끊고, 병원 진료는 물론 긴급 구호물자와 생필품 전달을 차단하는 비열한 전쟁을 마주하면서 21세기가 한참 지난 문명세계 한복판에서 야만시대의 회귀를 보는 모두의 마음은 착잡하다.
 
원래 팔레스타인 땅은 공존을 넘어 상생의 땅이었다. 기원후 1세기 유대왕국이 로마에 멸망당한 후 많은 유대인들이 더러는 포로로, 더러는 노예로 유럽 각국으로 뿔뿔이 흩어져 소위 나라 없는 디아스포라(유랑) 수렁 속에 헤매일 때 팔레스타인 땅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이스라엘이 건국되기 전까지 아랍인 약 92%와 유대인 8%가량이 함께 살았다. 척박한 땅에서 갈릴리 호수와 요르단 강이라는 지극히 제한된 생태계를 공유하면서 서로 도우며 함께 살았다. 민족도 다르고 종교도 다른 이질적인 두 집단이 왜 크고 작은 갈등이나 반목이 없었을까마는 중동사 공부를 하다 보면 지난 1900년 가까이 전쟁이나 소모적 투쟁 없이 서로 다른 공동체가 이렇게 오순도순 평화롭게 살아온 유례를 인류사에서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1948년 미국 주도로 이스라엘이 유엔 승인을 거쳐 그 땅에 건국되었다. 일부 땅은 유럽에서 이주해 온 유대인들이 돈을 주고 구입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그곳에 살던 팔레스타인 아랍인 90만명은 영문도 이유도 모른 채 그들의 오랜 보금자리에서 쫓겨났다. 원래 주인에게도 최소한의 대안적 삶의 터전을 마련해 주는 것이 원초적인 도리이거늘 500만명 넘는 사람들이 2000년간 살아왔던 땅과 집을 뺏기고 난민이 되었다. 억울한 그들은 이웃 아랍 형제들을 내세워 이스라엘과 네 차례 큰 전쟁을 치렀다. 형편없는 군사력으로 번번이 처참한 패배만을 맛보았지만 모든 것을 빼앗긴 그들의 투쟁과 무력 저항은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저항을 미국과 이스라엘, 그리고 유럽 일부 국가는 테러로 규정한다. 그러나 5000년 내내 압제와 약탈 속에 시달려오면서 죽을 힘을 다해 투쟁과 저항의 역사로 살아온 우리는 더욱 신중한 태도로 두 나라의 충돌을 바라보아야 한다.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급습하기 직전까지 금년에만 이스라엘 군경에 의해 사망한 팔레스타인 주민 숫자는 636명이라고 유엔 단체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보건부가 밝히고 있다. 유엔난민기구(UNRWA) 통계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23년 이번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 15년간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사망한 팔레스타인 사망자는 6407명, 부상자는 15만2560명에 달한다. 같은 기간 팔레스타인의 공격으로 숨진 이스라엘 사람은 308명, 부상자는 6307명이다. 20배가 넘는 숫자다. 이스라엘 측 논리대로 비례대응 원칙으로 따진다면 앞으로 하마스가 20년은 더 공격할 권리를 가진다. 하마스가 원인 제공자라는 주장은 저항의 역사나 사방이 분리 장벽으로 둘러싸여 물과 전기, 생필품 공급이 이스라엘에 의해 차단당하고 있는 17년 감옥 상태인 가자지구 실상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이스라엘과 서구 일부 국가의 일방 논리에 불과하다.

어떠한 경우에도 무고한 민간인을 겨냥한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 명백한 테러 행위다. 그런 점에서 팔레스타인 인, 특히 가자지구 주민들이 처한 극한 고통의 배경은 이해하더라도 하마스의 이스라엘 민간인을 향한 살상이나 인질 납치는 충격이고 묵과할 수 없는 범죄행위다. 그렇다고 똑같은 방식의 보복 형태로 민간인을 죽음으로 내모는 공습이나 생존권 박탈도 용납될 수 없다.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다. 공권력을 동원한다고 해서 살상행위가 정당성을 갖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국가테러다.

영국이 획책한 모순된 3중 비밀조약
 
사실 팔레스타인 문제는 영국이 제국주의 시기에 만들어 놓은 잘못된 씨앗의 비극적 결실이다. 끊임없는 박해에 시달리던 유대인 대표들은 1897년 스위스 바젤에서 제1회 세계유대인대회를 개최하고 유대국가 창설에 합의한다. 그 기회가 1차 세계대전 때 찾아온다. 영국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오스만 제국 식민 치하의 아랍인들을 영국 편으로 끌어들이기로 하고 그 대가로 전쟁 이후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아랍 지역에 그들의 독립을 보장해 주었다. 1915년 12월 ‘후세인·맥마흔 서한’으로 알려진 비밀 협정이 그것이다. 동시에 미국의 1차 세계대전 참전 유도와 전쟁비용 마련, 독일 내부 혼란을 조장하기 위해 유대인 지원을 필요로 하였다. 이에 영국 외상 밸푸어는 1917년 영국 은행 재벌 로스차일드와 비밀리에 회동해 소위 ‘밸푸어 선언’이라는 비밀조약을 통해 전비 조달과 전쟁 참여 대가로 전후 팔레스타인에 유대민족 국가 창설을 약속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영국과 프랑스는 전쟁이 한참 진행 중이던 1916년 5월 또 다른 비밀조약을 체결했다. 영국 대표 사이크스와 프랑스 대표 피코 사이에 비밀리에 체결된 ‘사이크스·피코 협정’을 통해 프랑스는 시리아 해안 지대와 그 북부, 영국은 팔레스타인과 바그다드를 점령하기로 하였다. 다시 말해 팔레스타인이라는 한 지역에 아랍인에게는 아랍 국가 독립을, 유대인에게는 유대민족 국가 창설을 약속해 주고, 실상은 영국과 프랑스가 이미 그곳을 점령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이처럼 상호 모순된 3중 비밀조약과 강대국의 비도덕적 정치 음모가 오늘날 팔레스타인 분쟁의 불씨를 지핀 근원적인 배경이다.
 
팔레스타인을 둘러싼 중동전쟁은 삶의 공간 확보와 생존권 보장이라는 원초적 권리 투쟁이다. 그럼에도 국제질서의 최강자였던 미국은 오히려 이스라엘의 국제변호사 역할을 자임하면서 일방적으로 이스라엘 측을 두둔해 왔다. 이스라엘이 유엔 안보리 결의안이나 국제법을 위반하고 아랍을 겨냥한 핵탄두를 수백 기나 갖고 있음에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은커녕 핵확산금지조약(NPT)에도 가입시키지 않는 예외를 인정해 주었다. 그러면서도 이슬람권에서는 그 누구도 산업용 핵 프로그램조차 갖지 못하게 하는 미국의 극단적 이중 잣대가 이슬람 세계의 좌절과 분노를 확산시켜왔다.
 
그 과정에서 1967년 3차 중동전쟁을 승리로 이끈 이스라엘은 유엔에서 승인한 자국 영토를 넘어 이웃 아랍 주권국가들 영토까지 점령했다. 이집트 북부 시나이 반도, 동예루살렘이 있는 웨스트 뱅크, 지중해 해변 가자지구, 시리아 접경 쪽 옥토 베카계곡과 골란 고원 등이었다. 승자의 특권일 수 있다. 그러나 유엔은 미국도 찬성한 안보리 만장일치 결의안 242조를 통해 이스라엘에 대해 점령지 영토 반환과 군대 철수를 명했다. 지켜지지 않는 약속은 1973년 4차 중동전쟁 이후에도 유엔 안보리 결의안 338조로 다시 요청했다. 지금까지 적어도 13차례 이상 안보리 결의안을 통해 이스라엘에 대해 영토 반환과 원상 복구 이행을 촉구했다. 그들은 국제사회의 일관된 원칙과 국제법 준수 요구를 비웃었다. 더 나아가 돌려주어야 할 점령지에 불법으로 정착촌을 200개 이상 건설하고 유대인 68만명가량을 이주시켰다. 반환은커녕 실효적 지배를 통해 자국 영토화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하면서 이번 하마스 공격의 주요 빌미가 되었다.
 
1973년 내가 중동학에 처음 관심을 가질 때부터 지금까지 50년간 중동은 전쟁 중이다. 지금까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두 당사자가 테이블에 마주 앉아 화해의 악수만 하면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그럼에도 양 극단 진영은 서로를 ‘짐승’이나 ‘나치’로 부르면서 분노만 키우고 있다. 그래도 무언가 해법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나는 대학 신입생 첫 수업 때 당부를 항상 떠올린다. “여러분이 앞으로 글로벌 리더로서 세상을 이끌어 가면서 국제 정세를 바라보고 해법의 문제에 봉착할 때 굳게 다짐할 원칙 하나는 모든 생명의 가치와 무게는 동등하다는 것입니다. 경제력 수준이나 출신, 피부나 국가에 따라 결코 차등을 두어서는 안 되는 생명의 존엄성 그 자체가 절대적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더 많이 가진 자가 더 많이 나누고 좀 더 양보할 때 해결의 실마리가 찾아온다. 자신이 2000년간 살아왔던 땅과 삶을 빼앗기고 저항과 투쟁의 가혹한 대가로 물과 전기, 생필품 공급이 끊긴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무엇을 더 내놓으라 할 것인가. 홀로코스트의 최대 피해자로 모든 인류가 원죄의식을 갖고 살아가게 만든 유대인들이 이제 강국이 되어 또 다른 가해자로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억압하는 것이 오늘날 인류사회가 목도하는 모순과 비극의 본질이다. 이것은 단순한 동정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권 보장을 통해 두 나라의 공존과 상생을 약속했던 유엔 안보리 만장일치 결의안과 국제법, 양국이 서명한 오슬로 평화협정, 나아가 국제사회의 규범 속에서 이제 키를 쥔 이스라엘이 답을 해야 하는 시간이다. 



필자 주요 이력

▷한국외대 ▷터키 이스탄불대학 역사학 박사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한국튀르키예친선협회 사무총장 ▷중앙아시아연구원(UNESCO-IICAS) 학술위원(한국대표) ▷성공회대 석좌교수 ▷국내외 저서 90여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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