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자의 食슐랭] 굴곡진 60년 라면史…'K-라면 시초' 삼양라면, 'K-푸드 열풍' 주역으로 우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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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라다 기자
입력 2023-11-2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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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출시된 삼양라면 모습 사진삼양식품
1963년 출시된 삼양라면 모습. [사진=삼양식품]

국내 라면산업은 1963년 태동했다. 한국 라면을 만든 주인공은 삼양식품 창업주인 故(고) 전중윤 명예회장이다. K-라면의 시초는 애민(愛民)정신에서 비롯됐다. 
 
5만 달러 정부 지원으로 사업 시작...꿀꿀이 죽 먹던 시절 '삼양라면' 탄생
전중윤 선대회장이 제일생명보험(現 ABL생명) 사장을 지내던 1959년 일본을 방문했을 때 맛봤던 라면을 떠올린 것도 꿀꿀이 죽을 먹던 노동자를 본 직후였다. 전중윤 선대회장은 1960년대 초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꿀꿀이 죽(일명 유엔탕)'을 사 먹기 위해 장사진을 친 노동자들을 목격하고 안타까워 한 일화는 식품업계에선 꽤 유명하다. 그가 직접 꿀꿀이 죽을 먹어 보니 깨진 단추는 물론, 담배꽁초까지 나와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꿀꿀이 죽은 미군 부대 잔반을 끓여 만든 음식으로, 당시 5원에 판매됐다. 

전중윤 선대회장은 일본에서 라면을 들여와 판매하면 국가 식량난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쌀보다 밀가루가 더 많이 생산됐고 값 싸고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는 라면 만한 게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창업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사재를 털어 창업 자금을 마련했지만 달러를 구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라면을 제조하려면 공장 설립이 시급했다. 라면을 생산할 기계가 한국에 없어, 일본에서 설비를 수입해야 했던 시절이었다. 일본에서 설비를 구매할 때 필요한 게 달러였다. 달러를 백방으로 찾아 다니던 전중윤 선대회장은 당시 상무부를 찾아가 읍소했다. 당시 최고 실세인 김종필 중앙정보부 부장도 찾았다. 전중윤 선대회장은 "국민 잘 살게 하자"며 김종필 부장을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5만 달러를 확보했다. 

이후 그는 무작정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 라면업체들의 기술 노하우를 전수받기 위해 공장을 찾아가면 문전박대 당하기 일쑤였다. 그가 마지막으로 문을 두드린 기업이 묘조((明星)식품이다. 묘조식품은 당시 닛신식품의 라이벌, 처음으로 분말스프를 첨가한 라면을 생산한 회사다. 오늘날 인스턴트 라면의 모태다. 당시 묘조식품 사장은 오쿠이 기요스미였다. 전중윤 선대회장은 오쿠이 사장에게 "꿀꿀이 죽 먹는 동포들이 더 이상 배 곯지 않게 하고 싶다"며 라면 사업 노하우를 전수해 달라고 간청했다. 오쿠이 사장은 그를 흔쾌히 견습생으로 받아들여 10일간 묘조식품에 근무토록 했다. 제조 기계도 실비만 받았고 기술료와 로열티는 요구하지도 않았다. 라면 기술의 무상 지원을 약속했다. 게다가 오쿠이 사장은 묘조식품의 핵심 기술인 수프 배합표까지 건네며 한국 라면의 탄생을 응원했다. 

험난한 과정을 거쳐 한국 라면의 시초인 삼양라면은 1963년 9월 15일 출시됐다. 중량은 일본 라면보다 15g 늘린 100g으로 론칭했으며, 소비자 가격은 10원으로 낮게 책정됐다. 당시 5원하던 꿀꿀이 죽 두 그릇 가격이다. 커피 가격(35원), 대중 담배 값(25원)과 비교하면 절반도 안되는 저렴한 가격이었다. 오쿠이 사장이 '라면 값을 너무 낮게 정한 것 아니냐'고 묻자, 전중윤 선대회장은 "식량난에 빠진 한국에서 누구나 배부르게 먹으려면 그 정도 가격이 적절하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진다.
 
삼양라면 사진삼양식품
삼양라면. [사진=삼양식품]
 
우지파동 이후 암흑기...안방도 농심에 내줬다
삼양라면에 대한 소비자의 반응은 냉담했다. 오랫동안 쌀 중심의 식생활이 하루아침에 밀가루로 바뀌기란 쉽지 않았다. 심지어 라면을 옷감, 실, 플라스틱 등으로 오해한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이에 삼양식품 전 직원과 가족들은 직접 극장이나 공원 등에서 무료시식 행사를 열어 라면을 알리는데 주력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삼양라면은 점차 국민들의 입맛을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때 마침 1965년 식량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에서 실시한 '혼분식 장려'정책이 나오게 되면서 삼양라면은 낮은 가격으로 간편하게, 영양 면에서도 부족함이 없이 한 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이 부각되며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가기 시작했다.

1965년 농심의 전신인 롯데공업이 삼양라면에 도전장을 냈지만 당시 업계 강자는 선발주자인 삼양라면을 뛰어넘을 순 없었다. 삼양라면은 무려 80%를 넘는 시장 점유율을 자랑했다. 

시련도 겪었다. '라면명가'의 지위가 흔들린 건 1989년 발생한 '우지(牛智, 소기름)파동' 이다. 우지파동은 서울지방검찰청에 날아든 익명의 투서로부터 시작됐다. 몇몇 기업이 비식용 우지로 라면을 만들었다는 것이 투서의 요지였다. 검찰은 미국에서 비식용 우지를 수입한 삼양식품, 오뚜기식품, 서울하인즈, 삼립유지, 부산유지 등 5개 업체를 적발하고 경영진과 실무 책임자 등 10명을 식품위생법 위반 혐의로 구속 입건했다. 팜유를 사용하던 농심은 조사 대상에서 제외됐다.

삼양식품은 우지 파동 여파로 3개월간 공장 가동을 멈췄고 시장에 유통한 제품 전략을 회수 조치했다. 당시 피해 금액만 무려 4000억원에 달했다.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1000여명의 직원이 회사를 떠나 실직자 신세가 됐다. 

업계는 강하게 반발했다. 정부가 '국민에게 동물성 지방을 공급한다'는 취지에서 사용을 권장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라면에 활용된 우지가 1989년 개정된 식품공전 중 원료 조항에 위배된다고 맞섰다. 

결국 1995년 서울고등법원에서 무죄가 선고되며 라면업계를 뒤흔든 우지파동은 해프닝으로 끝이 났지만 삼양식품은 이미 기업 이미지는 훼손된 뒤였다. 영업 기반도 이미 망가져 사실상 회생 불가능 상태에 이르렀다. 여기에 1997년 외환위기까지 겹치자 이듬해인 1998년 화의 절차(기업 회생)를 밟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 전중윤 선대회장은 "팜유보다 우지가 2배 비쌌다"고 억울한 심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 때 삼양라면은 농심에 안방을 내주고 시장 점유율이 10%로 떨어진 상태였다.
 
삼양식품의 불닭 시리즈 사진삼양식품
삼양식품의 불닭 시리즈. [사진=삼양식품]
불닭볶음면으로 부활...매출 1조 기업으로 '우뚝'
부활의 기회를 잡을 것은 2010년대 들어서부터다. 2012년 4월에 출시된 불닭볶음면이 '신의 한수'였다. 방탄소년단(BTS) 멤버인 지민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지민이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서 불닭볶음면을 먹는 모습이 화제가 됐고 지민을 따라 '매운 라면 먹기' 챌린지 열풍이 불면서 불닭볶음면은 전 세계적으로 불티나게 팔려 나가며 '불닭 신화'를 이뤄냈다.

2012년부터 올해 3분기까지 불닭 브랜드의 누적 매출액은 3조2000억원에 이른다. 해외 수출로만 2조3000억원을 벌어들였다. 전체 매출의 72%가량을 해외에서 거둬들인 셈이다. 누적 판매량은 53억개에 달한다. 

이러한 판매 호조세에 힘입어 삼양식품은 올해 매출 1조원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올해 3분기까지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29.5% 늘어난 8662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 3분기에만 3352억원의 매출고를 올려 분기 최대 매출을 경신했다. 분기 매출이 3000억원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4분기 매출이 2000억원만 넘으면 1조원을 넘어서는 만큼 '1조 클럽' 달성은 무난할 것으로 전망된다.

삼양식품은 해외에 생산공장 없이 수출 물량 전량을 국내에서 만드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K-라면 열풍의 주역이기도 하다. 2016년부터 시작된 폭발적인 수출 성장세에 힘입어 2017년 1억 달러, 2018년 2억 달러, 2021년 3억 달러, 2022년 4억 달러 수출을 달성하며 현재 한국 라면 수출액의 약 55%를 담당하고 있다.

삼양식품은 불닭 브랜드의 의존도를 낮추고 100년 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올해는 삼양라면 출시 60주년을 맞아 삼양라면의 맛과 디자인을 전면 리뉴얼했다. 1년여간의 연구개발(R&D)을 통해 더 깊고 진한 풍미를 완성했다. 

삼양식품 관계자는 "삼양라면은 라면의 원조이자 자사를 대표하는 제품인 만큼 철저한 품질 관리, 다양한 협업 시도 등으로 브랜드 가치를 높이며 장수브랜드로서의 명성을 꾸준히 이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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