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영 칼럼] '글로벌 룰 세터'가 되어 세계 시장 주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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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영 고대 표준·지식학과 교수
입력 2023-11-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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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영 교수
[김재영 교수]
 
지난달 12일 ‘세계 표준의 날’ 기념식이 열렸다. 세계 표준의 날은 1970년부터 국제표준화기구에서 표준에 대한 중요성을 알리고 국제표준을 확산하기 위해 지정한 날로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부터 진행되고 있다. 국내 유일한 표준 관련 포상인 ‘세계 표준의 날 정부포상’은 국가표준, 국제표준 유공자·단체를 대상으로 훈포장, 대통령표창, 국무총리표창, 장관표창을 수여하고 있다.
 
작년 세계 표준의 날 기념식에서 우리 정부는 글로벌 룰 세터(Rule-Setter)로서 우리나라의 국제적 표준 영향력을 강화하고 산업 발전과 국제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새로운 표준 리더십을 주창하였다. 더 이상 글로벌 시장에서 정한 규칙을 따라가는 룰 옵서버(Rule-Observer)를 벗어나 우리가 시장의 규칙을 정하고 선도하는 룰 세터로의 변화를 제시한 것이다.
 
이미 선진국들은 제조와 기술 개발을 넘어 국제표준화에 많은 노력을 쏟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주도하는 우리와 달리 민간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표준화를 통해 산업 발전과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글로벌 룰 세터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의 표준에 대한 관심 변화가 요구된다.
 
이 때문인지 이번 행사에서는 중소기업들에 대한 시상이 늘었다. 특히 이번 동탑산업훈장을 수훈한 박주면 대표는 세계 최초로 에너지 분야 탄소중립 이행을 위한 국제표준을 주도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전 세계는 탄소중립 이행을 위한 노력을 진행 중이다. 이번 국제표준은 공장, 건물 등 넷제로(Net Zero) 에너지의 범위, 에너지 효율 관리, 신재생에너지 적용 등 원칙을 제시하여 우리 기업들의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가이드가 될 것으로 기대되는 부분이다.
 
지금이라도 우리 기업들이 국제표준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우리나라의 국제적 표준 영향력을 강화하고 산업과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더 많은 기업들의 표준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요구된다.
 
소위 4차 산업혁명의 출발을 알린 독일의 인더스트리 4.0의 핵심은 기업들 스스로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기술 개발에 망설이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 결과 독일은 유럽 전체 제조업 부가가치의 30%가량을 차지한다. 1668년에 창업한 독일의 머크(Merck)사는 의약·화학 분야의전문기업으로 연간 그룹 전체 매출 중 15% 정도를 기술 개발에 투자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과감한 투자를 통해 350년 넘는 최고(最古)의 기업으로 성장하였다.
 
독일의 기술력은 오랜 기간 세계 소비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앞서 언급한 머크를 비롯하여 밀레, BMW, 지멘스 등 독일을 대표하는 기업들은 기술 개발은 물론 기술 인재 양성을 통해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이들이 오랫동안 세계시장을 선도하는 비결은 단지 기술력과 기능성, 실용성, 내구성 등 기술적 우위만이 아닌 이들이 시장의 룰 세터로서 경쟁의 규칙인 표준을 만들기 때문이다.
 
자국 기술이 국제표준으로 인정되면 국가 이미지 제고는 물론 무역을 통해 막대한 경제적 이득을 얻게 된다. 반면 시장에서 정해진 규칙을 따라가는 룰 옵서버는 낮은 위험과 적은 보상을 영위할 뿐이다. 그렇기에 많은 기업들이 룰 세터가 되길 원하지만 현실의 벽은 너무나 높게 느껴진다. 독일만 하더라도 세계시장에서 해당 분야를 선도하는 강력한 중소·중견기업인 ‘히든챔피언(Hidden Champion)’이 1600여 개나 존재한다. 대기업 하나가 흔들리면 국가 경제가 휘청거리는 우리로서는 매우 부러운 이야기다.
 
중국 역시 20년 가까이 국제표준에 매진하였다. 2003년 내수 시장만 믿고 와이파이 보안 표준을 추진했던 중국은 전 세계의 비판을 감수해야 했다. 이후 표준의 중요성을 깨달은 중국은 표준 굴기(崛起)를 선언하고 세계 3대 표준화기구 기술위원회를 중국 전문가들이 장악하였으며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표준특허를 보유한 국가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부러우면 지는 것이다. 우리도 그 기회를 얻었다. 작년 조성환 현대모비스 대표이 ISO(국제표준화기구) 차기 회장에 선출된 것과 더불어 이번에는 IEC(국제전기기술위원회) 이사국 지위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IEC는 ISO와 함께 각국의 규격·표준을 행하는 국제기관으로 정식 회원국 중에서도 15개 이사국이 주요 의사 결정을 하는데, 미국·영국·독일·프랑스·일본·중국 등 6개 상임이사국 외 나머지 9개국은 선거를 통해 3년 임기로 선출된다. 우리나라는 앞선 두 차례 선거를 통해 2018년부터 강병구 고려대 교수가 대한민국을 대표해 왔다.
 
이번 2023년 IEC 선거에서 우리나라가 이사국 지위를 유지하게 됨으로써 이정준 LS일렉트릭 상근기술고문이 2026년까지 대한민국을 대표해 전기·전자 부문 국제표준 관련 정책 결정에 참여한다. 또한 이번 총회에서 이사회 산하 표준화관리이사회(SMB) 위원으로 권대현 LS일렉트릭 이사와 장경진 한국표준협회 센터장이 비즈니스자문위원회(BAC) 위원으로 각각 재선출됨으로써 우리나라는 IEC 내 이사회와 주요 위원회 임원을 맡았다.
 
조성환 대표 역시 내년부터 ISO 회장 임기를 시작한다. 지난 9월 ISO 연례회의에 참석하여 쉽고 지속적으로 표준의 개발·확산에 참여할 수 있는 실천적 협력체제 구축을 추진하겠다는 당선자로서 포부를 밝혔다. 국가기술표준원 역시 국제표준화기구전략대응팀을 통해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제 우리도 세계 표준을 주도하는 양대 표준기구의 의사 결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되었다. 이제 이 무대 위에서 세계적 기업으로 도약할 우리 기업들이 필요하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역할은 국제표준에 대한 기업의 관심과 참여를 독려해야 한다. 또한 우리 기업들이 체계적으로 표준화 작업을 진행하고 이를 통해 국제표준을 선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적극적인 역할 수행이 요구된다.
 
자, 이제 대한민국이 세계를 주도할 수 있는 전에 없던 화려한 무대가 마련되었다. 쇼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무대 위 주인공들이 아낌없이 자기 기량을 보여줄 수 있도록 기업 스스로 적극성과 체계적인 표준 협력 네트워크 구축이 필요하다. 또한 이를 아울러 우리 기술로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준비된 연출이 필요하다.



김재영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표준.지식학과 교수 ▷고려대 경영학 박사 ▷한국정보시스템학회 이사 ▷4단계 BK21 융합표준전문인력 교육연구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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