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준의 금융막론] 너도나도 서민금융 살려라···정책 외면 속 진짜 서민은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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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준 기자
입력 2023-11-1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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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9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불법사금융 민생현장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불법사금융 민생현장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올해 연말 금융권 최대 화두는 '서민금융'이다. 고금리 장기화에 따른 이자 부담이 커지면서 서민들이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리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자 장사'에 매몰돼 있는 은행권을 강하게 질타했고, 금융당국·금융권도 곧장 대응책 마련에 분주하다. 국회 역시 여야 막론하고 서민금융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하지만 이런 서민금융 지원 행보가 단순히 숫자 키우기에 그칠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도움으로 이어질 수 있게 세밀히 살펴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통령부터 야당까지 "서민금융"···횡재세 언급까지
윤 대통령은 9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민생현장 간담회를 주재하고 "민생 약탈 범죄로부터 서민과 취약계층을 보호하는 것이 국가의 기본적 책무"라고 강조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국무회의에서 고금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들을 대상으로 "은행의 종노릇을 하고 있다"면서 은행권을 강하게 질타했다. 이후로도 '갑질', '기득권층' 등 은행권을 향한 공개 질타를 이어갔다.

윤 대통령 발언 직후 금융당국 수장들도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최근 금리상승 과정에서 금융권의 순익은 역대 최고 수준"이라면서 "이는 소비자 편익 증대를 위한 혁신 노력의 결과보다 단순 금리상승에 따른 이자수입 증가라는 점에서 국민의 시선이 따갑다"고 비판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역시 "삼성전자 등의 대기업 영업이익을 합친 것보다 은행권 영업이익이 더 크다"면서 "과연 (은행들이) 반도체, 자동차와 비교해 어떤 혁신을 했기에 60조원의 이자수익을 거둘 수 있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금융당국은 이달 셋째 주쯤 국내 5대 금융지주 회장과 간담회를 열고 상생금융 방안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내달 중으로 서민금융 상품 구성과 운영 체계 개편을 포함한 효율화 방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은행권에서는 자체 서민금융 지원 대책을 내놓고 있으며, 당국과의 간담회 이후로 △상생금융 패키지 △사회공헌 프로그램 △서민금융 공급 확대 계획 등을 내놓겠다는 방침이다.

국회 역시 여야 할 것 없이 서민금융 이슈를 선점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유의동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올해 상반기 은행권 당기순이익은 14조원을 웃돈다"라며 "하지만 은행들의 중저 신용대출 비중은 감소하고, 서민금융 새희망홀씨 재무는 2019년 3조8000억원을 정점으로 매년 줄어 지난해 2조3000억원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더 나아가 고금리에 막대한 이익을 거둔 은행권으로부터 출연금 등을 거둬 서민금융에 지원하는 방안을 골자로 한 '횡재세' 도입 입법을 검토하고 있다.
 
◇ "무작정 '돈 풀기' 안돼···필요한 이들을 타깃화해야"
사진 연합뉴스
[사진= 연합뉴스]
이렇듯 서민금융 지원 확대 기조가 전방위적으로 확산하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무작위적인 지원 확대는 되레 독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금리가 장기화되면서 서민들이 부채의 늪에 빠지고 있는 만큼, 제도권 밖으로 밀려나고 있는 이들을 위한 정책 지원은 필요하다. 그러나 서민금융 지원이라는 핑계로 돈을 푸는 정책으로 대응하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앞서 정부는 코로나19 팬데믹(전염병 대유행) 등 대내 경기가 어려운 상황을 맞을 때면 서민지원 대책으로 대대적으로 돈을 뿌리는 정책을 펼쳐온 바 있다. 그러나 정부가 직접 예산을 투입해 지원하는 경우보다는 대부분 기업, 은행 등의 출연금을 통해 지원하거나, 보증기금을 통해 대출을 내어주곤 했다. 예컨대 서민금융진흥원이 자체적으로 소상공인·자영업자를 대상으로 대출하는 상품들을 제외한 대부분은 은행들을 통해 지원하는 햇살론 등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나 이런 구조는 정책서민금융기관에서 책임을 지기 때문에 사실상 은행에는 어떤 리스크도 부여되지 않는다. 때때로 은행들은 출연금을 강요받기도 하지만 결국 정부의 보증을 받아 은행들이 대출을 내어주는 만큼, 되레 이자수익을 창출하는 것을 돕는 꼴이다. 조혜경 금융경제연구소장은 "은행들이 사회적인 역할로 서민금융 지원 역할을 하고 있지만, 리스크 없이 정부의 보증대출로 대부분 서민금융을 지원하고 있다"면서 "자체적으로 금융취약계층을 지원하는 역할로는 미약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런 돈 풀기가 실제적인 서민금융 지원으로 이어질 수 있게 대책을 세심히 살펴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표적인 서민금융정책 상품으로 볼 수 있는 소액생계비대출의 경우 예산으로 1000억원을 편성했지만, 기획재정부 심사 과정에서 전액 삭감됐다. 소액생계비대출은 대부업에서도 대출받기 어려운 이들을 위해 소득·연체 여부와 상관없이 최대 100만원을 빌릴 수 있는 정책금융상품이다. 정책 예산이 삭감되면서 내년 소액생계비대출은 은행권 기부금으로만 운영해야 한다. 고금리대안자금의 햇살론15 역시 당초 금융위가 요청한 금액의 절반인 900억원으로 배정됐다.

최저신용자특례보증의 경우 예산 증액 편성에도 불구하고 취급 은행이 지방은행, 저축은행 등으로 국한돼 있는 데다, 은행권은 연체율 관리가 부담스러워 상품 출시도 기피하고 있다. 또 많은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이 대부업에까지 손을 벌리고 있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새출발기금에선 대부업 협약 가입이 거부돼 서민들의 이자 상환 부담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 새출발기금의 예산 집행률은 9%에 머물러 있다.

서민금융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도 이른바 '마이크로크레딧'으로 볼 수 있는 미소금융 대출 재원이 정책적 관심 부족 속에 국가 위상 대비 크게 줄어들고 있다"면서 "지금도 서민금융의 부실은 누적되고 재원은 부족해 정책금융 운영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정부가 이처럼 불합리한 구조를 뜯어고칠 수 있는 대안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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