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폐기물로 자동차 만들던 베트남, 최첨단 전기차에 진출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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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준 통신원
입력 2023-05-17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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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패스트 로고 [사진=로이터·연합뉴스]

베트남 전기차업체 빈패스트가 뉴욕증시 상장사이자 기업인수목적회사(SPAC)인 블랙스페이드에퀴지션과의 합병을 통해 뉴욕증시 상장 계획을 밝혔다. 합병이 이루어질 경우 합병 기업의 가치는 약 270억 달러(약 36조2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이 경우 베트남은 단번에 세계 전기차 시장 내 '빅 플레이어'로 활동할 수 있는 재정적 기반을 갖추게 된다. 레 티 투 투이 빈패스트 최고경영자(CEO)는 "빈패스트가 블랙스페이드와 협력해서 미국증시에 상장하게 된다면 빈그룹에 있어 중요한 발전 이정표가 될 것"이라며 "우리의 글로벌 발전 과정을 위해 자본을 충분히 운용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40년대부터 70년대까지 1·2차 인도차이나 전쟁을 거치면서 산업 기반이 황폐화됐고, 흔히 '오토바이 천국'으로 잘 알려진 베트남의 자동차 산업이 어떻게 발달해왔고 최첨단 전기차 분야에까지 진출할 수 있게 됐는지 돌아보자. 
 
태동기
먼저 베트남은 1958년에 공식적으로 최초의 "메이드 인 베트남" 자동차를 제작했다. 최초의 차량은 프랑스 자동차 모델 프리깃에 기반해 찌엔 탕 공장 기술자들이 만든 것으로, 베트남 북부에서 제작됐다.

당시 찌엔탕 공장 작업자들은 부품을 최대한 자체 조달하겠다는 마음으로 엔진 본체, 연료 펌프, 오일 펌프, 기화기 등의 부품을 구하기 위해 직접 샘플을 찾아 주형을 만들고 가공했다. 재료들은 보통 전쟁 폐기물을 사용해 만들었다. 5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의 끊임없는 노력 끝에 1958년 12월 21일 베트남 사람들이 만든 최초의 4인승 자동차가 움직이게 됐다.

1970년에는 베트남 최초의 조립 자동차가 등장하게 된다. 바로 시트로엥(프랑스)의 표준에 따라 제조된 남부 지역에서 생산된 라 달랏(La Dalat)이었다. 라 달랏은 연료 소비가 적고 수리, 교체가 쉬우며 특히 많은 부품들을 직접 생산할 수 있었다.

당시 라 달랏은 1970년부터 1975년까지 4가지 모델이 출시됐으며 매년 평균 약 1000대가 판매되었다. 오늘날까지도 라 달랏은 여전히 베트남 남부 지역에서 찾아볼 수 있다. 또한 라 달랏은 벨기에 자동차 박물관에도 전시되어 있다.
 

호치민시 도로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성장기 
1991년 한국, 베트남, 일본이 합작하여 메콩오토(Mekong Auto) 회사를 설립했다. 한·일 두 공업국의 기술 지원에 힘입어 메콩오토는 불과 1년 만에 최초의 이륜구동 자동차 모델을 출시했다. 해당 모델은 '메콩스타'라는 이름으로 한국 쌍용자동차의 사이공 끄우 롱 공장에서 생산됐다. 1993년 메콩스타는 일본과 중국 시장에 수출되었다. 메콩스타는 아시아 소비자들에게 최초의 베트남 브랜드 자동차에 깊은 인상을 심어주는 계기가 됐다.

1994년쯤에는 당시 세계 자동차 산업의 3대 기업인 도요타, 포드, 크라이슬러가 각각 베트남에 합작투자 회사를 설립했다. 이 기간 동안 메르세데스 벤츠, 혼다, 도요타, 포드, 미쓰비시 등 16개의 대규모 자동차 기업들도 베트남 시장을 대대적으로 공략하기 시작했다. 각 자동차 브랜드들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모델들을 출시하기 시작하면서 베트남 자동차 산업은 더욱 활기를 띠게 된다.

2004년에는 처음으로 2곳의 베트남 브랜드가 제조 및 조립 허가를 받으면서 베트남 자동차 산업이 강력한 "변혁기"를 맞게 됐다. 이들은 바로 쯔엉 하이 자동차 회사(Thaco, 타코)와 쑤언 끼엔 자동차 회사(Vinaxuki, 비나수키)이다. 두 회사는 우선 세계 주요 자동차업체들이 베트남 시장에 공급하는 상업용 자동차를 조립하는 일을 했다.

이후 비나수키는 순수한 베트남 국산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열망으로 자체 생산으로 전환했으나 재정적 어려움과 안전성 및 품질 문제로 인해 2012년 초 문을 닫았다.

반면 타코는 자동차 제품 조립 및 유통을 위한 합작 경영을 넘어 트럭, 승용차 등을 조립하는 방향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그 결과 베트남 시장 내에서 타코의 점유율은 아주 빠르게 증가했다. 수년간의 개발 끝에 타코는 오늘날 베트남에서 가장 크고 현대적인 자동차 생산 단지를 꽝남성 쭈 라이에 건설했다.

2017년에는 베트남 최대 그룹인 빈그룹이 하이퐁 깟하이 딘부 경제단지에 빈패스트 자동차 생산단지 건설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후 1년 만인 2018년 10월, 빈패스트 럭스 A2.0 세단과 럭스 SA2.0 SUV 등 두 가지 모델이 파리 모터쇼에서 공식 공개됐다. 독일, 일본, 프랑스, ​​영국 등 수십, 수백년의 역사를 가진 유명 자동차 제조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오토쇼에 베트남 브랜드가 등장한 것이다. 당연히 행사에서 국내외 언론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나트랑(냐짱)시 도로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전기차 
빈패스트는 로스앤젤레스 오토쇼 2021(미국)에서 글로벌 전기 자동차 브랜드의 공식 출시를 발표했다. 최신 기술을 적용한 두 가지 전기 SUV 모델 VF e35, VF e36(이후 VF 8 및 VF 9로 이름 변경)도 선보였다. 더욱 큰 바다로 도약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2022년 빈패스트는 순수 베트남 전기 자동차 회사가 되겠다는 의지로 내연 자동차 생산 중단을 발표했다. 이어 글로벌 전기 자동차 제조업체 중 하나가 되겠다는 목표와 열망으로 각종 개발 프로젝트를 계속하고 있다.

나아가 올해 3월에 빈패스트는 미국시장에 전기차를 수출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베트남의 자동차 산업은 동남아시아 내 다른 국가들보다 늦게 출발했지만 강력하게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많다. 2025년까지 베트남 국내 시장 자동차 수요는 80만~90만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개인용 자동차는 점점 대중화되면서 소비자들의 니즈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자동차 산업의 발전 가능성은 △인구 규모 및 구조 △1인당 소득 △인구 1000명당 평균 자동차 보유대수라는 세 가지 요소에 달려 있다. 베트남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4000달러를 넘어섰고, 인구 1000명당 평균 자동차 보유대수가 50대 정도로 아직은 적다. 하지만 가까운 미래에 자동차 보급 추세가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동남아에서도 국민 소득이 높은 태국의 경우, 자동차 보유대수가 1000명당 280대, 말레이시아는 1000명당 542대인 것에 비하면 베트남 자동차 산업은 그만큼 성장 여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베트남 기업들은 부품 등 자동차 관련 제품을 적극적으로 생산하는 추세이다. 이는 부품 수입 의존도가 낮아지는 국산 자동차 제조업의 향후 견실한 성장에 긍정적인 부분이다.

물론 아직 기술 수준 등과 같은 측면에서 미진한 부분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트남 자동차 산업이 현재까지 끊임없는 노력과 발전을 이어온 가운데 앞으로도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높아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루빅 탑은 베트남 자동차 산업에 대해 "내수 공급망 부족과 낮은 기술 및 혁신 수준 등의 과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향후 수년간 상당한 성장 및 발전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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