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쉽고 바르게-3]② 백 나인부터 갤러리가 많았다?…이해 어려운 운동경기 용어 사용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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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입력 2023-06-14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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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용어 순화집 발간 22년 지났지만 스포츠 기사·중계엔 외국어 가득

  • 골프, 1490개 중 318개로 최다…일반독자나 시청자는 이해 어려워

  • 올해는 훈민정음 반포 577돌…문체부, 용어 순화집 재발간 추진해야

 

[사진=게티이미지뱅크]

2001년 9월 문화관광부(현 문화체육관광부)는 295쪽 분량의 '운동 경기 용어 순화집'을 발간했다.

순화집에는 15개 운동 종목(농구, 배구, 배드민턴, 볼링, 사격, 사이클, 스케이트, 승마, 야구, 축구, 테니스, 하키, 핸드볼, 골프, 스키)에서 사용하는 1490개 용어를 순화했다.

1490개 용어는 4가지 이유로 선정됐다. 첫째는 국적 불명인 외국어나 외래어, 둘째는 우리 정서에 맞지 않는 외국어, 셋째는 어려운 한자어, 넷째는 같은 개념을 가리키면서 여러 가지로 어지럽게 쓰이는 용어다.

순화 용어 작성 원칙은 5가지다. 첫째는 쉬운 이해, 둘째는 간결하고 명확하게, 셋째는 국어학적 측면보다는 현실적 수용 정도 우선 고려, 넷째는 설명 풀이 구보다는 단어, 다섯째는 용어 표준화와 국어 순화 모두 충족이다.

용어는 순화 대상 용어, 원어, 용어 설명, 용례, 순화한 용어, 구분으로 표기됐다.

가장 처음 나오는 것은 농구다. 노 룩 패스(no look pass)는 감각 연결·감각 패스, 노 마크 찬스(no mark chance)는 단독 기회, 더블 팀(double team)은 이중 수비, 디펜시브 파울(defensive foul)은 수비 반칙, 레이업 슛(lay up shoot)은 올려 넣기, 바스켓 카운트(basket count)는 득점 인정·추가 자유투, 버저 비터(buzzer beater)는 종료 골, 식스맨(six man)은 우수 후보 선수, 타임 아웃(time out)은 작전 시간, 페이크(fake)는 속임수 등으로 바꿨다.

배구에서는 리베로(libero)를 수비 전담 선수, 리시버(receiver)를 수비수, 매치 포인트(match point)를 끝내기 점수, 오버 네트(over net)를 그물넘기 등으로 지정했다.

배드민턴에서는 드라이브(drive)를 직선치기, 드리블(dribble)을 두 번 치기, 서비스(service)를 메김·메기기, 스매시(smash)를 내려치기, 오버핸드(over hand)를 손목 위 반칙 등으로 교체했다.

승마는 한자, 영어 등이 섞여 있었다. 권승(卷乘)은 둥글게 돌기, 녹다운(knock down)은 떨어짐·낙하, 더비(derby)는 경마식 경기, 워크(walk)는 걷기·평보 등으로 순화했다.

야구와 축구 용어는 대체로 영어였다. 야구에서는 노 히트 노 런(no hit no run)을 무안타 무득점, 더그 아웃(dug out)을 선수 대기석, 랑데부 홈런(rendezvous homerun)을 연속 홈런, 로스터(roster)를 출전자 명단, 배터리(battery)를 투·포수, 번트(bunt)를 살짝대기, 빈 볼(bean ball)을 위협구, 클러치 히터(clutch hitter)를 적시 타자, 퍼펙트 게임(perfect game)을 완전 경기 등으로 순화했다.

축구에서는 다이빙 헤딩(diving heading)을 몸날려 머리받기, 어드밴티지 룰(advantage rule)을 공격수 편익 규정, 커트(cut)를 가로채기, 포메이션(formation)을 대형, 해트 트릭(hat trick)을 혼자 삼 득점, 헤딩 슛(heading shoot)을 머리 받아 넣기 등으로 표현했다.

이 밖에도 볼링 스트라이크(strike)는 완전투, 사격 에이밍(aiming)은 조준, 사이클 스퍼트(spurt)는 역주, 스케이트 코너 워크(corner work)는 곡선 활주법, 테니스 듀스(deuce)는 막동점, 하키 페인트(feint)는 속임 동작, 핸드볼 다이빙 슛(diving shoot)은 몸날려 쏘기, 스키 다운 힐(down hill)은 비탈타기·활강 경기 등을 제안했다.

이 중 순화 용어가 가장 많은 운동은 골프였다. 1490개 중 318개를 차지했다. 주요 용어로는 갤러리(gallery)는 구경꾼, 드라이빙 레인지(driving range)는 연습장, 러프(rough)는 잡초 지역, 런(run)은 구름·굴리기, 로브 샷(lob shot)은 띄워치기, 롱 퍼팅(long putting)은 긴 퍼팅, 롱 홀(long hole)은 긴 홀, 백 나인(back nine)은 후반 9홀, 백스핀(back spin)은 역회전, 언더 파(under par)는 기준타 이하·이하타 등으로 설정했다.

의도와 다르게 순화된 용어도 있었다. 마스터스 토너먼트 우승자에게 부상으로 주어지는 그린 재킷(green jacket)은 색을 뺀 우승 재킷으로, 더 이상 나무를 사용하지 않는 드라이버(driver)는 1번 나무채로, 예비 동작인 왜글(waggle)은 도움 치기 등으로 잘못 표기됐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방대한 분량의 순화를 주도한 사람은 김한길 제37대 문화관광부 장관과 남기심 제6대 국립국어연구원장이다.

김한길 전 장관은 발간사에 "세계적으로 주목할 만한 선수들이 배출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가 쓰고 있는 운동 경기 용어를 살펴보면 외국어와 외래어가 난무한다. 문화관광부는 우리말 용어로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순화된 용어가 널리 쓰일 수 있도록 노력했다. 이번 순화 작업에는 국어학자, 운동선수, 체육학자가 함께 참여했다. 우리말 우리글은 우리 정신을 담는 그릇이다. 운동할 때나 관람할 때 한국인의 정서를 느끼길 기대한다"고 적었다.

남기심 전 원장은 머리말에 "스포츠 분야에서 쓰고 있는 많은 용어가 외국어를 그대로 쓰이거나 국적 불명인 것이 많이 있었다. 1993년 문화체육부가 기획 사업을 시도했다. 국제적으로 공인된 용어를 우리말로 바꾸는 일 자체가 쉽지 않아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오다가 1996년 훈민정음 반포 550돌 기념사업으로 시작됐다. 그사이 체육 전문가는 지나친 순화가 국민 언어생활에 혼란만을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어학자는 용어 순화야말로 우리말의 정체성을 지키는 일이라고 맞섰다. 그렇게 5~6년이 흘렀다. 그런 시간을 거쳐 발간하게 됐다. 힘든 과정을 거쳤기에 더욱 값지고, 만족한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대안을 제시해도 국민이 이를 따르지 않고 사용하지 않는다면 소용없는 일이 될 것이다. 이 사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언론사와 교육기관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무엇보다 국민들의 이해와 참여가 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22년이 지난 2023년 순화집에 담긴 용어들은 어떻게 사용되고 있을까.

모든 용어가 순화되기 전 상태에 머물러 있다. 스포츠 기사와 중계 등에는 여전히 외국어로 가득하다. 취미로 운동을 즐기는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김한길 전 장관의 기대와 남기심 전 원장의 바람은 허공을 맴돌고 있다.

그렇다 해도 정부는 '운동 경기 용어 순화'를 멈추면 안 된다. 스포츠 용어는 대부분 외국어에 의존하고 있다. 용어뿐만 아니라 대다수 종목 이름(축구, 농구, 탁구, 정구, 야구, 체조, 조정, 사격 등) 역시 한자어다.

남기심 전 원장이 쓴 머리말에 따르면 체육 전문가는 "지나친 순화가 국민 언어생활에 혼란만을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2001년 9월 발간된 '운동 경기 용어 순화집' 173쪽. [사진=이동훈 기자]

과연 순화가 혼란만을 가중할까. 순화집에서 21.3%(318/1490)를 차지한 골프 용어를 예로 들어 보자.

최근 한 프로골퍼는 "백 나인부터 갤러리가 많았다. 10번 홀 티에서 티샷한 공이 벙커에 빠졌다. 샌드웨지를 쥐고 탈출을 시도했다. 운 좋게 플래그 옆에 공이 붙었다"고 말했다. 골프 종목을 잘 모르는 독자나 시청자는 전문 용어로 가득한 이 문장을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이를 순화집에 맞게 바꿔보면 "후반 9홀부터 구경꾼이 많았다. 10번 홀 첫 타 구역에서 시도한 첫 타 치기는 벙커에 빠졌다. 벙커용 채를 쥐고 탈출을 시도했다. 운 좋게 깃대 옆에 공이 붙었다"가 된다. 순화된 문장이 어색하긴 해도 이해하기 수월하다. 해당 종목에 대한 진입 장벽도 낮아진다.

언어에는 쓰는 사람들의 문화와 민족성이 깃들어 있다. 무엇보다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같은 민족임을 확인해 주는 징표다. 

올해는 훈민정음 반포 577돌이다. 2001년 스포츠 강국이라 불렸던 나라에서는 더 다양한 종목에서 더 어린 선수들이 배출돼 전 세계를 누비고 있다. 골프의 김주형, 축구의 손흥민과 김민재, 이강인 등이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이에 발맞춰 '운동 경기 용어 순화집' 재발간 사업을 시작해야 한다. 훈민정음 반포 550돌에 하던 고민이 577돌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대로 600돌을 넘기는 것은 시간문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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