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부터 바나나 3만t과 망고 1만3000t 등 수입 과일에 대한 관세가 인하된다. 이상 기온으로 수확량이 줄어든 사과 등 국산 과일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수입 과일 가격을 낮춰 수요를 분산하겠다는 의도다.
이 소식을 접한 30대 직장인 김경은씨는 "사과를 먹고 싶은 소비자가 값을 깎아 준다고 바나나를 선택하겠느냐"며 "과일 구경하기 어렵던 1970~1980년대 발상 같다"고 헛웃음을 지었다.
널뛰는 물가에 정부가 특정 수입품 관세를 한시적으로 인하하거나 면제하는 할당관세 조치에 자주 손을 대고 있다. 다만 면밀하지 못한 품목 선정과 후속 관리 부실로 소비자 체감도가 떨어져 효과가 미미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16일 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이달 바나나 수입량은 높은 원가 때문에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가 기대한 수요 분산 효과도 반감될 수밖에 없다.
이달 수입량 증가가 예측되는 망고는 다른 과일보다 판매 가격이 높아 가정 내 소비보다 선물용 수요가 많다. 역시 국산 과일에 대한 수요 분산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농축산물에 대한 할당관세 적용이 빈번해지면서 농가에서도 불만이 커지고 있다. 값싼 수입 과일이 들어오면 그만큼 국산 과일 가격도 낮춰야 하기 때문이다. 전국농민회총연맹 관계자는 "농산물 가격이 결정되는 수확기에 할당관세, 할인 판매, 비축 물량 방출 등 조치가 쏟아진다"며 "물가 안정을 위해서는 소비자물가지수 가중치가 높은 전월세 등 주거비와 공공요금, 유류비를 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1년 넘게 할당관세를 적용했지만 가격이 요지부동이거나 오히려 오른 제품도 있다. 지난해 6월부터 수입 원두에 붙는 10% 부가가치세를 면제하고 같은 해 8월부터 관세율을 0%로 인하했지만 프랜차이즈 커피 가격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지난달 우리나라 소비자물가 상승률(3.8%)은 6년여 만에 미국(3.2%)을 넘어섰다. 할당관세를 앞세운 정부 물가 정책에 대한 회의론이 비등하는 모습이다. 정부는 물가 상승을 주도하는 먹거리 가격을 잡기 위해 농축산물과 식품 원료 등에 할당관세를 집중 적용했지만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즉각적으로 제품 가격에 반영한 미국보다 식품·외식 물가 상승률이 더 높다.
그럼에도 할당관세를 통한 물가 안정 효과에 대해 정부 믿음은 확고하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4일 이마트 용산점으로 현장 점검을 나간 자리에서 "내년에도 가공용 옥수수, 대두, 원당·설탕, 식품용 감자·변성전분, 해바라기씨유 등 주요 식품 원료에 대한 관세 인하를 추가로 추진하겠다"며 "업계에서도 달라진 여건을 반영해 고물가에 따른 국민 부담 완화에 적극 동참해 달라"고 당부했다.
김정식 연세대 명예교수는 "미국은 먹거리 물가 상승을 막기 위해 수입 등 공급을 단기간에 늘릴 역량이 있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한 상황"이라며 "할당관세가 단기적으로는 효과를 낼 수는 있지만 원자재 가격이 계속 오를 것을 상정한 대비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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