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 정치9단] 文 총선 유세 '파격 행보'가 선거법 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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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동현 기자
입력 2024-04-0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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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직선거법·정당법상 전직 대통령도 유세 가능

  • '선거 중립 의무' 위반 지적도…사회적 고민 필요

문재인 전 대통령이 4일 오후 경남 창원시 성산구 내동공원에서 허성무 더불어민주당 창원성산 후보와 산책 후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전 대통령(왼쪽)이 4일 오후 경남 창원시 성산구 내동공원에서 허성무 더불어민주당 창원성산 후보와 산책 후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300개 '금배지'의 향방이 결정될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이제 하루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초반 공천부터 막판 유세 현장까지 '역대급' 잡음으로 혼탁해진 총선 정국에서 유독 눈에 띈 포인트가 있습니다. 바로 '전현직 대통령의 선거 유세' 논란입니다. 

정치인이면서 공무원인 대통령의 정치적 행위를 어디까지 용인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은 선거철마다 불거진 해묵은 논제입니다. 정상적인 국정운영과 노골적인 선거운동의 구분이 어렵기 때문이죠.

윤석열 대통령이 올해 초부터 전국을 돌며 실시한 '민생토론회'와 각종 생중계 국무회의를 두고도 여야 의견은 분분합니다. 책임정치 차원에서 미국처럼 대통령의 정치활동을 허용해야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독재의 악몽'이 있는 한국에선 '최고 권력자' 현직 대통령의 정치개입을 매우 경계하고 있습니다. 

실제 총선에 개입하고 싶었던 대통령들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국가권력의 입김은 선거 때마다 '자당 편파' 논란을 불러왔죠. 심지어는 대통령이 '선거 중립 의무'를 어길 시 탄핵까지 이어진 사례도 있었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재임 중이던 지난 1995년 4월 26일 기자간담회에서 15대 총선에서 민주자유당(민자당, 현 국민의힘) 총재 자격으로 지원유세를 하겠다고 천명했습니다. 당시에는 대통령이 여당 총재를 겸하는 시스템이 보편적이었기 때문에 김 전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려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당시 민주당은 대통령의 선거유세가 선거법에 어긋나는 것이라며 즉각 반대 입장을 내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중선관위)에 유권해석을 의뢰했습니다. 중선관위는 "현행 선거법 제60조는 국회의원과 지방의원 이외의 정무직 공무원의 선거운동을 금지하고 있다"며 위법성을 인정했죠.

다음날 박범진 당시 민자당 대변인도 "현행법상으로 대통령의 지원유세는 금지돼 있다"고 시인하면서 김 전 대통령의 유세는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16대 총선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시민단체 낙선운동 지원' 문제로 공정성 시비에 휘말리기도 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예외는 아닙니다. 노 전 대통령은 17대 총선을 두 달 남짓 앞둔 2004년 2월 특별회견에서 "국민들이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줄 것으로 기대한다"며 "대통령이 뭘 잘해서 우리당이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하고 싶다"는 '폭탄 발언'을 합니다.

이에 대해 중선관위는 선거중립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는 유권해석을 내놓았고, 그로부터 얼마 안 가 새천년민주당과 한나라당이 협력해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가 의결됐습니다. 다만 결과적으로 무리한 탄핵에 대한 국민들의 반발이 컸고, '탄핵역풍'으로 열린우리당이 17대 총선에서 152석 과반 의석 확보에 성공합니다. 노 전 대통령의 탄핵 역시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됐습니다.    

대통령직 퇴임 이후 잠행을 이어가던 '책방주인' 문재인 전 대통령은 이번 총선 막바지에 존재감을 드러냈습니다. 여야 격전지로 꼽히는 '낙동강 벨트'에서 직접 지역구 민심을 톺아보며 더불어민주당 후보들을 지원한 것인데요. 국민의힘에서는 전직 대통령이 노골적으로 유세에 나선 것은 사례가 없다며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문 전 대통령은 공식 선거운동 시작일인 지난달 28일 이후 낙동강 전선을 광범위하게 훑으며 현역도 숨이 가쁠 만한 일정을 소화했습니다. 지난 1일에는 배재정 부산 사상 후보, 이재영 경남 양산 후보를, 2일에는 김태선 울산 동구 후보, 오상택 울산 중구 후보, 전은수 울산 남구 후보를 만났습니다. 3일에는 박인영 부산 금정 후보를 찾았고, 4일에도 허성무 창원 성산 후보, 김지수 창원 의창 후보를 지원했습니다. 언급된 후보는 모두 민주당 소속으로, 문 전 대통령과 친분이 있다고도 알려졌습니다.

오랜만에 파란색 점퍼를 장착한 문 전 대통령의 지역 출격도 화제가 됐지만, 그의 발언 수위에도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됐습니다. 특히 후임 정부인 윤석열 정부를 향한 날 선 발언이 집중 조명을 받았습니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 1일 유세에서 "칠십 평생 이렇게 못하는 정부는 처음 본다"며 '정권 심판론'에 힘을 실었습니다. 총선 사전투표 첫날이었던 5일에도 "투표해야 심판할 수 있고 투표해야 바뀐다"면서 "민주당·조국혁신당·새로운미래 등 야당 정당들이 선거에서 많이 승리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응원의 마음을 보태고 있다"고 특정 정당을 노골적으로 지지했습니다. 

문 전 대통령의 이 같은 '파격 행보'에 여권도 마음이 급해지는 모양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정권재창출에는 실패했지만, 임기 말에도 지지율 40%대를 유지했고, 재임 5년 평균 지지율은 51.9%(리얼미터 기준)에 달했습니다. 이는 '30%대 박스권' 지지율에 갇혀 있는 윤석열 정부와 차별화되는 대목입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3일 충북 제천 유세 도중 "역대 대통령 중 퇴임하자마자 총선 판에 파란 옷 입고 나와서 선거운동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느냐"며 문 전 대통령의 행보를 비판했습니다. 국민의힘 울산시당 선대위도 지난 2일 논평을 통해 "퇴임 후 '잊히고 싶다'던 문 전 대통령이 어제 부산 방문에 이어 오늘은 울산을 방문해 민주당 후보들을 지원했다"며 "전직 대통령이 선거운동을 노골적으로 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사상 초유의 일이다. 대단히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렇지만 문 전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입니다. 다른 대통령들이 현직일 때 발생한 사례들과는 다소 차이를 두고 봐야 합니다. 현행 공직선거법과 정당법에서는 전직 대통령의 유세를 제한하는 별도 규정도 없기에 '자연인' 문 전 대통령의 지원유세는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브라질의 경우 2003년부터 2010년까지 재선 임기를 마친 룰라 대통령이 2022년 대선에 출마해 지난해 브라질 역사상 첫 3선 대통령이 되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서도 현직 대통령은 물론 전직 대통령의 정치적 활동을 어디까지 용인할 수 있을지 사회적 고민이 필요한 시점인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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