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균 칼럼] 고립·은둔 청년 54만명 …정책 패러다임을 전환하자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명예교수
입력 2023-12-20 06:00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명예교수
[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명예교수]

세상과 단절하고 사는 청년이 54만명에 이른다는 보건사회연구원의 실태조사 결과는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 이는 19세부터 39세까지 청년의 5%에 달하는 수치다. 이들 중 다시 24세부터 34세까지가 70%에 육박한다. 이들이 청년이고, (예비)노동자이고, 젊은 (예비)부모이다. 은둔고립의 이유는 취업 실패가 24.1%로 대인관계 어려움 23.5%보다 많았다. 아예 방에서 나오지 않는 청년이 500명을 넘었고 고립은둔 청년 4명 중 3명은 극단적 선택을 생각한 적이 있다. 아예 ‘구직하지 않는’ 청년도 40만2000명에 이른다. 이들이 취업을 포기한 이유는 눈높이에 맞는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최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그냥 쉰다’는 청년이 20대에서는 38만4000명으로 16.5%, 30대에서는 29만2000명으로 12.6%에 달한다. 이는 지난해에 비해 각각 0.6%포인트, 1.25%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이들이 자발적 실업을 선택한 이유가 20대에서는 '원하는 일자리 찾기가 어려워서'가 32.5%, '일자리가 없어서'가 7.3%로 나타났다. 30대에서는 각각 29.9%, 8.3%로 나타났다. 두 연령층에서 모두 40% 가까운 수치가 일자리를 찾지 못해 자발적으로 쉬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고립은둔 청년을 걱정하면서 막대한 자본 유출을 독려하고 일자리 수출을 축하하는 것은 모순이다. 청년문제를 대하는 서울시 대책은 상담신청을 유도하는 수준이고 인구 소멸을 바라보는 저출산고령화위원회의 5대 핵심 과제도 또 하나의 ‘신발 신고 발바닥 긁기’다. 정책 패러다임의 근본적인 전환만이 답이다.

첫째, 일자리 창출에 ‘올인’하는 정부로 변신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가장 먼저 자본 유출을 차단하고 기업의 해외 투자를 국내 투자로 전환하기 위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에 개별 기업의 매출과 이윤 극대화에는 도움이 될지라도 국익에 반할 수 있는 해외 투자에 대해서는 분명히 선을 긋는 것이 필요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해외 순방을 하면서 한국 기업의 해외 투자를 축하하는 반대편에서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출범 이후 미국 제조업 부활 정책의 효과로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모두 2000억 달러(약 258조6000억원) 규모의 대미 투자가 이뤄졌고, 이 가운데 한국 기업의 대미 투자 규모가 최소 555억 달러(약 71조8000억원)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백악관은 “아·태 지역에 대한 미국의 수출이 팬데믹 이전에 비해 25% 증가했고 미국 기업이 더 많은 근로자를 고용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555억 달러가 한국에 투자되었더라면 고용효과는 물론 수출효과, 세수증대효과, 성장효과에 작지 않은 기여를 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2024년부터 5만 달러 이상 해외송금에 대한 신고의무를 폐지하려는 방침은 마땅히 재고되어야 한다.

둘째, 건전재정으로 위장된 ‘결과적인 흑자 재정’ 노선을 거두어들이고 신중한 확장 재정으로 전환하여 경기 침체를 차단해야 한다. 반복적인 감세 조치와 세수추계 오류를 통해 59조1000억원 규모의 세수 결손을 유발하여 적자 재정을 만들어내는 것은 거의 재정 쿠데타 수준이다. 14.8%의 세수 결손은 IMF 위기 직후인 1988년 13.9%보다 큰 규모이며 3년 연속 세수추계 실패는 무능에 기인하든 고의에 기인하든 책임 추궁이 필요한 부분이다. 감세가 투자 활성화에 도움이 되지 않음은 한국도 이미 이명박 정부 시절에 경험했다.

셋째, 노동시간 연장이 아니라 단축으로 정책 선회를 결행해야 한다. 노동시간을 62시간으로 연장하려고 ‘MZ세대’를 설득하는 데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는 대신 법정노동시간 40시간을 엄수하고 그것만으로도 안정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한다면 워라밸의 시작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노동시간 모델이 가능할 것이다. 지금 후퇴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기업으로는 다시 전진을 도모할 수 없다. 기업의 현상 유지를 위한 노동시장 ‘개혁’은 후퇴다. 그리고 노동시간 단축은 일자리 창출이다. 일자리는 ‘시장에서 민간이 창출한다’고 두 손 놓고 있을 것이 아니라 공공서비스 일자리부터 시작해서 민간에 의한 일자리 창출을 독려하는 새로운 산업정책도 필요하다.

넷째, 탄소중립 정책에서 신재생에너지를 확충하는 방향으로 과감한 보완이 이루어져야 국내외 기업의 투자가 활성화할 수 있다. 원전 비중을 늘리기 위해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낮춘 선택은 하책 중 하책이다. ‘재생에너지(RE)100’이 요구하는 수준의 재생에너지 생산은 최소한이다. 재생에너지는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도 우월한 에너지원이다. 선진국 중 유일하게 재생에너지 비중이 한 자릿수라는 사실은 국내외 기업으로 하여금 투자를 기피하도록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다섯째, 가랑비식 민영화를 멈추어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10년 이상 전기요금 인상을 억제하여 적자가 100조원까지 누적된 한전을 ‘외통수’ 민영화로 몰아가기 위해 알짜 자회사부터 매각하고 나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모든 자회사에 대한 배당 청구라는 초유의 사태로 자회사를 아사 상태로 몰아가고 있다. 서해안에서 생산된 재생에너지를 수도권에서 소비하기 위한 송전망 확충 사업이 아니라 재생에너지를 소비할 산업을 지방에 육성해야 성장뿐만 아니라 균형발전과 저출산 대응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섯째, 소득과 부의 불평등을 완화하는 정책을 현저히 강화해야 한다. 이는 윤석열 정부에서 사라진 화두 중 하나다. 학교폭력과 교사에 대한 갑질의 배후에서는 학부모 권력이 작용할 때가 많다. 사회에 만연한 ‘갑질’ 역시 경제력에 바탕을 둔 권력관계의 표현일 때가 많다. 부의 집중과 권력의 세습화는 한국 자본주의의 부패상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경제적 역동성을 떨어뜨리고 갈등을 증폭시킨다. 이러한 불평등과 권력관계의 제도화와 세습을 강화할 중대재해처벌법의 완화나 가업상속제의 확대 등은 마땅히 막아야 한다.

일곱째, 정책은 물론 경제 부문의 ‘상호 의존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강화해야 한다. 일자리 정책은 물론 균형발전도, 에너지 전환도 저출산 대책이다. 노동시간을 62시간으로 연장하면서 출산을 독려하는 것은 마치 노동하는 청년과 출산하는 청년이 따로 존재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좁은 시야다. 공공기관을 애써 지방으로 이전하면서 민간기업에 대해 수도권 이주를 다시 허용하거나 신설되는 반도체학과를 수도권에 집중시키는 것은 결국 균형발전과 저출산 대응 효과를 상쇄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재벌 총수들과 부산 어묵을 같이 먹고 파리에서 소맥 파티를 하면서 소박한 모습을 보여주는 의전보다 이들에게 해외보다 국내에서 투자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도록 독려하는 데 정부 정책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의 권위보다 청장년층 일자리와 삶이 더 긴급하고 빈곤층 노인의 생활 안정이 더 중요하다. 정책의 상호관계와 우선순위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기다. 국가는 누구나 국민소득 3만5000달러에 어울리는 품격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질서 잡는 권력'(독일 질서자유주의자 발터 오이켄)으로서 제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김호균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독일 브레멘대 경제학 박사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