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리번 선생님, 아동학대로 檢 갈 것"...전국 교사들 "교권침해 정확히 진단·처방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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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영 기자
입력 2023-07-29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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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분간 교사들 집회 이어질 전망, 9월 4일까지 진행하자는 목소리도

전국에서 모인 교사들이 29일 오후 2시 서울 광화문 정부청사 앞에서 숨진 교사에 대한 추모식 및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신진영 기자
전국에서 모인 교사들이 29일 오후 2시 서울 광화문 정부청사 앞에서 숨진 교사에 대한 '추모식 및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신진영 기자]
"특수 교사는 장애학생을 잘 이해하고 돕고 싶어 해요. 설리번 선생님이 대한민국에 있었다고 하면 아동학대죄로 검찰에 넘어가겠죠. 그러면 헬렌 켈러라는 위인은 이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특수학교 교사 A씨)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신규 교사를 추모하고 교사의 교육권 보장을 위해 29일 열린 집회엔 초등교사뿐만 아니라 중·고등교사와 특수학급교사, 은퇴한 교사도 참석했다. 주최 측은 연단에 나와 "현재 참담한 교권 침해 사례는 연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라고 정부의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전국 교사들은 이날 오후 2시부터 2시간가량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안전한 교육환경 조성 및 교사 교육권 보장을 위한 집회'를 열었다. 주최 측은 약 1만명이 참여한다고 신고했지만, 지방에서 버스를 빌려 온 교사들을 합해 총 3만여명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집회로 사직로에서 새마을금고 방향 3개 차로는 전면 통제됐다. 

이날 집회 시작 전에 검은 옷과 검은 마스크 차림을 하고 모인 3만명의 교사들은 숨진 신규 교사를 추모했다. 추모하는 동안 여러 교사는 마스크로 눈물을 닦기도 했다. 경기 용인에서 올라온 초등교사 B씨는 "지금 방학인데 이렇게 더운 날씨에 교사들이 나온 건 교권침해 문제에 대해 그동안 정말 많이 참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교사들이 29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 사거리 인근에서 열린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집회에 참석해 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전국 각지에서 모인 교사들이 29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 사거리 인근에서 열린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집회에 참석해 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아동학대처벌법' 개정하라...교권침해 원인, 교사 개인 역량 부족 아니다"
한낮 체감온도가 35도가 넘는 더위에 아스팔트 위에 앉은 전국에서 모인 교사들은 '교사의 교육권 보장하라'와 '안전한 교육환경 조성하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었다. 연단 위에 있는 주최 측 한 교사가 "학생에겐 지도권, 교사에겐 교육권, 학부모에겐 정당한 교육 참여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소리치자, 피켓을 흔들고 박수를 쳤다. 

이 자리에 모인 교사들은 특히 교권침해 문제에 대한 교육당국의 정확한 진단과 제대로 된 처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용인에서 온 초등교사 B씨는 "이번 일이 학생인권조례만의 문제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해당 조례 개정도 필요한 부분인데, 아동학대처벌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본다"고 전했다. 

사회자는 "현행 아동학대처벌법으론 교사들에게 소명할 기회도 주지 않고, 진상조사도 하지 않는다"며 "단순 신고만으로 불합리한 직위 해제를 당하고, 수사기관에 고발까지 당한다"고 말했다. 그는 "교사들이 결국 아동학대처벌 사례를 두려워하게 되면서 생활지도 범위는 점점 좁아졌다"고 부연했다. 

특히 윤건영 충북교육감이 지난 25일 충북도교육 1급 정교사 자격연수 특강에서 "교사들은 예비살인자라고 인정해야 한다"는 발언을 강하게 비판했다. 서울 동작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9년을 근무한 C씨는 "교사를 예비 살인자로 만든 것만큼 비참한 게 없다"며 "교육감이라고 하는 분이 이런 말을 한 것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교사들이 29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 사거리 인근에서 열린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집회에 참석해 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전국 각지에서 모인 교사들이 29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 사거리 인근에서 열린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집회에 참석해 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너네는 교사하지 말아라'...교사로서 자괴감 든다"
이날 현장엔 초등교사뿐만 아니라 중·고등교사, 특수학급 교사, 은퇴한 교사까지 참석했다. 서울 한 고등학교 교사라는 D씨는 "'세상에서 이렇게 보람된 직업은 없다'고 나지막이 말하던 제 은사님의 말씀을 들었던 제가 이제 누구보다 따뜻한 심성을 가지고 모범적인 학생에게 이 말을 해줄 수 없는 게 정말 속상하다"고 말했다. 

이날 모인 교사들은 하나의 직업으로 합당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D씨는 "(유선상으로)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기업 직원에게 폭언을 할 경우 처벌받을 수 있다는 경고 메시지가 나오는 이 시대에 교사들은 '민원'이라고 포장된 합당치 못한 폭언과 인격 모독을 시도 때도 없이 감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장애학생을 담당하는 특수교사들은 교과시간에 장애학생이 공격을 나타내는 '도전행동'을 보이면 다른 학생이 피해가 가지 않도록 온몸으로 막아야 한다. 이럴 땐 장애학생의 팔을 붙들어 제지해야 하지만, 아동학대로 고소당할까 무서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고 이날 만난 특수학교 교사들은 고충을 토로했다. 

9년 차 특수교사인 A씨는 아동학대법 앞에 특수학교 교사들이 '예비 범법자'가 되는 현실이라 지적했다. A씨는 "(우리는) 범법자가 되는 것도 두렵고, 맞는 것도 두렵다"면서도 "결국 맞는 걸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 반을 포기할 수도 없다"며 "다른 선생님이 오면 또 힘들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A씨는 "특수교사로 장애학생을 잘 이해하고 돕고 싶다"고 외쳤다. A씨는 이어 "설리번 선생님이 대한민국에 있었다고 생각하면 아동학대죄로 검찰에 넘어갔을 것"이라며 "헬렌 켈러라는 위인은 이 세상에 없다"고 말했다.  

한편 전국 교사들의 집회는 당분간 매주 열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 18일 극단적 선택을 한 서이초 신규 교사의 49재인 오는 9월 4일까지 집회를 이어가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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