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낭기의 관점]한동훈의 불체포 특권 포기 선언, 이대로 가면 공염불 되고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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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낭기 논설고문/한라대 특임교수
입력 2024-01-17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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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7일 오전 서울 마포구 케이터틀에서 열린 서울시당 신년인사회에서 신년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7일 오전 서울 마포구 케이터틀에서 열린 서울시당 신년인사회에서 신년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포기를 서약해야 4월 국회의원 총선 후보자로 공천하겠다고 선언했다. 불체포특권에 대한 국민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해서일 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과거 한때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겠다고 공개 약속 했었다. 그는 나중에 자신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되자 말을 뒤집었지만  불체포특권 포기가 국민에게 호소력이 있을 것이라고 여긴 것은 틀림없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강하다. 불체포특권 포기가 정치 개혁의 대표적 방안 중 하나로 여겨질 정도이다. 문제는 헌법에 보장된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겠다고 약속만 하면 실제로 포기될 수 있는 것인가이다. 불체포특권은 국회의원 개인의 권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제도’의 하나다. 제도가 개인의 의사에 따라 무력화될 수 있느냐가 불체포특권 포기 논란의 핵심이다. 

 

불체포특권은 영국에서 16~17세기에  의회제도와 민주주의가 발전하면서 생겨난 제도이다. 당시 왕은 중산층한테서 세금을 거둬 왕정을 운영했다. 왕은 절대적 권한을 행사하며 세금을 마음대로 거뒀다. 그러나 경제 발전으로 중산층 세력이 커지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중산층이 왕에게 대항하기 시작했다. 중산층은 자신들이 대표자를 뽑을 테니 이 대표자들과 협의해 세금을 거두라고  왕에게 요구했다. 대표자와 협의하지 않으면 세금을 내지 않겠다고 했다. 의회민주주의 발달사에서 그 유명한 ‘대표 없이 세금 없다’는 구호가 그때 상황을 대변해 준다. 그 대표자들이 의회의원이다.  왕은 처음에는 중산층 요구를 거부했다. 그러나 갈수록 중산층 세력이 커지고 이들이 내는 세금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게 되자 결국 중산층 요구를 받아들였다. 이런 과정을 거쳐 의회가 힘을 키워 갔다.  

 

이후 중산층은 갈수록 왕의 절대적 권한 행사를 견제하려 했다. 그중 하나가 의회의원이 의회에서 왕정을 비판하더라도 왕이 의회 동의 없이 함부로 잡아가지 못하게 하는 제도의 도입이었다. 바로 불체포특권이다. 이뿐이 아니다. 의회의원들이 의회에서 왕정을 비판하려고 한 말에는 책임을 묻지 말라고 요구했다. 그렇게 해서 생겨난 게 면책 특권이다. 의회의원들은 왕이 임명한 내각대신(大臣), 즉 장관들에게 불만이 있을 경우 의회가 결의하면 내각대신을 해임하라고 왕에게 요구했다. 중산층 세금에 의존해야 하는 왕은 어쩔 수 없이 이를 받아들였다. 여기서 생겨난 게 요즘 민주당이 전가의 보도로 사용하는 탄핵 제도이다. 


국회의원 방탄 장치로 전락, 비판 여론 크지만
 

이처럼 불체포특권은 절대권력을 휘두르던 왕으로부터  의회를 지키기 위해 생겨났다. 1603년 영국 의회가 불체포특권을 담은 ‘의회 특권법’(Privilege of Parliament Act)을 처음 법제화했다. 이를 1789년 미국이 헌법에 수용했다. 이후 프랑스, 독일, 일본 등 많은 나라가 불체포특권을  헌법적 기본 권리로 채택했다. 우리도 1948년 정부 수립 때 미국 헌법을 본받아 불체포특권을 헌법에 넣었다. 과거 유신정권이나 전두환 군사정권 같은 민주화 이전 시대에는 불체포특권이 정권으로부터 국회의원과 국회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정권이 국회를 장악하고 있어 국회가 제 기능을 다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래도 헌법에 불체포특권이 규정돼 있다는 사실 자체가 정권이 국회의원을 함부로 체포하거나 구속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게 했다. 국회를 정권의 탄압으로부터 지키는 최소한의 안전판 역할을 한 것이다.  

 

민주화가 된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정권이 국회의원을 불법 부당하게 탄압하기는  불가능하다. 정권의 권력이 국민의 힘을 누를 수가 없다. 대통령 권력이 국회 권력을 누를 수 없는 세상이다. 언론과 각종 단체들도  정권을 견제한다. 사법부도 정권에 장악돼 있지 않고 상당한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제 정권 탄압으로부터 국회의원을 보호하기 위한 불체포특권 제도는 굳이 없어도 될 정도이다. 오히려 불체포특권은 국회의원들이 비리를 저지르고도 국회 권력을 방패 삼아 체포와 구속을 면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국회가 동료 의원을 감싸는 방탄 장치로 전락해 있다. 많은 국민들이 불체포특권 폐지를 정치 개혁 최우선 순위의 하나로 꼽게 된 게 바로 이래서다. 이러니 한동훈 위원장이 불체포특권 포기를 들고나오고, 이재명 대표가 한때나마 불체포특권 포기를 약속하고 나온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불체포특권이 포기한다고 해서 포기될 수 있느냐이다. 일반적으로 권리는 당사자가 그 권리의 행사를 포기하겠다고 하면 별다른 조치 없이 즉각 포기의 법적 효력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1심 재판에서 진 사람은 2심에 항소하고 나아가 대법원에 상고할 권리가 있다. 그런데 당사자가 항소권이나 상고권을 포기하면 그는 항소할 수 없고 상고도 할 수 없다. 구속영장 실질심사도 마찬가지다. 피의자가 실질심사를 받을 권리를 포기하겠다고 하면 그 효과는 즉각 나타나 법원은 실질심사 없이 영장 발부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재판에 넘겨진 사람은 국민참여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 이 역시 당사자가 포기하면 국민참여재판은 열리지 않는다.


포기하겠다고 해서 포기되지 않아
 

그러나 불체포특권 포기는 다르다. 불체포특권은 국회 동의 없이는 체포나 구속되지 않을 헌법상 권리를 말한다. 불체포특권 포기가 가능하려면  포기의 법적  효과가 다른 권리의 포기 때처럼 별다른 조치 없이 즉각 나타나야 한다. 당사자가 포기한다고 하면 국회의 체포 동의안 표결 절차가 법적으로 불필요해져야 한다. 그리고 법원은  국회 동의 없이도 영장 발부 여부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는 헌법상 불가능하다.  아무리 당사자가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겠다고 하더라도 국회 동의 절차를 생략할 수는 없다. 국회 동의 없이 법원이 영장을 발부할 수도 없다. 국회의원이 국회 체포 동의안 표결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자발적으로 법원 영장 심사에 응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 경우라도 법원은 국회 동의 없이 체포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국회의원이 불체포특권 포기를 약속하면 국회 체포 동의안  표결 과정에서 동의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커질 수는 있다. 영장이 청구된 국회의원이 신상발언을 통해 특권 포기 의사를 밝히면 다른 국회의원들은 찬성 표을 던지더라도 마음의 부담이 덜해질 수 있다. 게다가 다른 국회의원들도 공천 과정에서부터 특권 포기를 서약했다면 체포 동의안에 찬성 표를 던져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을 받을 수 있다. 이런 요인들이 합쳐져 체포 동의안에 찬성표를 던지는 의원이 많게 나와 동의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 

 

하지만 설사 그렇게 해서  체포 동의안이  통과돼 당사자가 체포된다고 해도 그건  ‘표결에 의한 체포 동의’의  결과이지 ‘특권 포기’의 결과가 아니다. 아무리 특권을 포기하겠다고 해도 체포 동의안에 대한 찬반 표결 절차는 거쳐야 하고 여기서 동의안이 통과돼야 체포될 수 있다. 불체포특권을 누리지 못하게 된 이유가 ‘포기’라는 개인의 의사  때문이 아니라 ‘국회의 체포 동의’라는 헌법상 절차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불체포특권 포기는  법적 효과가 별다른 조치 없이 즉각 나타나는 다른 권리의 포기와는 법적, 실제적 성격이 다르다. 개인이 포기한다고 해서 곧바로 포기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말로 그치지 말고 제도적 대안 제시해야
 

국회의원이 불체포특권에 안주하지 않고 포기하겠다면 그 취지는 높이 사 줄 만하다. 단순한 선거 전략이 아니라 진정으로 국민 여론을 받들기 위해서라면  말이다. 그러나 다른 권리들처럼 개인이 포기한다고 하면 곧바로 포기되는 양 말하는 것은 문제가 다르다. 많은 국민들은 ‘불체포특권 포기를 약속만 하면 비리 혐의 국회의원이 국회 동의 절차 없이 곧바로 체포될 수 있는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불체포특권 포기 약속은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해 국민을 호도하고 심하면 속이는 일이 될 수 있다. 

 

헌법 개정 없이 불체포특권 포기는 불가능하다. 불체포특권 포기를 약속하려면  말로만 그러지 말고  제도적 대안을 함께 제시하는 게 옳다. 조해진 국민의힘 의원은 작년 7월  불체포특권 포기와 관련한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법안의 핵심은 국회의원이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고 스스로 영장실질심사에 응하고자 할 경우 다른 의원들에게 체포 동의안 표결을 위한 임시회를 열지 말아 달라고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절차를 마련하는 것이다. 이에 앞서 권성동, 정우택, 유의동,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도 불체포특권의 오·남용을 막기 위한 개정안을 각각 대표 발의했다. 이 법안들은 현행 ‘72시간 내’로 규정된 체포동의안 표결 기간을 단축하고, 무기명인 투표 방식을 기명으로 변경하며, 기한 내 처리되지 않은 경우 가결된 것으로 간주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았다. 

 

 이들 의원이 낸 법안을 종합해 영장이 청구된 당사자가 임시회를 열지 말아달라고 요청할 수 있게 하고, 그 경우 임시회를 열지 않으며, 72시간이 지나면 가결된 것으로 간주하는 식으로 국회법을 개정하면 불체포특권 포기를 미흡하나마 법적 제도로 구현할 수 있다. 이런 제도적 대안의 제시 없이 말로만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겠다고 해선 국회의원 선거가 끝나면 다시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실행이 따르지 않아 실속이 없는 빈말, 이른바 구두선이 선거 때마다 반복될 게 뻔하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정치학과ㆍ 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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