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혜숙 칼럼] 젊은이들이 가난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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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혜숙 교수
입력 2024-02-18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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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혜숙 교수
[임혜숙 교수]



최근 신혼가구의 평균소득이 가파른 증가세라는 흥미로운 기사를 읽었다. 2015년엔 결혼 1년 차 신혼부부 중 연 소득 7000만원 이상인 가구 비중이 23.2%에 불과했는데, 2022년에는 41.8%로 증가하여 7년 새 2배 가까이 급증했다는 것이다. 연 소득 1억원 이상으로 좁히면 7.8%에서 18.8%로 2.4배 늘었다고 한다. 혼인 건수는 감소하는데 신혼부부 중 고소득자 비중이 빠르게 증가한다는 의미는 충분한 소득이 있어야 결혼을 선택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바꾸어 말하면 소득이 충분치 않은 사람들은 결혼을 미룬다는 의미다.
 
‘미국이 만든 가난’을 저술한 프린스턴대학 사회학 교수인 매슈 데즈먼드는 ‘가난이란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병폐가 단단히 엉킨 매듭’이라고 말한다. 국민총생산(GDP), 수입과 수출, 자원, 기술 혁신, 금융, 군사력 등 모든 부문에서 전 세계 최고인 미국과 같은 부자 나라에 어째서 그렇게 많은 가난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답이 필요해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가난은 노동조합의 약화, 저임금, 외주화, 디지털 기술 발전에 따른 새로운 형태의 노동 착취 등 가난이 온존하도록 의도된 설계와 사회적 시스템에 의한 것이라고 역설한다. 저자가 미국의 구석구석을 들여다보며 숨 가쁘게 제시하는 가난의 요소와 원인마다 나도 모르게 미국과 우리나라 상황을 끊임없이 비교하였다.
 
노동조합이 위축된 1970년 이후 미국 기업들은 20세기 중반에 상식으로 여겨졌던 안정된 고용, 승진과 임금 인상의 기회, 일정 혜택이 제공되는 괜찮은 보수 등과 같은 관행을 허물어뜨려 나갔다고 한다. 미국에는 최저임금 인상률에 대한 정기적인 협상 테이블이 없을 뿐 아니라 최저임금 관련 법을 적용받지 않는 많은 노동자가 있다. 일례로 식당 서빙 노동자들은 최저임금 적용을 받지 않아 전적으로 손님들 팁에 의존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구인난에 따른 팁 인플레이션 현상으로 인하여 푸드 코트나 햄버거, 커피점에서도 팁을 요구할 뿐 아니라 음식값에 따른 팁 비율이 크게 상승하여 서민들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 대중교통은 부자들은 이용하지 않는 가난한 사람들 전용 인프라가 되어 버렸다. 대중교통이 가난의 표식이 되면서 정치인들의 관심 바깥으로 밀려났고, 이에 따라 공적 투자가 감소하여 매우 낙후되었다. 낙후된 공공 인프라는 이를 이용하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부추기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다. 대중교통을 애용하는 한 사람으로서 우리나라의 안전하고 깨끗한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 정말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조금 더 바란다면 역무원의 근무 여건, 지하철의 혼잡도, 지하철 역사와 객차 내 여름과 겨울의 냉난방 등을 개선하기 위해 좀 더 예산이 투입되면 좋겠다. 대중교통이 더 쾌적하고 편안해져서 자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유인할 수 있다면 대도시 교통난 해소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에 더하여 수도권 외곽이나 소도시, 농어촌 지역의 대중교통 인프라 개선을 위한 노력도 지속되어야 한다.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편리한 대중교통을 제공하는 것은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한 필수 요건이다.
 
데즈먼드 교수는 사람들의 빈곤한 상황을 이용해 폭리를 취하고 착취에 가까운 임대업으로 부를 쌓는 빈곤 비즈니스에 또한 주목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나라는 서민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시작한 전세금 대출 정책은 전세 보증금 폭등으로 이어졌고, 무자본 갭투자 방식의 오피스텔 깡통전세 등으로 많은 젊은 부부나 청년들이 피해를 보았다. 한두 사람의 나쁜 임대인이 그런 일을 벌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주택은 사기만 하면 오를 것이라는 분위기를 만든 정부 정책이 주요 원인을 제공했다. 잘못된 주거 정책은 젊은 세대의 주거 안정성을 훼손하여 또 다른 가난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라 생겨난 새로운 형태의 노동인 플랫폼 기반의 노동은 디지털 경제가 작동하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다. 플랫폼 종사자들은 플랫폼 기업의 약관이나 계약조건에 따라 일하고, 사람들은 이들을 통하여 저렴한 가격에 편리하게 물품과 음식을 배달받거나 대리운전을 맡긴다. 플랫폼이 지닌 알고리즘 기술은 고용계약 없이도 실질적인 업무 지시와 통제를 가능하게 만들어 그동안 기업 내 고용으로 이루어지던 많은 업무가 외주화되거나 시장에서 구매하는 형태로 변할 것이다. 그러므로 플랫폼 종사자 수는 앞으로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플랫폼 경제의 문제는 플랫폼 종사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제도가 제대로 정비되어 있지 않다는 데 있다. 우리나라의 노동법 체계나 사회보장제도는 모든 노동자를 임금노동자 혹은 개인사업자로 분류하는데, 플랫폼 종사자는 기업에 고용된 형태가 아니어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서 인정받지 못한다. 4대 보험이 제공되지 않고 최저임금 적용을 받지 못할 뿐 아니라 소득 변동성이 커서 생활이 불안정하고, 해고가 자유로워 근로 안정성이 매우 떨어진다. 겉으로는 일감을 구하기 쉽고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일하는 자율성이 주어지는 듯 보이지만 리뷰시스템 및 알고리즘에 의한 업무 통제, 업무 처리 속도에 대한 압박, 종사자 간 경쟁, 콜 대기 등으로 인한 긴장이나 스트레스가 심각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플랫폼 경제의 근간인 플랫폼 종사자들을 보호하고 플랫폼 경제의 확산으로 발생한 이익을 플랫폼 종사자들과 공유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이 시급하다. 예를 들어 플랫폼 기업은 플랫폼 종사자를 활용한 시간이나 매출에 비례하여 4대 보험료를 적립하고, 일정 시간 이상을 일한 종사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하는 방식을 생각해 볼 수 있다. 2021년 ‘플랫폼 종사자 보호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되는 등 플랫폼 종사자를 보호하는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좀 더 속도를 내어야 한다.
 
이번 정부는 세금 감면을 주요 정책 기조로 한다. 종부세 완화부터 부동산 상속·증여·양도세 감면을 포함하는 ‘부자감세’에 더하여 주식양도세 완화, 최근에는 2025년 시행을 앞둔 금융투자소득세 폐지까지 추진하고 있다. 감세는 빈부격차를 확대하는 역할을 하는데, 민간의 소득을 증가시켜 민간을 풍요롭게 만드는 반면 국가 재정 상황을 악화시켜 공공재와 공공 인프라를 누추하게 만든다. 공공재와 공공 인프라가 낙후되면 부자들은 공공 인프라를 이용하는 대신 비싼 비용을 치를 능력이 되는 사람들만이 이용할 수 있는 별도의 인프라를 만든다. 일례로 공공의 영역에서 가장 공정하게 작동해야 할 교육 시스템이 우리나라에서는 여러 종류의 사교육에 큰 비용을 치르게 하는 방식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불평등하고 불공정하게 작용하고 있다.
 
‘가난에 사로잡혀 있을 때 사람들은 삶의 다른 부분에 마음을 쓸 여력이 없다’고 데즈먼드 교수는 말한다. 가난은 사람들에게서 안정감과 편안함뿐만 아니라 자신감과 지적 능력까지 앗아간다는 것이다. 개천에서 나는 용이 사라지고 있는 이 시대에 얼마나 많은 가난하게 자란 아이들의 총명함과 재능이 발휘되지 못하고 허비되고 있는지 주목해야 한다. 좋은 환경에서 자랐더라면 TSMC를 설립하여 오늘의 반도체 강국 대만을 만든 모리스 창이나 인공지능 시대의 절대 강자 엔비디아를 설립한 젠슨 황, 수학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즈상 수상자인 허준이가 될 수도 있었던 아이들이 가난으로 인해 어떤 위축된 삶을 살게 되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유명한 기업인이나 수학자가 아니더라도 평범한 시민이 되어 이 사회에 기여하고, 가장이 되고 부모가 될 수 있었던 얼마나 많은 젊은 사람들이 가난이라는 굴레 때문에 가정을 이루기를 포기하는지를 주목해야 한다. 혼인 이후에 대부분의 출산이 이루어지는 우리나라 상황을 고려하면 혼인 감소는 저출산의 근본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가난이 우리 아이들과 우리 청년들의 상상력을 훼손하거나 의욕을 꺾어 이들의 미래를 좌우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공정한 교육 기회, 안정된 주거, 4대 보험이 제공되는 안정된 일자리 등 이들에게서 적극적으로 가난을 분리해 내는 노력이 정부, 정치인, 기업인과 사회지도층이 해야 할 일이다.
 


필자 주요 이력 

△이화여대 전자전기공학전공 교수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 전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 △ 제50대 대한전자공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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