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순 칼럼] '트럼프 2기' 리스크, 미리 대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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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순 법무법인 율촌 고문
입력 2023-09-27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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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순 법무법인 율촌 고문
[이백순 법무법인 율촌 고문]

 
 
2016년 미국 대선이 진행될 당시 미국은 물론 전 세계 정치 전문가들은 대체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될 가능성을 낮게 보았다. 그는 기성 정치권이나 전문가 집단의 관점에서 보면 별 자격 요건을 갖추진 못한 이단아이자 정치 신인에 불과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미국에 출장 갈 일이 있었던 필자는 뉴욕시에서 마주친 경찰, 택시 운전사, 식당 종업원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민심 저변의 흐름은 상류계층의 관점과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같은 경향은 2007년 오바마가 출마하였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워싱턴에 근무 중이었던 필자가 접촉하던 소위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유색인종인 오바마가 대권을 잡기에는 시기상조라고 말하였다. 그런데도 오바마가 당선된 것을 보며 2016년 대선에서도 트럼프가 당선될 것으로 예견하였는데 그 예견은 맞아떨어졌다. 트럼프의 당선은 미국 ‘기득권 집단(establishment)’과 미국 중산층 이하 사람들, 특히 ‘중산층 이하 백인(소위 white trash)’들 사이에는 한 나라 국민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인식의 간격이 있다는 사실을 말해 주었다.
 
저소득 백인들의 불만을 등에 업고 당선된 트럼프 대통령은 재임 4년 동안 야당인 민주당은 물론 자신이 속한 공화당의 기본 정책에도 반하는 일련의 독특한 공약들을 집행하면서 미국과 국제사회를 충격에 빠뜨리곤 했다. 트럼프는 세계 패권국가로서 지난 70여 년간 미국이 수행해왔던 국제질서 유지 책임을 더 이상 부담하지 않으려 했다. 그에게는 미국 국익이 우선하므로 국제질서 유지 책임을 다른 선진국들이 분담하지 않으면 미국도 그 책임을 다하지 않겠다는 점을 명백히 밝혔다. 또한 그는 미국 국익을 추구하기 위하여 동맹국·우방국을 가리지 않고 강압적인 조치를 서슴지 않고 동원하였다. 게다가 그는 국제기구와 국제규범을 무시하였고 NATO를 비롯한 집단안보 체제에 미국이 큰 책임을 지는 것에 대해서도 노골적인 거부감을 표하였다. 이런 그의 견해는 미국이 지난 70여 년간 유지해왔던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스스로 부정하는 꼴이 되어 전 세계 전문가와 지식인들에게 심한 비판을 받았다. 이런 비판에 힘입어 4년 만에 정권을 재탈환한 바이든 대통령은 자유주의적 국제질서, 서방국과 유대관계를 복원함으로써 국제사회의 우려를 어느 정도 불식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의 자유주의적 세계관으로 인해 유발된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는 오히려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떠오르고 있다. 우선 미국 저소득층들은 자신들의 실질임금이 삭감되고 복지도 나빠지고 있는데도 현 행정부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막대한 전비를 쏟아붓고 있는 데 대한 불만을 점차 드러내고 있다. 이들에게는 우크라이나의 자유보다는 자신들의 일자리와 임금이 더 중요한 것이다. 트럼프는 이런 불만을 잘 이용할 줄 아는 선동술을 가지고 있어 트럼프의 재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또한 현 민주당 정부하에서 매년 미국 부채 규모가 정부 예산의 절반에 해당하는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현 행정부는 예산의 25%를 부채 이자를 갚는 데 쓰는 기막힌 현실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을 계속하고 있다. 이에 대한 저소득층의 불만을 등에 업고 트럼프가 부상 중인데 그가 특이한 것이 아니라 그는 이런 민심의 대변자이자 미국 쇠퇴의 표면적 증상이라 할 수 있다.
 
이미 시작된 공화당 경선에서 그의 인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다. 검찰에 출석하면서 그가 찍은 사진인 머그샷의 화난 얼굴 표정은 그의 지지자들에게는 수집 대상이 되었고 이 머그샷을 인쇄한 머그잔만 수백만 달러어치 팔려나갔다고 한다. 그의 화난 얼굴이 미국 저소득층의 화난 심정을 잘 대변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는 현재 공화당 경선에서 지지율이 선두이고 바이든과 지지율 격차도 9%로 벌리고 있어 그가 재선될 확률은 점점 커지고 있다. 문제는 그가 재선되면 그날을 기점으로 세계는 또 격변을 맞게 될 것이고 심하면 트럼프 2기의 세상은 이전과는 다른 세상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퍼지고 있다.
 
사실 2016년 선거 당시 트럼프가 당선될 가능성이 낮다고 보았기에 그의 대선캠프에는 인재들이 모이지 않아 그는 집권 4년 동안 인물난을 겪었다. 또한 그가 등용한 인사들과 불화도 끊이지 않아 그의 정치과제 수행에 차질을 빚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제 그의 재선 가능성이 커지자 그를 지지하는 강성 공화당원들이 모여 ‘미국 우선 정책 연구소(America First Policy Institute)’를 비롯한 여러 싱크탱크를 설립하고 트럼프의 정치과제를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조직을 구축하고 있다. 이 연구소는 집권하면 바로 정부 요직에 포진시킬 강성 우파 인사들 3000여 명도 이미 선정해 놓았다고 한다. 그래서 집권만 하면 1기에 제대로 못했던 트럼프식 정책을 처음부터 강하게 밀어붙이려고 하는 것이다. 트럼프는 우선 자신과 지지자들이 불신하는 미국의 기성제도와 집단, 즉 국무부, 국방부, CIA 등을 무시하고 자기 방식대로 대외정책을 밀어붙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대외정책을 자신의 국내 정치적 목적을 위해 쉽게 희생시킬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기에서는 있었던 매티스 장관과 같은 직언을 했던 원로그룹(axis of adults)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일부 서방 고위 외교관들은 트럼프 2기 대외정책은 영화로 비유하면 터미네이터 2편에 나오는 주인공인 사이버 보그 암살자가 1편에 나오는 주인공인 사람보다 훨씬 더 두려운 존재라는 표현으로 그 위험성을 빗대어 말하고 있다.
 
이러면 미국 국내는 물론 국제사회도 다시 한번 요동을 칠 것이다. 트럼프식 대외정책이 다시 노골화하면 현 민주당 정부하에서 민주당 행정부의 선의를 믿고 미국의 뜻에 맞춰 우리 정부가 협조를 해준 정책의 구조들이 한순간에 백지화될 가능성이 있다. 한·미·일 안보협력 체제도 그렇고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우리의 지원도 효과를 보기는커녕 역효과를 낼지도 모른다. 내년에 우리나라에서 개최하기로 알려진 ‘민주주의 정상회의의’ 장래도 불투명해질 것이다. 무엇보다도 ‘워싱턴 선언’을 통해 우리가 받았다고 여기는 미국의 확실한 핵 확장 억제정책의 실효성도 바로 의문시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미군 주둔에 대한 비용도 우리가 훨씬 많이 부담해야 할 것이고 주한미군이 대중국 견제작전에 투입되는 것을 막지 못하게 될 것이다. 다만 한 가지 기대할 것이 있다면 트럼프가 1기 때 시도했다가 마무리하지 못한 김정은과의 핵담판을 마무리 지으려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가 꼭 우리에게 좋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하여튼 20여 년 전 민주당 클린턴 행정부에서 공화당 부시 행정부로 넘어갈 때 우리는 부시 행정부의 강성 대외정책의 개요도 파악하지 못해 곤욕을 치렀다. 우리는 당시 기존 국제사회 분위기를 반영하여 러시아와 정상회담 문서를 만들었다가 미국의 호된 견제구를 받아야 했다. 앞으로 1년간 미국 대선 과정을 잘 지켜보면서 그 당시 했던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공화당은 물론 트럼프 측 싱크탱크와 접촉을 늘려가며 급격한 정책 노선 변경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이백순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독문학과 △주미얀마 대사 △국회의장 외교 특임대사 △주호주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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