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노 칼럼] 불붙은 '반도체 쩐쟁' …보조금 정책 신중해야 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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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노 동국대 국제통상학과 명예교수
입력 2024-03-28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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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노 동국대 국제통상학과 명예교수
[이학노 동국대 국제통상학과 명예교수]



세계 슈퍼 파워였던 미국은 넘버 2인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 입체적인 작전을 펴나가고 있다. 가장 주목받는 반도체 전략은 글로벌 대중 협공과 미국 내 반도체 기지 건설로 요약된다. 글로벌 대중 협공 전략은 CHIP4를 중심으로 반도체 동맹을 공고히 하여 중국을 국제 반도체 공급망 서클에서 고립시키고자 한다. 미국 내 반도체 기지 건설은 미국의 경제 활성화까지 도모하는 전략으로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리고 있다. 이를 위해서 미국 기업은 물론 외국의 투자 기업들에도 시설자금 보조와 대출금 지원이 이루어진다. 미국이 주는 순수한 반도체 보조금만도 280억 달러 규모며 이 중 인텔(85억 달러), 삼성전자(60억 달러) 대만 TSMC(50억 달러) 등으로 전해지고 있다.
 
CHIP4 동맹국 등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반도체 부활을 선언한 일본은 TSMC의 구마모토 제1공장(지난 2월 말 준공) 건설비 1조엔 중 절반 정도를 지원하고 제2공장(2027년 가동 예정)에도 7000억 엔 정도를 지원한다고 한다. 라이칭더 총통 당선인이 반도체를 국가의 명운을 좌우할 핵심 산업이라고 규정한 대만 정부는 29억 달러의 신공장 건설을 계획 중인 TSMC 지원을 위하여 반도체 연구비의 25%까지 법인세를 내지 않도록 하는 파격적인 대만판 반도체지원법을 준비하고 있다. 동맹의 외곽 축인 유럽도 최대 500억 유로에 이르는 투자비의 20~40%를 정부가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반격에 나선 중국도 이에 질세라 270억 달러 규모의 반도체 펀드를 조성 중이다.
 
한국도 지난 1월 용인·평택 지역에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를 조성한다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삼성전자(500조원)와 SK하이닉스(122조원)가 16개의 신규 팹을 건설하고 정부는 전력·용수 등 인프라 공급과 연관 산업 생태계 조성을 지원하는 것이 골자다. 작년 초에는 반도체 투자 지원을 위해서 투자세액공제율을 15~25%까지 올렸고 금년에 편성한 1조3000억원의 반도체 예산에 더해서 향후 3년간 24조원의 정책금융을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이 정도 지원으로는 부족하다는 목소리들이 높다. 금년에 종료되는 투자세액공제 기한을 연장하는 것은 물론 우리도 남들처럼 국내 반도체 투자에 대해서 보조금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무역보조금을 규율하는 WTO는 기능이 정지된 상황이니 우리도 적극적인 보조금 정책을 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나라사랑 발언으로 이해가 되는 한편 국내 반도체 보조금 지급이 문제는 없는지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첫째, 반도체 보조금 지급은 정부에 의한 특정 업종 지원의 문제 소지가 있다. 이차전지, 바이오, 디스플레이 등 다른 중요한 첨단 전략 산업들이 있는데 반도체만 지원하면 업종 간 형평성 시비가 일어나고 지역 간 불균형 문제로 번질 우려도 있다. 그렇다고 보조금을 다른 업종까지 확대하면 엄청난 재정 부담도 감당하기 어렵고 대대적 기업 지원에 따른 민생경제의 불만이 커질 우려가 있다.
 
둘째, 보조금의 규제 수반 문제이다. 미국의 보조금은 그냥 주는 것이 아니다. 미국의 보조금은 낮은 생산성 등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 20~30% 높은 미국 내 운영 코스트를 보전해 주는 의미가 있고 게다가 각종 규제를 포함하고 있다. 군사용 반도체 의무 공급, 보조금의 75%까지 환수, 중국과 반도체산업 협력 축소 등이 그것이다. 더 나아가, 계속된 투자를 이행하고, 미국 노동자를 채용하고, 건설자재 등 바이 아메리칸 의무를 준수하여야 한다. 일본이 TSMC에 주는 보조금의 조건은 베일에 가려 있다. 우리가 추진한다면 보조금을 주면서 각종 조건과 규제를 하여야 하는데 이것들을 설계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
 
셋째, 재정 형편도 고려해야 한다. 우리가 국내 보조금을 준다면 어느 정도 줄 수 있을까. 2024년 미국 GDP는 28조 달러로 우리의 1조8000억 달러 대비 15배 이상에 달하고 있어 보조금을 미국 수준과 어상반하게 맞추는 것은 쉽지 않다. 세금을 걷지 않는 것과 보조금 지원은 동전의 양면이다. 미국의 25% 투자세액공제를 예외로 치면 우리의 15~25% 수준은 대만(5%) 등 경쟁국과 비교할 때 높은 수준이다. 국내 투자에 보조금을 준다면 미국과 일본처럼 국내에 들어올 외국 기업들도 일정 수준 지원해야 할 것이다. 반도체만 지원할 수는 없고 여러 분야에 투자할 외국 기업에까지 보조금을 줘야 한다면 외국인투자 현금지원(cash grant) 예산 2000억원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반도체에 보조금을 주는 것은 특혜성 논란의 소지가 있고 자금 마련도 쉽지 않다. 보조금보다는 현실적인 지원 방안을 찾는 것이 합리적이다. 우선 금년 말에 종료되는 투자세액공제를 연장하여야 한다. 그리고 용인·평택 등지에 마더팩토리 및 클러스터 조성, 그리고 공장 신증설에 따른 인허가, 전기와 물 문제 등 여러 애로사항 해결에 힘을 쏟아야 한다. 인력 공급도 제대로 하여야 한다. 의대 정원 확대 때문에 난리인데 반도체 대학 정원은 늘려줘도 미달되는 실정이다. 얼마 전 미국 상공회의소(암참)가 발표한 '한국의 글로벌 기업 유치 전략 보고서'를 보아도 돈보다는 규제를 줄여 달라는 얘기가 주류를 이룬다. 지금은 돈이 많이 드는 보조금 지급을 말하기보다 더 중요한 일을 해야 할 때다.



이학노 필진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텍사스대 오스틴캠퍼스 경제학 박사 △통상교섭민간자문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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